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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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공감하기 어려운 감상이 세태를 보는 방식에 대해 고정관념이 강한 내(독자) 탓인지, 아니면 작가의 감성 또는 번역가의 잘못 탓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는 책이지만, 다루는 소재나 그 발상이 생경하기도 하고, 이 작가는 이러한 소재에 천착되어 있나 하는 의구심이 있어 다른 리뷰들을 살펴보니 이 책이 개중 떨어지는 작품이라니 아직 관심을 접을만한 것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정리해본다.

'읽으면서, 어머나, 어쩜, 이라른 생각이 드셨다면, 저로서는 기쁜 일이겠지요.' (2001. 저자 후기)

'결국, 사랑이 인생 행복의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을 전달하려는 흔적이 느껴집니다...그 어떤 오해와 절망도 한 순간에 녹여버릴 수 있는 것 또한 사랑이 지닌 큰힘이겠지요.'(2005. 역자 후기 - 신유희)

토오루, 코우지 식의 사랑법이 일본의 동시대의 성모랄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즉, 보편적이지 않은 이러한 사랑법(스무살 연상의 여인과의 관계)이 사회성을 벗어났을 때, 이 작품은 스스로의 소재 안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연인에게 '하룻밤만 자달라'는 부탁을 하는 여자동창생을 표현할 때 이 소설이 단지 섹스만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무엇보다 불친절한 것은 조연역할을 하는(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하겠지만) 코우지와 키미코의 관계가 둘 간의 성격 탓인지 쉽게 드러나지만, 그리하여 그 허무함이 쉽게 이해되기도 하지만, 스무살 연하의 남자와 관계를 이어가는 여성인 시후미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점이다. 스무살의 집착적인(또는 순수한) 애정에 대해 받아들이는 감성과 심리에 대해서 극히 자제되어 있다는 것이 작가의 글쓰는 방식일지, 또는 스스로의 한계일지... 이런 생각으로 읽게되는 위와 같은 후기는 또 뭔지...

어쩌면 일본식의 사고방식이거나, 문학에 대한 일본 특유의 수용방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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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죽음 - 전2권
김진명 지음 / 대산출판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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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남벌]의 인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간의 정치소설이 비록 가상의 현실이긴 하지만, 주변의 여러 현상들을 조명하고, 치열한 취재로 단련되어,  '있을 법한' 서사로 옮겨냄으로써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기능이라고 할까?  현실의 정치사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만화>와 <소설>의 특성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착근한 현실의 강팍함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힘의 제공 비슷한 기능... 그 가능성의 힘이 끌어당기는 흡입력이 그 인기현상을 해석하는 틀이지 않을까?

그 울림의 폭은 작가의 새로운 시각이나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의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면, 이 책의 경우에는 그러한 울림이 공허하다는 생각이다. 작가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어렵지 않은 평이한 문체(속도감 있는 전개 등)는 저자 문체의 큰 특징이겠다. 그런데 그 안에 스며있는 문제인식과 사건전개의 방향은 외려 일반적인 역사인식에서 보다 새로운 시각의 제공하기보다는, 도그마일 수도 있는 기존의 인식의 각질을 더 두텁게하는 역기능으로 상상력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동북공정 등의 중국 우경화를 '현무첩'과 그 무덤의 진실을 매개로 역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얼개를 세워가기 위해서, 주변국들의 이해를 적절히 활용하는 방식에서 몇 가지 오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역사적 사실로 새겨진 김일성의 죽음이 타살일 수 있다는 설정, 살인의 동기 또는 방조가 된 김일성의 인식, 즉 그가 중국에 대한 매우 심각한 우려 때문에 그 대항마로 미국에 전적으로(북한 내 미군기지 유치 등의 제안) 의존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은 소설적 장치로 보기에는 이미 진행된 역사적 '개연성'에 대한 몰이해 내지는 지나친 도식화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이미 대부분의 독자들은 90년대를 훌쩍 뛰어넘어, 한반도에 점철된 강대국들의 개입과정과 현재의 역학구조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어서 미국의 패권과 중국의 성장 등에 대해서 주변국으로서의 '선택'이라는 단순명제를 뛰어넘고 있는 과정 아닌가? 소설이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 가상이라는 전제로 인해 (조금 격하게 표현하자면) 도식화되는 것은, 특히나 저자의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되짚어볼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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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이야기 마시멜로 이야기 1
호아킴 데 포사다 외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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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먹지 마라... 마시멜로'

감히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류의 작가를 연상해보면(물론 모든 저서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호아킴 데 포사다, [핑]의 저자(안 읽어봐서 ^^;), 파울로 코엘류, 미치 엘봄([모리..] 제외), 스펜서 존슨, 그 외에도 많이 있겠지만 스티븐 코비...

