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 밥
토드 홉킨스 외 지음, 신윤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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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아저씨가 준 여섯가지 지침들..
 
1)지친 머리로는 일할 수 없다
2)가족은 짐이 아니라 축복이다
3)투덜대지 말고 기도하라
4)배운 것을 전달하라
5)소비하지 말고 투자하라
6)삶의 지혜를 후대에 물려주라.
 
이러한 '현미경'으로 살(!) 수 있다면...
 
낙관에 찬 이 책을 보면서, 개인의 '실존'으로 치부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실존'의 문제는 삶에 대한 태도와 자세에 결부되기도 한다. 그리고 적잖은 지혜를 가르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를 갖추면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비관적일지는 몰라도 삶에 주어지는 여러 조건들을 '자세'의 견지로만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은 왠지 뛰어넘을 징검다리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용기'라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이 아닌지... 그 판단은 결국 개인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고...
 
뭔가 혼동된 느낌. 그러나 그것이 삶이라는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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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 과학수사와 법의학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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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날개에 '저자 소개'에 이어지는 글이다.

'이수광(저자)은 오랫동안 조선시대 살인사건 기록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는 조선시대에 일어난 살인사전을 살피는 것은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살피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그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생생한 역사서를 집필할 계획이다.'

위의 글은 '저자의 변'일 수도 있겠고 출판사의 '대리설명'일 수도 있겠다. 지나온 역사에 대한 고찰을 풍성하게 하는 일은 내일을 볼 수 있는 거울의 기능이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일이다.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여 '느끼는 만큼만'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고(그래서 개인적으로 천착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 중론으로서는 희석될 수밖에 없고, 그 또한 겹겹으로 쌓여진 진영의 장막으로 혼돈스러울 수밖에 없는 요즘에서야, 진정 학자로서의 사명감을 근간으로 하는 집필과 발표, 그리고 수용이라는 과정은 그 순환과정 속에서 단련되고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최근에 근대사에 대한 관심, 특히 생활사(이 책을 '미시사' 범주라고 규정할 수도 있겠다.) 부문에 대한 관심이  저작들을 양산케 한다. 이러한 경향일수록 자료인용의 방식이나 저자 의견의 수위 등 '유기체'로서 자기기능을 제대로 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논리의 엄중함이라고 할까) 하지만 양산되는 책들 가운데는 그러한 자기함량에 미치지 못하는 책들이 일부 보여진다는 생각에서, 혹시 시류에 흘러든 '상업주의'는 아닌지 하는 우려 때문에 다소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중 매우 뛰어난 작품들이 있기도 하다.(대표적으로는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등) 예전 기록에 대한 단순한 나열이거나, 검증되지 않은 평가에 대해서 자기 해석(또는 상상력)의 범위를 혼돈하는 책들이 독자들을 실망시키기도 한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생생한 역사서...'

이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보면 위의 표현이 매우 호소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독서 후에 느끼는 생각은 '과연 충실한가' 하는 생각이다. 상대적으로는 우월하지만, 그 '상대성'은 무엇일까?

문제는  '사료 해독능력과 이를 올바로 전달하는 매개자의 능력'  문제는 아닐까? 책을 덮으며 느꼈던 '아쉬움'은 '기대' 때문이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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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40일 간의 낮과 밤 - 에베레스트.안나푸르나 트레킹 입문
김홍성.정명경 지음 / 세상의아침 / 2006년 10월
절판


나의 쿰부 순례는 나에게 아직 그리움이 남아 있는지를 묻는 순례였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내가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더 높이 올라갈수록, 더 멀리 떨어질수록, 그리움이 커진다는 사실이다.-102쪽

양진(압빠 셀파의 부인)은 압빠 셀파는 어디 갔나고 물었을 때 '베이스캠프'라고 짧게 대답했다. 언제 돌아 오냐고 물었을 때는 '시즌이 끝나면...'이라고 말끝을 흐렷다. 그녀는 뜨개질에 열중하고 싶어 했다.
그 때는 미처 몰랐지만, 뜨개질은 그녀의 기도였다. 남편이 더 이상(열두 번이나 올랐으면 됐지?) 정상을 향하지 말고 베이스캠프에 머물기를 바랐다. 그리고 하루 빨리 시즌이 끝나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빌면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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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40일 간의 낮과 밤 - 에베레스트.안나푸르나 트레킹 입문
김홍성.정명경 지음 / 세상의아침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10월에 읽은 책을 이제야 허겁지겁 리뷰를 올리는 것은 내 게으름 탓이다. 책을 읽은 후 이렇듯 읽은 소감을 정리하지 않는 경우에는 (나이듦의 탓인지는 몰라도^^) 내용조차도 쉽게 잊혀지는 책들이 적지 않다.(나이들보다는 집중의 문제이겠지만)

