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신경림 지음, 송영방 그림 / 문학의문학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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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의 출간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간 신경림 선생은 이와 비슷한 책을 출간하지 않으셨기에, '혹여 이제 부탁받으신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2009년 신경림 선생은 우리 나이로 일흔 다섯이다) 마음이 여려지신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선생님 말씀대로 '앞서 산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공부하며 자랐는가를 알았으면 해서였고, 또 하나는 오십여 년 전 문단의 풍속도를 아는 것이 우리 문학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였다.'는 취지로 정리하신 이 글들은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한국문학의 풍성한 결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채워져왔는가를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조태일, 한남철, 이문구... 그리고 작고한 숱한 문인들이 선생님의 글 속에서 다시 말을 걸어오는 이 책의 의미는 단지 문학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우리 선배세대들이 살아온 삶의 풍경이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한국문학사'가 아닌가 싶다. 

 해맑은 신경림 선생님의 미소를 오래토록 볼 수 있는 시간들이 우리 후세들에게 주어지기를... 

(서귀포 인근 밤바다에서 수평선 멀리 펼쳐진 어선들의 불빛을 보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함께 80년대 MT 풍경을 연출해주시던 선생님) 

(내가 읽은 책 뒤편에 남긴 메모 - '책장을 덮으며... 감사합니다. 선생님. 2009. 5. 26. 서울역 광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하고 돌아온 일산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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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신경림 지음, 송영방 그림 / 문학의문학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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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이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것도 거의 같은 무렵이었던 것 같다. 동백림 사건이란 다 알다시피 1967년 독일(통일 전 서독) 유학생들이 호기심으로 동독에 속한 동베를린을 구경하러 갔다가 간첩으로 몰린 사건이다. 이응로, 윤이상 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예술가를 포함해 많은 유학생들을 현지에 파견된 기관원들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납치해 국내로 데려옴으로써 군사정권의 무뢰배적 성격을 국제적으로 드높였다. 주모자가 사형, 무기징역, 20년 징역 등 중형을 받은 이 사건에 천상병이 연루된 연유는 간단하다. 그의 서울 상대 동기에 강모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무렵 유학을 마치고 와서 모교의 전임으로 있었는데, 그 역시 천상병이 가끔 찾아가, 그의 표현에 따르건대 술을 뺏어먹는 상대였다.(결국 이로 인한 모진 고문으로 폐인이 된 천상병 시인...)-156쪽

구자운도 결국 싸구려 번역으로 밥법이를 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전화를 받고 가보면 다른 사람들 두엇과 함께 우중충한 여관방을 얻어 아예 자고 먹으면서 누렇게 뜬 얼굴로 번역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시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아, 술을 마시면서도 그의 시가 실려 있는 문예지를 보여 주며 독후감을 듣고는 했다. <목애시편>은 그가 여러 번 낭송하던 시다. 뿐 아니라 남의 시도 열심히 읽어, 가령 내 시가 <창작과비평>에 실렸을 때는 찬탄을 아끼지 않으면서, '빨리 시집을 내라구. 내가 근사하게 발문을 한번 쓸게' 하고 재촉을 했다. 하지만 그는 내 시집에 발문을 쓰지 못하고 1972년에 타계했다. 몸을 마구 굴리는 데다 못 먹어 생긴 병으로였다. -181쪽

결국 이 시가 <창작과비평>에 실리게 되었고, 이것이 조태일의 '신경림은 내가 추천한 시인'이라는 싱거운 소리의 근거가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는 겉모습과는 달리 세심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가령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아내를 잃은 뒤의 얘기다. 추석 며칠 전이었다. 같이 귀가하던 그가 함께 시장엘 들러 가자고 권했다. 무심코 따라갔더니 아이들 양말이며 내의를 한 보따리 샀다. 그가 독실한 불교신다(그의 선친은 일본 유학의 대처승이었다)임을 알고 있는 나는 그가 절에라도 가려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헤어지면서 그는 옷 보따리를 내가 탄 택시 안으로 던져 넣었다. '애들 옷은 한꺼번에 사야지 잘 안 사게 돼요.' 덕택에 나는 아이들 속옷이며 양말 걱정을 안 하고 그해 겨울을 넘겼다.-192쪽

