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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죽음 - 전2권
김진명 지음 / 대산출판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90년대 초반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남벌]의 인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간의 정치소설이 비록 가상의 현실이긴 하지만, 주변의 여러 현상들을 조명하고, 치열한 취재로 단련되어, '있을 법한' 서사로 옮겨냄으로써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기능이라고 할까? 현실의 정치사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만화>와 <소설>의 특성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착근한 현실의 강팍함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힘의 제공 비슷한 기능... 그 가능성의 힘이 끌어당기는 흡입력이 그 인기현상을 해석하는 틀이지 않을까?
그 울림의 폭은 작가의 새로운 시각이나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의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면, 이 책의 경우에는 그러한 울림이 공허하다는 생각이다. 작가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어렵지 않은 평이한 문체(속도감 있는 전개 등)는 저자 문체의 큰 특징이겠다. 그런데 그 안에 스며있는 문제인식과 사건전개의 방향은 외려 일반적인 역사인식에서 보다 새로운 시각의 제공하기보다는, 도그마일 수도 있는 기존의 인식의 각질을 더 두텁게하는 역기능으로 상상력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동북공정 등의 중국 우경화를 '현무첩'과 그 무덤의 진실을 매개로 역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얼개를 세워가기 위해서, 주변국들의 이해를 적절히 활용하는 방식에서 몇 가지 오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역사적 사실로 새겨진 김일성의 죽음이 타살일 수 있다는 설정, 살인의 동기 또는 방조가 된 김일성의 인식, 즉 그가 중국에 대한 매우 심각한 우려 때문에 그 대항마로 미국에 전적으로(북한 내 미군기지 유치 등의 제안) 의존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은 소설적 장치로 보기에는 이미 진행된 역사적 '개연성'에 대한 몰이해 내지는 지나친 도식화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이미 대부분의 독자들은 90년대를 훌쩍 뛰어넘어, 한반도에 점철된 강대국들의 개입과정과 현재의 역학구조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어서 미국의 패권과 중국의 성장 등에 대해서 주변국으로서의 '선택'이라는 단순명제를 뛰어넘고 있는 과정 아닌가? 소설이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 가상이라는 전제로 인해 (조금 격하게 표현하자면) 도식화되는 것은, 특히나 저자의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되짚어볼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