[BOOK | 한기호의 독서노트] 새해 10대 키워드 ‘BIG CASH COW’


기사입력 2009-01-07 09:44


[주간동아]




김난도·권혜진·김희정 지음/ 미래의창 펴냄/ 256쪽/ 1만3000원



나는 2006년 말 그해의 대표 키워드로 ‘나만의 행복 추구’를 뽑았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성공의 대체물이다. 2000년대 초반에 대중은 변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남보다 빨리 변해 어떻게든 성공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중은 자신의 삶을 옥죄는 것이 국가 차원을 넘어선 어떤 강력한 외부의 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8년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는 바람에 이제 개인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이라도 잘 다스리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기치유(self-healing)의 거센 물결이 인 것이다. 이런 흐름을 잘 탄 소설이 신경숙의 신작 장편소설인 ‘엄마를 부탁해’(창비)다. 누구나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힘겨울 때는 엄마를 떠올리고 과거를 추억하게 된다. ‘개밥바라기별’(황석영), ‘완득이’(김려령), ‘리버보이’(팀 보울러) 등 2008년에 잘 팔린 소설이 모두 성장소설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시대의 산물로 봐야 한다.
‘엄마를 부탁해’는 두 요소가 겹쳐 있다. ‘자기치유’라는 시대 흐름에 부합하면서 엄마라는 존재를 결정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불과 한 달 만에 20만부를 발행했는데 이런 추세라면 곧 밀리언셀러 고지에도 오를 전망이다. ‘메가트렌드’부터 ‘마이크로트렌드’까지 외국산만 넘쳐날 뿐 우리 현실을 적절하게 다룬 책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앞으로 그런 일을 자임하겠다고 나선 한 그룹이 책을 내놨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09’다.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07년부터 연초에 그해의 트렌드 예측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은 처음이다.
이 책에서 발표한 2009년 10대 키워드의 첫 글자를 모으면 ‘BIG CASH COW’다. 캐시 카우란 지속적으로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사업부문을 뜻하는 용어인데, 전반적인 불경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2009년에 우리나라가 넉넉한 수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명했다고 한다.
그러면 일단 10대 키워드를 순서대로 알아보자. Better Me(스펙을 높여라).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21세기 지식사회에서는 스펙(자격 조건)을 높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I’m So Hot(난 너무 멋져). 제멋으로 살면서 자신의 감정과 일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전파하는 데 놀라울 만큼 적극적인 사람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Gotta be Cocooned(다시 집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안정을 취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재충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집에 머무르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들은 혼자만의 세계에 유폐적으로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사회와의 연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집에서도 즐겁게 놀거나 자기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Cross-Internetization(생각대로 인터넷). 휴대전화, 유선전화, TV, 내비게이션 같은 다양한 생활밀착형 기기를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남녀노소가 일상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하게 된다. Alpha-mam, Beta-Dad(아빠 같은 엄마, 엄마 같은 아빠). 최대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적극적으로 재테크에 나서는 통제형·리더형 엄마와 부드럽고 자상하게 자녀를 돌보고 언제라도 가사를 맡을 수 있는 따뜻한 아빠가 늘어난다. Simply, Humbly, Happily(소박한 행복 찾기). 거창한 출세나 사회적 성취보다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진다. Hobby-Holic(취미 대한민국). 취미생활에서도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실력을 갖춰 무엇이든 수준급으로 즐기는 인구가 크게 늘어난다.
Casual Classics(고급문화, 일상 속으로). 오페라, 순수미술, 고전음악, 발레, 와인 등 다양한 고급문화 아이템이 대중의 삶과 더 가깝게 일상화된다. Off-Air Attitude(무심한 듯 시크하게). 언뜻 무심하게 보일 정도로 노력한 티가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세심하게 자기연출을 한다. Wanna-Be-Star, Wanna-Be-Mass(스타와 대중, 자리 바꾸기). 스타는 일반화하고 일반 대중은 스타화하는 일이 늘어나 스타와 대중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앞에서 언급했던 ‘엄마를 부탁해’는 이 중에서 소박한 행복 찾기를 비롯한 몇 가지 트렌드와 맞물린다. ‘트렌드 코리아 2009’는 이처럼 소비 트렌드에 대한 총체적 분석과 소비가치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어떤 것들이 소비 트렌드와 접목될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개별 트렌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예시되는 수많은 사례가 당신의 상상력을 무수히 자극할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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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이홉 - 문인수 

