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베이터 - 트렌드를 창조하는 자
김영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김영세, 트랜드를 창조하는 자 이노베이터(랜덤하우스중앙, 2005. 5)

- [12억짜리 냅킨 한 장](2001)의 개정판

 

디자인은 00이다.(39챕터)

Design is

Imagination/Visualizing/Making Difference/Creating New Use OF Tecnologies/Understanding The Needs Of Real World/Thinking Differently/Inventing/Getting Paid For What You Enjoy Doing/Making Ourselves Feel Good/Communicating/Making Comfortable Spaces/Selling Confidence/Entertaining Life/Forecasting/Finding Solution/Following Disigner’s Intention/Pleasing People/Creating Identity/Making Convenient Tools/Appealing TO Housewives/Protecting Ideas/Making Profit/Making Life Easier/Saving Lives/Helping Other People/Making Things Look Better/Negotiating/Compromising/Like Shooting For A Moving Target/Finding Better Ways Doing The Same Thing/Loving Others/So Complicated That Some People Don’t Really Know How Hard It Is/Emotinal Logic/Knowing How To Save Costs/Combining More Funtions/Making Job Opportunity/Inspring/Organizing Things/Making Change

 

변화를 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긍정적인 생각이다. 긍정적인 생각만이 혁신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나의 평소 철학이기도 하다.(프롤로그)

 

종종 사람들은 나에게 아이디어의 원천이 어디에 있냐고 묻는다. 나는 평소에 생활화된 습관들, 즉 사물에 관심을 갖고, 사용자를 관찰하고, 스스로 경험하고, 또 관련 지식을 챙김으로써 머릿속에 축적되어 온 정보들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한다. 상상이 습관화되면 일상의 사물들을 모두 상상 속에서 재탄생시킬 수 있다. 상상을 통해서라면 기존의 사물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해진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미래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18)

 

오늘의 강자가 내일의 강자가 아니듯이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미래의 산업 구도를 더욱 예측하기 어렵다. 이제 새로운 3년을 다시 시작한 레인콤과 이노디자인도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미래를 향해 다시 가치 혁신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단지 끊임없이 차이를 만드는도전만이 오늘 같은 내일을 보장해 줄 것이다.(32)

 

나는 흔히 디자이너를 요리사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요리사라면 누구나 비슷한 재료를 쓸 것이다.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온갖 야채, 고기 등 선택하는 재료에는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신선한 재료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재료를 어떻게 요리하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는 요리사의 재량일 것이다. 요리사는 저마다 살아온 환경과 습득한 기술이 다를 터이다. 그 차이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보며 즐길 수 있다.(36)

 

급변하는 디지털 신세계의 높은 파도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미디어랩의 네그로폰테 이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또는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은 앞으로 다 틀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지금의 시기는 기회이다.(37)

 

내가 블랙박스라고 부르는 디자인 프로세스였다. 이는 클라이언트의 구체적인 디자인 의뢰를 받지 않고도 가까운 미래의 소비 시장을 예측해서 디자이너가 먼저 상품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그에게도 무척 흥미로운 디자인 프로세스였으리라 생각된다…(중략) 그 기사를 읽으며 나는 기업의 아이디어를 단순히 그려주는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인 퍼스트 철학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해야 하는 디자인의 역할을 바로잡기 위한 나의 오랜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아..(45)

 

요즘 경영인들의 화두에 자주 오르는 경영 기법은 가치 혁신(Value Innovation)이다. 마침내 경영인들은 그동안 굳게 믿어왔던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 이론만 가지고는 더 이상 이윤 추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경쟁우위 이론이란 한 기업이 같은 분야의 경쟁 기업보다 더 많은 제품 혹은 서비스를 더 싸게 만들어서 경쟁 기업의 시장점유율을 뺏어옴으로써 경쟁에서 살아남겠다는 원리이다.(49)

 

옆집이 성공했다는 이유로 비슷하게 시작한 비즈니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혁신적 생각에 승부를 거는 비즈니스는 부가가치와 수익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다.(52)