아마도 모두 베스트셀러 또는 장기스테디셀러일 듯한 저서의 저자들이다. 최근에는 한상복씨의 [배려]도 꽤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고, 동일 저자의 [어린이를 위한 배려]도 출간되었다고 들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모 인터넷서점 리뷰에서 '모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밝힌 학생의 리뷰를 읽고, 바로 읽게 되었다. 당시(지금도 그런가, 알라딘은 아닌가?^^;) 베스트셀러 1위인 도서에 달린 리뷰어가 초등학교 6학년생이라... 전 국민이 책을 읽자는 MBC 공익프로그램의 헌신적인 캠페인이 옛기억이 된 지금, 직장인과 대학생과 초등학생이 모두 감동받는 책...  '축제'라고 보아야 할지, 그만큼 이 사회의 실태를 반증하는 '거울'이라고 보아야 할지... 줄거리와 교훈이 예견되는, 1시간 남짓한 시간에 읽어버린 책 한 권을 두고 생각하게 된다. 이 시기 독서현상의 한 징표로 기억하기 위해 리뷰를 남기지만, 내용보다는 그 현상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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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성석제 지음, 김경호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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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는 매우 친근한 소재이다. 업무와 관련된 경제서나 처세서 등은 뭔가 자신의 각오를 새롭게 다짐하는 듯한 자세로 읽어야 하고, 하다못해 여행정보서의 경우도 당장 낼모레 떠날 출장지와 관련한 것이 아닌 바에야 일종의 동경심을 갖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음식은 어찌 되었던 간에 하루 두세 번,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 접해야 하는 크고작은 선택의 '일상스러움'이겠다.

1960년생인 작가 성석제의 [소풍]은 산문집인만큼 작가의 기억 속에서 건져올린 '음식'을 소재로 사람살이의 풍경을, 한걸음 더 나가자면 사람살이를 통해 '음식'에 녹아 있는 지혜를 건져올리는 작품인 것 같다. 소재로 쓰인 음식의 종류를 보면 아마도 '너비아니' 아니면 미국에서 '통째로 먹는' 게요리 정도 이외에는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온갖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안동소주는 조금 비싸겠고, 고려호텔의 평양랭면은 아직은 저자니까 맛볼 수 있는 음식이겠지만... )

그 음식을 통해 세상살이를 보고, 우리의 '지나온' 역정을 다시 새겨보는 기억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특히나 그를 기억하는 누구나가 인정할만한 작가만의 특유한 문체를 보여주는 한 토막.

'택시기사가 일러준 집의 대문이 열려 있기에 나는 무심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쪽에서 일반 여염집과 다른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고 있는데 양반동네의 기품과 기운이 느껴지는 할머니가 나왔다. 여기가 안동소주를 파는 곳이냐고 묻자, 할머니는 술 같은 건 애저녁에 다 나가고 없다는 요지의 말을 웅얼대는가 싶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야야, 야야" 하고 누군가를 불렀다. 딸인지 며느리인지 모를 젊은 여성이 젖은 손을 한 채 나왔다. 할머니는 대뜸 "왜 대문을 열어놓아가지고 지나가는 개나 소나 다 들어오게 만드느냐"고 꾸짖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택시까지 타고 왔다 '개'가 돼버린 나는 무안한 얼굴로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개망신'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안동관광호텔의 매장까지 찾아가서 안동소주를 샀다. 가는 도중 동행에게 '술먹은개'라는 단어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가며.'(267~268쪽)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해가는 요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이라는 저자의 '과학적인(?)' 반성문, 우리네 음식의 소중함을 만화로 웅변하는 [식객]과 더불어 저자의 연륜에 맞게 시대를 관통하며 우리네 음식을 통해 가까운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인 삶의 변화과정을, 음식에 대한 기억을 통해 되살려내는 작가의 역량을 경험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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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편들기 요즘처럼 힘든 적 없었다
[인터뷰]10년 만에 새 책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낸 하종강 소장

   
사회의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또는 술자리의 대화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노동운동이 한국 사회의 희망"이라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은 두려움 없이 “아니다, 그래도 희망은 이 땅의 노동운동에 있다”고 항변한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담아 책 한권을 펴냈다. 그의 항변은 그대로 책 제목이 됐다.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가 틈틈이 자신의 홈페이지 등에 써온 것을 중심으로 이곳저곳에 단편적으로 실렸던 글들을 덧붙인 것이다. 그래서 글 하나의 분량은 보통 서너쪽 정도다. 긴 글 이래봐야 6쪽을 넘지 않는다. 그런 작은 글들이 7개 모자라는 100편이 실려 있다.

하종강이라는 이름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도 지난 1994년 그의 글이 6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수상작을 모은 작품집에 실리면서부터가 아닌가 한다. 이듬해 전태일문학상 수상작의 후속편쯤에 해당하는 글들을 모아 <노동자는 못말려>라는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만에 새 책이 나온 것이다. 또 앞의 두 권은 다른 사람들과 저자의 자리를 공유한 책인데 반해 <그래도...>는 자기 이름만으로 저자의 자리를 메웠다.