누가 일어섰을까. 방파제 끝에 

빈 소주병 하나, 

번데기 담긴 종이컵 하나 놓고 돌아갔다. 

나는 해풍 정면에, 익명 위에 

엉덩이를 내려놓는다. 정확하게 

자네 앉았던 자릴 거다. 이 친구, 

병째 꺾었군. 이맛살 주름 잡으며 펴며 

부우- 부우- 

빠져나가는 바다, 

바다 이홉. 내가 받아 부는 병나발에도 

뱃고동 소리가 풀린다. 

나도 울면 우는 소리가 난다. 

 

- <배꼽>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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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9-01-0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개월만에 시 한편을 읽어본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신분을 숨긴 경찰이 들어간 날이다. 삶이 팍팍할수록 시를 읽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텐데...
 

[2009 특별기획](1)이소선의 ‘80년, 내가 살아온 이야기’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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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39년을 싸웠는데, 요즘 현실보면 억장이 무너져”
ㆍ이소선-오도엽 대담

참 모질게도 걸어왔다.




이소선씨(오른쪽)와 오도엽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봉제골목을 함께 걸어오고 있다. |정지윤기자
먼저 간 아들을 가슴에 묻고, 그 아들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의 현장에 뛰어든 지 39년. 사람들은 그녀를 ‘노동자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 그녀의 삶은 질풍의 시대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삶에 다름 아니다. 한국 노동운동사와 한국 현대사의 고갱이다.

신산(辛酸)한 그녀의 팔십 평생을 꼼꼼히 살려낸 이가 있다.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시인 오도엽씨. 지난 2년 동안 이씨와 함께 먹고 자고, 울고 웃으며 이씨가 들려준 이야기를 녹취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나온 책이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후마니타스)이다. 사실 책은 이씨가 가슴 밑바닥부터 토해낸 이야기의 2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오씨는 5일부터 매주 3차례씩(월·목·금) 못다한 이야기들을 경향신문 지면을 통해 풀어낼 예정이다. 진눈깨비가 흩날렸던 지난달 29일 종로구 창신동 봉제골목 한쪽에 자리잡은 전태일기념사업회의 작은 방에서 두 사람이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워냈다.


이소선 “사람이 똑같이 살 때까지, 죽으면 안돼 싸워야해”

오도엽 “어머니 삶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힘을 느낍니다”


오도엽=몸도 안 좋으신데 요즘도 유가협(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어머니들과 싸우러 가시죠.

이소선=무슨 일 있다고 하면 모여서 같이 가야지. 어제도 두 군데나 갔다 왔지. 추도식이 많아. 자식들 죽은 날짜 잊지 않으려고. 지금도 유가협 어머니, 아버지 보면 속이 아파. 내가 노동조합 18년, 유가협 20년을 했어. 주야장천 싸움하면서 얻어 맞고 잡혀가고…. 우리 아들이 죽었는데 우리야 죽으면 뭐 어떠냐면서 싸우지. 사실 시위 도중 경찰에게 많이 맞아서 지금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 오늘 같이 흐린 날은 온 몸이 쑤셔. 그래도 애쓰는 사람들 입장을 봐서 안 갈 수가 없지. 하나 하나 싸우면 안돼. 같이 싸워야지.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오도엽=지금까지 그렇게 해오신 데는 무슨 이유가 있으신 것 같아요. 사람들을 그리워하시고.