그(조태일)는 사람을 좋게 보고 좋게 말하는 특성이 있었다. 우리는 같은 방에 있게 되었고, 내가 첫 조사를 받고 돌아오자 그는 우리를 담당한 사람을 '참 좋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운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도 역시 그로부터 조사를 받았는데, 조금밖에 안 때리고 담배도 주더라는 것이다. 일주일 여 조사를 받고 구속되어 종로경찰서로 넘어올 때는 함께 수갑을 찼다. '이거, 고목에 매미가 붙은 거여, 코끼리하고 생쥐가 한 끄나풀에 묶인 거여!' 종로서에 가니 심심했던지 형사들이 한마디씩 했다. 조태일은 같은 수갑에 묶인 손을 크게 저어 나를 뒤뚱대게 했고, 여기가 어디라고 장난질이나며 형사들은 호통을 쳤다.-195쪽

보름 동안의 유치장 생활도 함께했고, 구치소로 넘어갈 때도 같은 수갑을 찼다. 우리보다 2,3일 늦게 잡혀온 구중서가 혼자 차도 괜찮다며 함께 차기를 양보했기 때문이다. 구속한 검찰관조차 우리가 왜 구속되었는지 몰라, 아마도 문단에서 몇 사람 뽑아서 비례대표로 구속한 것 같다고 짐작한 이 사건에서 나와 구중서는 한 달 만에 기소유예로 나왔지만, 조태일은 한 달을 더 살았다. 광주 태생인 만큼 김대중 씨와 어떤 커넥션이 없나 해서 차별을 받은 것이다. '나는 도저히 감옥하고는 체질이 안 맞는다고 했더니 그 말로 일리 있다고 내 준 거라고요.' 공소기각으로 나온 그는 이렇게 또 한번 싱거운 소리를 했다. -195쪽

마지막 시집이 되고 만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가 나온 99년 여름이었다. 시가 너무 좋아 언제 술이라도 한번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그가 병이 났다는 소식이 들리고, 이어 시골로 요양을 떠났다는 말이 들렸다.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했더니 반가워하면서 '부처님한테 몇 년 만 더 살게 해 달라고 빌었더니 십 년은 더 살게 해 주시겠데요.' 하고 남의 말 하듯 했다.
얼마 아니해서 다시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 큰 덩치가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볼 것이 두려워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한 후배가 전화를 해왔다. 내 근황을 묻기에 연락을 할까요, 했더니 내버려 두라면서, 그 양반 겁이 많아 못 찾아 올 거야 하더라는 것이다. 내 속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찾아 갔더니 그는 팔에 링거 따위를 주렁주렁 잔뜩 달고 누워 있다가 나를 알아보고는 '참 이상한 일이지요, 지구상의 60억 인구 중 암이라는 놈이 왜 하필 나한테 달라붙었을까요.' 하고 농부터 했다.-196쪽

그 뒤로 손춘익은 상경하면 꼭 전화를 했고, 불러내었다. 스승과 선배를 존경하고 친구와의 신의를 중히 여기는 점에서 이문구와 비슷한 성향의 그는, 전화 앞에서 내가 주머니와 저울질하며 망설이면 '아우가 시골서 오랜만에 올라와서 존경하는 형님 좀 뵙고 갈라카는데 못 나오겠다믄 되겠능교. 퍼뜩 나오소!' 하고 호통을 쳤다. 나가 보면 대개 이문구가 같이 있었고, 술값은 늘 손춘익이 맡았다. '서울 오믄 서울 왔으니까 시골 사람이 내고 시골 오믄 서울 사람이 왔으니까 또 시골 사람이 내고, 다 이러는 거 아닝교.'-227쪽