 

그래서 나는 열여섯 살에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곤 한다. 디자이너로 말이다.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디자인에 눈뜨고 디자인의 힘을 깨닫는 강렬한 경험 없이는 어느 누구도 평생을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만족하며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다른 직업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직업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의지를 느낀다면 그는 바로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에게나 일어날 수 없는 일. 바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일 것이다.(56)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디자인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커뮤니케이션 역할을 한다. 소비자가 처음 만나는 것은 어떤 브랜드라는 무형의 이미지가 아닌 상품이나 그 이미지를 드러내는 각종 시각물일 것이다. 소비자와 기업 사이는 엄청난 물량의 디자인이 메워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비자의 시선을 끌거나 인정받고 싶을 때 잘된 디자인 만큼 멋진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없다.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멋진 디자인이라면, 소비자에게 오랜 여운이 남는 감동을 줄 수 있다.(68)

 

나는 그(해리 앤드 어소시에이츠 회사의 창업자이자 사장인 해리 마쓰다-일본계 미국인 3)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디자인은 자신감을 파는 일이라는 그의 말이다. 사실 디자인을 결정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디자인은 상품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무형이기 때문이다. 상품화하기 이전에 앞으로의 시장 반응을 예측하고 심도 있는 디자인 방향을 설정해 고객 회사를 설득시키려면 우선 디자이너 스스로 자신이 만들어낸 디자인에 확신과 자신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79)

 

일리노이 대학의 교수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교수회관에서 있었던 공식 인터뷰에서도 디자인에 관한 전문 지식을 묻기보다는 보통 때 사람들을 만나 노는 분위기를 만들면서 내가 이야기를 주도해 가도록 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대화 주도 능력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83)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위험이 적고 안정된, 보장된 예측대로 결과물이 나온다면 우리는 그 디자인을 좋아할 수 있을까? 모험을 통한 새로운 디자인만이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즐거움은 바로 디자인의 최종 목표인지도 모른다.(87)

 

1986년 실리콘밸리의 산타클라라에 조그만 사무실을 임대해서 결국 나의 브랜드인 ‘INNODESIGN’ 간판을 내걸었다. 내 회사, 내 꿈과 희망을 마음껏 펼쳐보일 수 있는 곳. 내 실력을 검증받을 수 있는 진짜 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게 바로 시작인 거야. 이제 나는 진짜 게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거야…. 나는 수없이 되뇌었다. 이노 간판을 달던 첫날, 그 때의 감격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비록 직원 한 명밖에 없는 작고 초라한 시작이었지만 이노라는 브랜드에 대한 확신은 강했다.(88)

 

그러던 어느 날, 고용된 입장의 디자이너로서 책상에 앉아 공상을 하며 노트에 이것 저것 끄적거리는데 갑자기 ‘INNO’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단어는 불쑥 내 마음속을 뚫고 들어와서 오랫동안 나를 흔들어놓았다. 평소 좋아하던 단어인 ‘INNOVATION’이란 단어에서 내 나름대로 창조한 또 하나의 단어 ‘INNO’. 나는 ‘INNO’를 언젠가 갖게 될 내 회사의 이름으로 결정했다. 그와 동시에 사각형과 삼각형, 그리고 원을 이용한 로고가 직감적으로 떠올랐다. 순식간에 떠오른 회사 이름과 로고 디자인은 나로서는 도저히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89)

 

디자인은 기가 막히게 좋더군요. 그런데 만약 당신이 생산과 판매에 뛰어든다면 또 다른 좋은 디자인을 해낼 시간을 모두 빼앗길지도 모릅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그의 조언을 들으면서 비로소 나를 억누르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었다. 단지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무모하게 생산과 판매까지 욕심을 부렸던 일,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초조감…. 그동안 고집스럽게 껴안고 있던 것들을 떨구어내자 날아갈 것 같았다.(97)

 