오래 만에 나온 새 책

10년 동안 그가 희망을 부여잡고 놓지 않은 노동운동은 많이 변했다. 민주노총이 탄생하고, 총파업이 있었고, 노동자 의원이 국회에 입성했고, 공무원노조가 결성됐고, 현대중공업노조가 제명되고,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비리로 구속됐다.

이 와중에 그는 매년 300회 가까운 노동조합 교육을 다녔다. 어지간한 노조는 최소한 한번쯤은 방문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종강만큼 한국 노동운동의 속사정을 훤히 들여다보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런 그가 10년 만에 펴낸 책의 제목은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다. 이는 돌려 이야기하면 우리 주변에 노동운동은 이제 희망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동운동에 적대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노무현으로) 대통령이 바뀐 뒤 우리 사회에 한꺼번에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기가 요즘처럼 힘든 시대가 없었습니다. (...)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는 말을 했다가는 거의 매국노 취급을 받는 것이 요즘 현실입니다.” (196쪽)

시대가 그러한데 하종강은 왜 여전히 노동운동이 한국 사회의 희망이고, 나아가 더 많은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1년에 300회 가까운 강연과 교육

지난 4일 오후 7시 그의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는 조촐한 출판기념식이 열렸다. 책의 출간을 자축하는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저자는 책을 내준 출판사에, 출판사는 이런 원고를 쓰신 저자에게 서로 감사하는 그런 자리였다. 자리가 끝날 무렵 책에 대한 이야기와 노동운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어봤다.

“공무원노조의 파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이해가 가능합니까? (...) 우리 사회는 수십 년 세월동안 노동조합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을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해 온 사회입니다. 자신의 의식을 그렇게 조율당해 온 사람들은 나름대로 노동조합에 대해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99쪽)

   
▲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열린 출판기념모임은 하종강 소장의 강연으로 시작됐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모습도 보인다.
 
하종강은 소박한 마음에서 단순히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는 노동운동을 코너로 몰아붙이는 사회의 움직임이 결국 경제를 비롯해 정치와 교육 등 우리 사회의 여러 측면을 왜곡시키는 구조적 힘과 동일하다고 본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이런 장벽을 뚫고 더 확장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신념체계는 그의 책 전반에 걸쳐, 문장 하나하나마다 드러난다.

이미 책을 읽고 그의 ‘믿음’을 눈으로 확인한 마당에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되묻는 것은 멋쩍은 일이다.

“저보고 2% 부족하다고들 해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하종강은 너무 노동자 편만 드는 것은 아닌지, 다시 말해 현재의 노동운동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닌지?

“후배들이 저를 보고 2% 부족하다고 합니다.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이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너무 순순히 인정해버린다. “저도 강연에서 활동가들에게 노동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두들 벌떼같이 나서서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마당에 저까지 거기에 하나 더 보탤 필요는 없겠지요.”

심지어 노동운동 내부에서조차 정규직 노동운동은 한계에 봉착한 것이 아니냐는 탄식이 나온다. 그러나 하종강 소장은 여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한계가 있다는 것이 포기할 이유는 못됩니다. 정규직 노동운동이 비정규직을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하더라도 시작되고 있는 것들을 의미 있게 바라봐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노동운동 활동가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래서 활동가들의 의식이 중요한 겁니다. 현대자동차노조의 산별전환투표가 한번 부결됐습니다. 그러나 부결이라는 결과만 보지 말고 그 거대한 사업장의 속된 말로 대우 좋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산별전환에 찬성했다는 것을 의미 있게 봐야지요.” 거기서 조금 만 더 나아가도록 하는 활동가들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그것이 노동운동의 큰 성과로 남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공장의 임금은 더 올라가야 합니다”

하종강 소장은 정규직 노동운동에 쏟아지는 비난의 실체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론이 고약합니다. 언론은 비정규직에 온정적인 척하면서 노동운동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에 대해 어떻게 하는지는 보도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이익과 일치하기 때문이지요.”

그는 그래서 대공장 노조의 이기주의라는 세간의 시선에도 동의하지 못한다. “대공장의 임금을 줄인다고 해서 비정규직의 임금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라면 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겠습니까?”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돼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줄여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경제에 더욱 해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78쪽)

그런 그도 우리 노동운동이 침체기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요즘 말로 바닥을 찍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더 하락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본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그는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의 비판보다, 노동운동의 사회적 확대가 더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모의 단체교섭을 시킵니다. 그리고 교섭을 ‘민주주의와 공동결정의 장’이라고 가르칩니다.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이 아이들의 생각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들어갑니다. 그러나 우리 교과서는 노동운동에 대해 적대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제가 신입사원교육에 가서 ‘여러분도 이제 조합원이 됐다’고 하면 신입사원들 대다수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립니다. ‘내가 왜 노조에 가입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겠지요.”