이소선=유가협 어머니들이 미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속에 열이 치밀어 돌아가시는 분이 많아. 그래서 ‘나도 아들 죽고 살고 있지 않으냐’고 얘기하고 두세 달 같이 살기도 해요. 서로 위로해주면서 울면 달래고 아프면 약 사주고 안 먹으면 죽 끓여주면서 같이 살지. 그러다 보니 밤에 잠을 못 자. 옛날 생각하다 보면 목숨이 길기도 하고 질기기도 해. 같이 싸운 분들 생각해보면 너무 고맙고 태일이 친구들 보면 얼마나 착한지 그 사람들이 태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지.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나요. 태일이가 얼마나 하다하다 못하니까 죽었겠어. 그때 아무 얘기 말고 자기 말만 들어달라고 하더라고. 자기가 죽은 뒤 어떤 유혹이 올지라도 엄마는 과감히 반대할 수 있다고, 나한테 해당하지 않는 돈이나 물질은 돌 같이 보라고. 말한 거 지켜주겠다고 했어. 현장 나와서 어떻게든 싸워야 된다고 생각했어. 그때 태일이 친구들과 학생들이 같이 해줬지요.

오도엽=어머니는 세상 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항상 텔레비전을 켜놓고.

이소선=내가 두 달 동안 팔순 잔치 안한다고 했어요. 경제도 이렇고 서민도 죽어가고 비정규직도 많이 생기는데…. 사람들 죽는 거는 극단적이고 순간적이야. 올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잠이 안 와. 1970·80·90년대 이 산을 넘으면 소외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올 거라고, 얻어맞고 발로 차이고 감옥 가면서도 헤매고 다녔는데 이제 보니 억장이 무너집디다. 경제는 점점 더 나빠지고 투쟁하는 것도 없어지면서 여러 가지가 작년부터 실망스러웠어. 사람들이 곧 죽게 생겼는데 대운하를 한다 무엇을 한다는데 그 돈 가지고 중소기업을 살리고, 비정규직을 줄일 생각은 안해요. 경제가 악화되면 생기는 건 비정규직이야. 이제는 싸우면 될 거다라는 말도 못나오는 세상이 됐으니까 이제까지 살지 않았으면 그런 거 안 보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고. 없는 사람들이 또 짐승처럼 되어가는 현실이 올까봐 자다가도 놀라.

오도엽=어머니는 항상 ‘내가 이런 음식을 먹고 이런 옷을 입어도 되나’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전태일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는지…. 가족까지 그런 굴레에 묶여 있는 것 같고요. 자식들이 무슨 행동을 하면 어머니에게 전화가 오니까요. 어머니도 자식들에게 항상 행동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세요.

이소선=알아서들 하겠지. 도둑질만 안하고 살면.

오도엽=무슨 일이 있으면 몸이 아픈데도 가시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기도 합니다. 이제는 좀더 젊은 분들이 해야할 부분인데 아직까지 어머니 같은 분이 하고 계시니.

이소선=축소되고 ‘찌끄러기’ 되어가는 게 안타깝지. 옛날 거리로 나간 학생들이 잡혀가면 <전태일 평전>을 보고 운동하게 됐다고 했어요. 국가보안법이 없어지고 감옥 가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더 이상 죽으면 안돼.

오도엽=2년 전 어머니께 인사하러 갔을 때 ‘내가 1, 2년 더 살겠어’ 하셨을 때 전율이 들었습니다. ‘노동자의 어머니’로 항상 쩌렁쩌렁 힘있는 모습이었는데…. 어머니의 기억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노동운동가나 어머니를 잘 알고 있는 분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전태일의 어머니’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똑같은 고민을 가진 분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거든요. 그때부터 어머니와 밤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몰래 녹음을 했어요.

이소선=어휴, 녹음을 한다고 말이나 했나. 혼자 감추고 했는데. 녹음한다고 했으면 좀더 잘했을 걸.