이 책은 지금 리뷰를 쓰는 순간에도, 이 책을 다시 손에 잡는 순간에도 '히말라야의 바람'을 내 곁에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체크해두었던 귀절로 돌아가보면,

'2003년 봄의 쿰부 순례에 모셨던 월정 스님께서는 이 투클라 언덕에 이르러 아마다블람의 수직 암벽에 현현한 좌불을 우러러 절하고 합장하셨다. 스님께서는 '불국정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환희심을 내게 하는 곳으로는 이만한 곳을 보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그런 불국정토에 사는 셀파 자신들은 정작 먹고사는 데 급급한 나머지 보배 중의 보배를 잊고 있는 것을 아쉬워하셨다.'(94쪽)

'히말라야'를 동경하는 마음은 시대와 정황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단지 경제력이 예전보다 넉넉해져서 그곳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이 또한 그리 부정할 일은 분명 아니다) 어쩌면... 더 삭막해진 환경 때문에 갖는 동경이라면, 그만큼 이 땅이, 이 사회 내지는 세계는 삭막해가고 있다는 의식의 반증이 아닐까. 차츰 생각해볼 일이지만, 경제력이나 삭막함이나 그 둘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균형은 각자의 몫일뿐...

'아름답고, 그것을 최대한 구현하려한 책'이라는 점에서는 손색이 없다. 특히 이미 고인이 된 부인의 유고에 비쳐진 '삶'과 와 그들의 여정과 체현의미에 대한 이해에 다가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다가갈 수 없어서 그 동경은 더욱 커질 것이니... 두 분의 저자가 살아오고 있는 삶에 대한 동경이 있고, 그것이 단지 그들의 '구체적인 삶'보다는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상징'으로 이해되는 것은 이 땅, 이 시간에 호흡하는 삶들의 '갈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많이 읽혀졌으면 하는 책이다. 마땅히 올해 내가 읽었던 책 가운데 으뜸 중 하나다. 단(^^), 아직 출판사의 역량이 서툰 점은 차례면의 '실수'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어느 독자도 그것을 흠잡기에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함의'가 크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단, '동경'으로 이 책을 읽을 것인가, '정보'로 이 책을 읽을 것인가, 이러저러한 복합적인 판단의 '평가'로 볼 것인가는 독자의 몫이 아닐까.

많은 사진들(대부분 저자들이 직접 촬영했고, 일부는 진00 기자의 사진이 포함된)을 통해 책의 실감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되어 감사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감히...

고인의 명복과 남은 분의 평화를 기원해본다. 진정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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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4분의 1
오사키 요시오 지음, 우은명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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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키 요시오의 연작소설인 <파일럿 피쉬>와 <아디안텀 블루> 이후에 읽은 책이다. 일본에서의 출간시기를 보면 상기한 두 권이 먼저 출간되었고, 이 작품이 그 뒤로 2003년에 출간되었다. 하지만 4편의 소설을 모아놓은 이 소설집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을 했다. 특히나 표제작 '9월의 4분의 1'은 제명 자체가 프랑스의 한 지하철역의 이름이라는 '장치'가 있기도 하지만,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벗어나 최대한 객관적인 환경 설정 속에서 주인공의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다.(소설 내의 서사가 우연에 기대어 있는 한계, 그럼으로써 생경하거나 인위적이라는 한계는 있겠지만)

'(만남이 있은 13년 후) 나는 초가을 파리의 신선한 공기에 몸을 내맡긴 채, 그녀 역시 그러했듯이 끈질기게 나오를 기다렸다. 물론 그녀가 나타날 리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 그녀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소설을 단념하지 마. 언젠간 반드시 쓸 수 있다.'고 말해준 나오의 격려를 다시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중략) 미리 설계도를 그리고 기능을 정한 것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시절. 그리고 그 설계도에만 매달려서, 실존하는 소설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도 못했던 시절. 그저 괴로워서, 하지만 그 폐쇄감을 어떻게는 타개하기 위해서, 무턱대고 책상에 달라붙어 있던 나날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문장.

'나는 유스호스텔에서 스쳤던...(중략).. 그리고 그녀의..(중략)... 내 성(중략)...을 떠올리고, 그리고 소리를 내지 않고 우는 등의 떨림을 떠올렸다.'

내 상상력의 고루함인가, 아니면 시대의 반영인가. 그리고 시대의 반영이라면 그것은 우리와 얼마나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인가.

아직은 일본작품의 생소함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나이듦의 탓일까, 나보다는 더 연륜이 많은 작가의 작품을 이렇게 이해하다니.. 내 한계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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