노동운동에 적대적인 사회에서 노동운동을 사회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이 우리의 삶을 ‘몇 센티미터라도 진보’하게 만든다고 하종강은 확신했다.

“우리 교육에서 ‘노동’을 가르친 적이 있나요”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을 거의 매일 들으면서도 내가 월드컵 축구 경기에 환호작약한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월드컵 축구에 열광할 수가 없다.” (234쪽)

또 다시 월드컵의 계절이 다가온다. 4년 전에 쓴 글에서 하종강 소장은 월드컵의 열광 뒤에 가려진 소박하지만 절박한 요구들에 가슴이 편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절대로 월드컵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조합 간부니까 월드컵을 즐기면 안된다라는 이야기는 성립이 안되지요. 그러나 월드컵을 즐겨야 할 권리에 함께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에게 언론과 사회가 눈길한번 주지 않는 것, 또 즐길 권리를 위해 노동자의 권리가 제약받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여기는 인식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월드컵이 즐겁기만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날 출판사 식구들과의 자리에서 하종강 소장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어느 분이 올린 글 하나를 소개했다.

“여기 오기 전에 급하게 제 홈페이지를 봤는데 어느 분이 ‘5월 그날이 다시 왔습니다’라는 짤막한 글을 올리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꼭 있을 것 같아 몇 번을 봤는데 없더군요. 이곳으로 오면서 내내 그 뒤에 혹시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라는 말이 붙어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하종강의 부채의식과 기억

26년 전 이야기다. 80년 5월 광주 그 자리에 자신은 있지 않았다는 부채의식을 이야기한다. 그는 책에서도 자신이 역사와 사람들에게 가진 부책의식을 이야기했다. (362쪽)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가 요즘 강연을 다니는 노동조합의 간부들과 조합원들 중에는 이제 그런 역사적 부채의식을 가지지 않는 세대의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단위노조일수록 그런 젊은 세대의 간부들이 많을 것이다. 전태일과 광주뿐만 아니라 박종철도 박창수도 잘 모르는 세대는, 부채의식이 없는 세대는 어떻게 노동운동에 헌신할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이 몸담은 노동운동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억지로 부채감을 떠넘길 수도 없지요. 그래서도 안되고요. 다만 노동운동이 사회의 여러 영역으로 확장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경험들이 생길 겁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의 사회적 확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경험을 달리하는 세대간에도 노동운동을 통해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그가 강조하는 노동운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그가 꿈꾸는 노동운동의 모습, 단상들, 노동자에 대한 그의 짙은 애정은 책을 통해서, 그리고 앞의 이야기들에서도 이미 반복됐다. 그런 것들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서도 공유되는 노동운동의 이념과 목표를 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분명히 있지요. 활동가들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고, 노동운동의 이념과 목표는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넓은 의미로 사회주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가 반드시 옳다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아래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과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노동운동의 목표이고 그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에 대해 고민해야겠지요.”

한가지 의문이 풀렸다. 책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었던 하종강의 버팀목들, 노동자에 대한 애정과 노동운동에 대한 믿음에는 다른 하나의 신념이 있었다.

“이념과 목표가 없는 노동운동은 없다”

   
▲ 하종강 소장은 출판사 직원들이 사인을 부탁하자 '처음이라 어색하다'며 쑥쓰러워했다.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지만 이 땅의 자본가들이 제대로 된 자본주의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받을 임금보다 더 많은 돈을 한번에 써버리는 이상한 회사들이 없어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운동은 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더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하종강은 믿는다. 그런 믿음을 1년에 300여 곳에 가까운 노동조합과 단체를 돌며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노동운동을 통해 가슴에 품어야 할 것은 자본주의를 극복한 대안적인 사회와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가 매일 만나는 노동자들의 삶이 그를 흔들리지 않게 만든 힘이었다면 그의 사상적 기반은 그가 긴 시간동안 곁눈질 한번 하지 않게 만든 또 다른 힘이었을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하고 싶은 말은 참 많다"고 했다. 그러나 강연에서 자신은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분명하게 구분한다’고 했다. 그 누구보다 노동조합 판을 훤히 알고 있는 그가, 조합원들 눈빛만 봐도 그 노동조합의 성향이 파악될 그가 특히 요즘 들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으리라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러나 제 역할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노동자들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활동가들 스스로가 노동운동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동료들,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도록 해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해야 할 말들이 무엇인가를 잘 판단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생각과 말들이 모여 책 한권을 만들었다. 그리고 책 제목은 그의 마음을 그대로 옮겼다.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입니다.”

2006년 05월 09일 (화) 08:51:36 장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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