오도엽=어머니는 오히려 한밤중에 기억력이 좋아지고 이야기하는 힘이 생기시는 것 같아요. 한번 말씀을 하시면 4~5시간을 하시고. 제가 피곤해서 눈을 감을 때마다 ‘니 자냐’며 뭐라 하시고.

이소선=70년대 미싱하던 열네살, 열다섯살 아이들이 밤이면 우리 집에 왔어. 월급을 제대로 못받았지. 나도 태일이 죽고 직접 가보고 나서야 형편을 알았어. 기가 차서…. 얘기를 듣다 보면 너무 한 거야. 태일이가 나한테 좀 가르쳐 준 게 있거든. 잘못 없는데 해고하면 부당노동행위다, 너희가 모여 투쟁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청계노조를 7평 사무실에 만들었지. 그때만 해도 사람 취급을 안했어. 그래서 모여 가지고 농성해 보자고 얘기했지. 몇 년을 잠 안자고 이야기했으니까 이게 습관이 되어서 지금도 밤이면 정신이 나고 낮이면 빌빌해.

오도엽=책 쓰면서 어머니하고 다투기도 했지요. 어머니는 당신이 부각되는 걸 말리셨습니다. 유가협이나 청계노조를 나 혼자 했느냐면서요. 또 사람 관계라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데 그런 건 쓰지 말라고.

이소선=그분들 없었으면 내가 무엇을 했겠어. 그래서 지겹도록 고맙다고 했지요. 모든 사람이 집에 발만 디디는 것도 고맙지. 이야기를 같이 한 것도 고맙고. 길에서 만나면 얼마나 고마운지.

오도엽=책에는 구술한 내용의 20분의 1밖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경향신문 연재에선 책에서 밝히지 못했던 얘기들이나 어머니의 소중한 얘기들을 담을 겁니다. 어머니를 영웅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굵직한 사건마다 하신 역할이 있으시니까 좀 알려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이나 근현대사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고요. 제가 옆에서 보면 사람들이 어머니를 뵈러 오면 무릎을 꿇고 앞에서 말을 잘 못하고 거리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저녁 먹었는지 챙겨주시고 방에 불 넣고 자는지 챙기고 잔정이 많더라고요. 사람을 그리워하시고 사람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시고.

이소선=사람보다 귀중한 게 또 어디 있겠어.

오도엽=지금 시대가 어렵고, 사회가 후퇴한 거 같다고 하는데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새로운 희망과 힘을 느꼈어요. 어머니 삶이 희망을 주고 응원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머니 삶은 과거로 묻혀진 게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마음가짐과 힘이 될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세상이 힘들다가 아니라 세상을 적극적으로 바꿔갈 수 있는 힘이 됐으면 합니다.

이소선=죽는 힘을 다해 싸워야지 죽으면 안돼. 싸우는 것도 다 같이 싸워야지. 내가 노동자도 학생도 같이 싸워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거든. 처음 노조 만들 때 내가 힘이 있었나. 태일이 친구들이 해줬지요. 정보부인지 형사들이 와서 돈 줄 테니 태일이 장례식 하자고 하니까 막 (속이) 끓더라고. 그 아까운 아들, 사랑하는 아들 뼈하고 피를 팔아서 살지 않았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안 받았지. 말 안듣고 버티니까 계속 탄압하고. 태일이 풀빵 사 먹여 줬던 시다들, 태일이가 사랑했던 그 얘들이 태일이 죽었다고 하니까 ‘그 오빠가 죽었다고요’ 하면서 울더라고. 지금 힘없는 사람을 이리저리 발로 차버리고 권력이나 돈 있는 사람 걸어가는 세상 만들자는데 얼마나 야비하고 치사하고 분통터지는지. 사람이 똑같이 같이 살자. 이거 100%는 못하겠지만 양심은 조금 가지고 살아야하지 않겠어.


▶오도엽 서울의 한 대학을 다니다 1989년부터 창원으로 내려가 공장에 다녔다. 오랜 수배와 감옥생활을 겪었다. 97년 ‘굵어야 할 것이 있다’로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고 99년 시집 <그리고 여섯 해 지나 만나다>를 냈다. 최근까지 농민과 노동자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에 몰두해왔다.