그(손춘익)가 얼마나 우리를 불러 내리기를 좋아했는가를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포항의 한 전문대학의 초청강연에 염무웅과 나를 초대하도록 그는 강권했다. 당시 염무웅은 해직 당해 있을 때여서 학교에서는 여간 꺼리지를 않아, 그의 강권을 거부하지 못하고 편법을 썼는데 염무웅이라는 이름 대신 안 알려져 있는 염홍경이라는 본명으로 벽보와 플래카드를 붙인 것이다.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구에서 온 시인이 바로 본인 앞에서 염홍경이라는 평론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고 해서 모두들 실소했다.-229쪽

그(한남철)는 친한 사람이 쓴 작품이니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쓰니까 그 사람을 좋아했다. 가령 그와 박연희씨는 면식이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도 신문에 연재되고 있던 <홍길동>이 너무 좋아 그에게 편지를 썼다. 결혼이 임박했을 때로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쓰는 선생에게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 없어 알린다는 내용이었다. 박연희 씨는 그때까지는 생면부지였던 한남철의 결혼식에 참석했고 그 뒤 둘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가 늦은 결혼을 할 때 나는 백낙청, 이계익, 임재경 등과 함께 함을 졌다. 상처하고 있는 처지여서 고사했으나 '그러니까 나같이 되지 말라고 후생한테 본보기를 보여 줘야지!' 하며 막무가내였다.-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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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음 잡고 그간 읽기만 하고, '리뷰'나 '밑줄긋기'를 작성하지 않았던 책들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이렇듯 글을 작성하는 일이 마치 밀린 숙제처럼 부담스럽기만 하다. 제대로 생각을 정리해 리뷰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럴 경우 책 한 권에 족히 한 시간씩을 할애하게 되는데, 이 시간이 외려 아깝기만 하고, 미처 읽지 못해 쌓아둔 책들을 읽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알라딘 서재에 읽은 책에 대한 기억이나 메모를 남긴다는 것은, 내 지나온 독서편력을 시간순서에 따라 정리해두어, 훗날 '그 나이에 내가 읽어간 책'들과 그 갈피 사이에 생각키웠던 것들을 떠올려보는 것이고, 또 아이들에게 '책 읽는 아빠'라는 이미지를 늘 갖게 해주는 '간접효과'를 도모하자는 것인데... 늘 정리가 부족하다. 

지난 3월 이후 지금까지 읽었으나 정리해두지 못한 책들을 대충 추려봐도,

노무현 살리기 /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 님은 갔지만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 1 / 화차 /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나의 국토 나의 산하 1 / 로스트 심벌 1 / 고우영 열국지 1,3,4,5 / 디셉션 포인트 1,2 / 심야식당 1 / 파한집 1 / 운명이다 등등... (서재 어느 구석에 또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연하게도 리뷰나 밑줄 정리가 짧아질 수밖에 없지만, 정리를 하면서 살자. 특히 '밑줄긋기'는 그 책에 대한 생각을 다시 오롯하게 기억해낼 수 있는 '좋은'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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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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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또 다른 시작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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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호수의소녀 2010-03-21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빠!~
나 왔엉!~
어디다 글을 써야 할지 몰라서 여기에다 씀..
>ㅡ<

달빛푸른고개 2010-03-3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 앞으로는 방명록을 찾아보도록... ㅎㅎ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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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길 벼랑 끝 100미터 전.
하느님이 나를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을 거야.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 프랑스 시-89쪽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돈이 많지 않아도 상대적 박탈감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게 훨씬 중요하고 현실적이지 않을까...(중략)... 돈이 있어야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종속된 자유가 아니겠느냐고, 돈 없이 자유로운 것이 진짜 자유 아니냐고...-188쪽

우리가 양치 한 번 할 때 흘려보내는 수돗물의 양은 10리터 정도로 에티오피아의 한 사람이 하루에 쓰는 물보다 두 배나 많다. 샤워하면서 쓰는 물은 평균 50리터, 아프리카의 한 가족이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씻는 물보다 훨씬 많다. 놀랍지 않은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가? 물론 우리가 한국에서 물을 아껴 쓴다고 해서 그 아낀 물이 고스란히 아프리카로 가지는 않겠지만 그 미안한 마음, 그래서 이제부터 이 한정적인 자원인 물을 아껴 써야겠다는 마음은 지구 전체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매우 의미 있는 걸음이 될 것이다.-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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