▶이소선‘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자의 어머니’. 1970년 11월13일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며 분신한 아들의 뜻을 이어 청계피복노조를 만드는 등 평생 노동·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그 탓에 180차례 ‘범법자’가 됐고 3번 감옥에 갔다. 86년 창립된 유가협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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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9-01-0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소선 여사의 구술을 오도엽씨가 풀어낸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후마니타스) 올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책입니다.
 

[Art] 2009 문화지도, 올해의 키워드 [중앙일보]


 



 
  일러스트 김태현


관련핫이슈


 
난세의 갈망일까. 영웅이 살아온다. 현실이 팍팍해서일까. 극단의 감성이 충무로를 달군다. 출판계는 해리포터의 뒤를 이을 대작을 찾아 헤매고, 학계는 100년 전 한국의 정체성을 찾아 기억의 귀환을 준비한다. 2009년 문화계 나침반을 돌려라.

■영웅의 재조명
난세 … 영웅이 그립구나
안중근 뮤지컬·오페라, 고려‘천추태후’드라마


고난을 뚫고 난세를 이겨갈 리더십을 소망함인가. 2009년 문화계엔 ‘영웅’이란 테마가 지배적이다. 독립운동가 안중근(1879~1910)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의사의 행각과 리더십을 재조명하는 문화 콘텐트가 차례로 선보인다. 안방극장엔 여걸을 주인공으로 한 대형 사극이 속속 예정돼 있다. 문화란 대중의 욕구가 투사되는 장이다. 지금 대중이 갈구하는 것은 역경을 딛고 강해지는 리더십이다. 그러니, 문화예술계여 답하라,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를.

▶ 평화사상가 안중근의 부활

2009년 문화계는 고난의 근세사에서 한 영웅을 호출했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일제의 심장부에 총부리를 겨눈 의사 안중근. 100년 만에 문화콘텐트로 부활한 그는 투사이기에 앞서 평화사상가이고, 지사이기 이전에 고뇌하는 한 인간이다. 올 한 해 ‘단련된 영웅’의 면모가 뮤지컬·오페라·소설 등으로 차례로 변주된다.

뮤지컬 ‘영웅’이 조명하는 안중근은 성당에서의 번뇌 장면으로 요약된다. 가톨릭 신자이자 철저한 평화주의자였던 안중근에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은 고뇌에 찬 선택이었다. 제작·연출을 맡은 윤호진 대표(㈜에이콤)는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동양평화론’을 저술했던 그는 인간적 고뇌를 평화사상의 대의로 극복한 인물”이라며 “민족주의를 넘어서 아시아의 공동 번영을 꿈꾸었던 그가 분열과 갈등에 처한 우리 사회에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안중근의사숭모회가 제작하는 오페라 ‘대한국인 안중근’ 역시 평화주의자 안중근에 초점을 맞춘다. 지광윤 예술총감독(46·서울 로망스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은 지난해 12월 제작발표회에서 “민족주의나 항일보다는 안 의사의 평화정신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거 100주년을 맞아 학계와 기념사업회가 준비하는 학술행사와 논문집도 평화사상가 조명에 맞춰져 있다.



▶ 스케일은 남성, 리더십은 여성

미국 흑인 대통령은 피부색의 장벽을 깨뜨렸지만, 2009년 한국 문화계에선 성(性)의 장벽을 깬 여성 리더들이 화두다. 드라마 ‘명성황후’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선 굵은 왕녀들은 ‘구중궁궐 내 모략과 암투’란 통속화된 이미지를 깬다. 호쾌한 여걸들은 남성적 권위를 넘어서 양성이 조화된 카리스마를 꿈꾼다.

21세기적 여성 리더십의 모체를 찾기 위해 역사는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천추태후’(KBS)는 고려 초기, ‘왕녀 자명고’(SBS)와 ‘선덕여왕’(MBC)은 삼국시대가 배경이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기에, 남성의 타자(他者)가 기록될 자리가 드물었던 탓이다. 게다가 ‘섭정을 통해 폭정을 일삼은 요부’(천추태후) 등으로 폄훼되기까지 했다. 2009년판 해석은 다르다. 오히려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거란과 맞선 ‘국내 최초 여장군’으로 치켜세운다. “남성 위주의 틀을 깨고 뻗어나가려는 요즘 여성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천추태후’ 신창석 PD) 캐릭터인 셈이다. 이들은 남성의 보조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승부하고 국가의 명운을 고민하는 리더들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대중의 상처를 보듬어야 할 불황기에 여성 리더들이 대중문화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다만 패권 지향적인 남성화된 리더십보다 ‘대장금’(MBC)의 한상궁이나 ‘주몽’(MBC)의 소서노처럼 모성에 바탕한 리더십을 어떻게 잘 구현할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포스트 해리포터

 
 
“대작을 찾아” 사활 건 출판계


2009년 문학·출판계에 던져진 가장 굵직한 화두는 ‘포스트 해리포터를 찾아라’다. 국내외 출판업자들은 해리포터의 뒤를 이을 대작을 찾아 헤매고 있다.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사진)’ 시리즈는 전 세계 4억 부, 국내에서만 1300만 부 이상 팔리며 성공신화를 썼다.

지난해 황석영의 성장소설『개밥바라기별』, 김려령의 『완득이』 등이 성공하면서 국내 출판계는 ‘포스트 해리포터’에 대한 열망을 더 키웠다. 우선 김종광·김도언·김숨·손홍규·김도연 등 기성작가들이 성장소설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문학과지성사 청소년문학 시리즈 ‘문지 푸른 문학’을 통해서다. 현기영의 자전적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도 실천문학사에서 청소년 버전으로 재출간된다. 사계절·비룡소·주니어시공사·푸른책들 등 아동물에 집중하던 기존 출판사는 물론 창비·문학동네 등 주요 문학 출판사들도 아동·청소년물의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특히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하는 ‘2009년 볼로냐 아동도서전’(3월 23~26일)은 아동·청소년물 출판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이 아동도서전에서 한국은 국내 작가와 작품을 널리 알릴 기회가 될 것이라서다.

이경희 기자




■기억의 귀환
‘과거를 되살린’ 박물관 100년



 
 
문명은 미래를 향한 사투이면서 끊임없이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주술이다.

100년 전 우리의 ‘마지막 황제’는 조선 왕조와 그 이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의 문을 열었다. 1909년 11월 1일 창경궁의 양화당(사진)·명정전 등에 만든 ‘제실(帝室)박물관’이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근대적 박물관의 효시다.

일본과 서구의 문물에 경탄한 개화파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박물관’의 건립을 상소했다. 황실은 삼국·통일신라 시대 불교 예술품, 고려자기, 조선시대 도자기와 회화 작품 등을 전국에서 수집했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박물관을 통해 기억의 문을 열자마자 이듬해 미래의 문을 닫고 마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올해는 우리의 근대 박물관이 100주년을 맞는 해다. 근대 문명의 의지를 갖고 불러낸 역사의 기억이 ‘박물관’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역사를 통한 근대의 기획이 한 세기를 맞는 해, ‘기억의 귀환’을 학술·문화재 분야의 2009년 키워드로 뽑았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근대 박물관 100주년을 기해 5월과 11월에 국제학술대회와 포럼을 열고 곳곳에서 박물관 축제를 연다.

한편 인간과 문명은 현재의 모습 그 자체가 인류사 진화의 박물관이다.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과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기도 하다.

배노필 기자




■극단의 감성
‘더 센 이야기’ 경연장 충무로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쉬리’는 한국영화 흥행사를 다시 썼다. 남북대치의 냉엄한 현실을 대담하게도 액션·멜로로 소화해 ‘타이타닉’을 앞지르는 관객을 불러모았다. 불황기일수록 ‘안전빵’의 뻔한 기획으로는 관객의 지갑을 열지 못한다. 창작자의 지향과 개성이 뚜렷한 이른바 ‘센 이야기’가 대두되는 때다.

박찬욱 감독은 ‘복수 3부작’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센 이야기로 돌아온다. 송강호 주연의 신작 ‘박쥐(사진)’는 존경받는 신부가 흡혈귀가 되고, 친구의 아내와 불륜에 빠지는 파격적 내용이다. 올 충무로 기대작에 첫손 꼽힌 봉준호 감독의 ‘마더’ 는 범상한 모성애 드라마가 아니다. 철부지 아들을 살인죄에서 구하기 위해 이 어머니, “세상과 맞장을 뜬다”는 게 제작진의 전언이다.

이럴 때일수록 눈물은 진해야 한다. 원태연 시인의 감독 데뷔작은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라는 제목부터 절절한 멜러 감성을 내세운다. ‘너는 내 운명’의 박진표 감독은 신작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루게릭 병으로 온몸이 마비되어가는 남자의 사랑을 그린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이현세 만화’공포의 외인구단’은 드라마 ‘2009외인구단’으로 돌아온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열등 선수들의 인생역전 드라마야말로 이 혹독한 절망의 시기에 최적의 판타지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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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20년 前 종이자료를 꺼내며…







 



방학을 한 김에 자료 정리에 들어갔다. 재놓기만 한 종이자료를 잘 분류해서 책처럼 만드는 일과 1만여 권의 책에 나만의 분류번호를 만들어 붙이는 일이다. 종이자료는 주로 20여 년 전 유학시절 때 집에다 복사기까지 사다 놓고 저널논문과 단행본을 복사한 것이었다. 양이 제법 되어서 4cm 두께의 파일박스 400개를 사서 라벨을 붙이고 담았다.

그러다 문득 이 자료들 가운데 죽기 전에 한 번도 안 읽어볼 것들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내 전공은 건축역사이지만 소속이 공대라서 더 그랬다. 옆 교수들을 보면 최신 컴퓨터 몇 대 가지고 훌륭한 연구들을 척척 해내고 중학교 다니는 딸내미는 인터넷 검색만으로 거의 모든 과제를 다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50평짜리 시골 아파트를 전세 내서 서재로 쓰면서 5톤 트럭 3대분의 책을 짊어지고 2~3년마다 쫓겨나듯 이사를 다니는 수고를 하며 살고 있다. 종이자료 정리하는 걸 옆에서 본 누군가가 말했다. 자기라면 파일박스 400개 살 돈으로 스캐너를 사서 그 자료를 스캔받겠다고. 순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끼면서 시대에 너무 뒤떨어져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종이자료를 주제별로 분류하기 위해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입가에 작은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주옥같은 연구물들이라서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학문세계가 몇 단계는 성숙해지는 느낌이었다. 종이의 촉감을 지문 끝으로 비벼대는 쾌감도 제법 컸다.

온라인 자료만 잘 검색해도 웬만한 일이 꾸며지고 심지어 학자 흉내까지도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피라미드의 맨 끝 최고수가 되기 위한 진짜 고급 자료는 아직 모두 세계 유수의 도서관들 저 구석에 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꽁꽁 숨어있다.

지금이야 집에 앉아서도 쉽게 책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활자매체를 만들어내는 일 자체가 큰 노동이었던 수십 년 전, 심지어 100여년 전 연구물들을 훑어보노라면 활자 하나하나가 화살이 되어 내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나라와 인종을 떠나서 이렇게 힘들게 연구를 한 꼿꼿한 선배들의 결과물들을 복사기 몇 번 돌려서 쉽게 손에 넣는 호사를 누려놓고도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저런 불평만 하고 있는지 내 자신이 창피해졌다.


임석재 건축가ㆍ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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