예나 지금이나 나는 아티스트가 아닌 디자이너로서 나 혼자만의 취향을 위한 디자인은 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마치 대중가수 같아서 관객의 갈채를 받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여기서 대중의 갈채란, 곧 상품을 구매함으로서 보여주는 소비자의 반응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무척 즐기게 되었다. 이것은 돈까지 벌어주는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110)

 

지금 세계 디자인 시장은 엄청난 경쟁으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그 전장은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내놓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앞서가는 선진 기업은 이처럼 제품을 통한 기업의 이미지 전달에 디자인의 기초를 두고 있. 회사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CI작업이나 홍보, 광고 등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경우는 많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생산하고 있는 상품 디자인에는 기업의 철학이 담겨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113)

 

디자인 문화를 일구는 주요한 주체 중 하나인 소비자의 구매 형태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회사가 비슷하게 디자인된 제품을 내놓으면 소비자들은 비슷한 유형이 아닌 것을 선택할 여지가 없게 되어 비슷한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비슷한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에 익숙해진 소비자가 어떻게 디자인 문화를 일구어나갈 수 있겠는가? 생각할수록 답답한 일이다.(115)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 구현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일도 자기 디자인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 모두는 자신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들이다. 아니, 그런 소극적인 자기 규정에서 벗어나 좀더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멋있게 디자인하는 유능한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115)

 

와이 낫?’은 상상력의 출발이며 새로운 발상의 기초이다. 이것은 미래 사회를 향한 경쟁력의 첫걸음이 될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것이 부족한 것 같다. 그것은 교육 때문이기도 하고, 개성보다는 중용과 화합을 존중해 온 우리 사회 문화의 기조 때문이기도 하다.(122)

 

정보화된 현대 사회는 주위의 모든 정보를 같은 분야의 경쟁자들과 동시에 볼 수 있는 새로운 경쟁 환경만들어주었다. 가령 A라는 세계적인 기업에서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명품 디자인은 세계 시장에 소개되는 그 순간부터 모든 디자이너의 공유물이 된다. 경쟁사 디자이너들에게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또한 그 명품을 디자인한 A라는 기업도 경쟁사들의 후속 제품 출시를 예측하여 또 다른 신제품 개발에 착수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나게 된다. 이런 급박한 디자인 경쟁 시대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스스로 보호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133)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도 발명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디자이너가 새로운 것을 발명한다는 것에 대해 생소하게 느끼는 분위기이다. 디자이너가 진실로 아이디어가 생명인 직업이라면 발명, 특허 등의 일과 무관할 수 없다. 아이디어를 보호하고 실현하기 위해 분명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136)

 

사실 경영인들은 여기에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좋은 제품은 보기 좋고 쓰기 좋고 또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어야 한다고 하는 나의 디자인 철학은, 디자인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일반인들이나 경영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내용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경영인들은 디자인하면 추가 비용을 생각한다. 디자인을 잘하려면 비용이 올라간다는 고정된 생각을 누구든지 하고 있다.(138)

 

이미 유비쿼터스나 컨버전스라는 용어는 익숙한 개념이 되었고,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주거 환경에까지 큰 영향을 끼쳐 새로운 트랜드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미래 생활에 대해 많은 추측이 오가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기술은 복잡해지지만 우리의 삶은 더욱 쉬어질 것이라는 사실.(144)

 

목표로 하는 시장의 연령대와 열 살, 많아도 열다섯 살 이상 차이가 나면 곤란하다는 마케팅 이론이 있지만 그것은 수동적인 자세가 한몫 거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늘에서 우주선까지디자인하려면 적극적으로 시장을 경험해야 하고, 열심히 사용자를 닮아야 한다. 머리로 추측만 하는 사용자 중심은 자신의 편견을 디자인할 뿐이고, 경험이 결여된 리서치는 통계의 맹점을 피해 가기 어렵다.(155)

 

중세기에는 종교가 세계를 지배했지만 21세기에는 디자인이 세계를 지배한다… ‘바로 지금(just now)’이 중요시되는 신세대들에게 디자이너는 철학자로 다가간다.”(159)

 

디자인은 여기에 논리성이 덧붙여 강조된다. 다시 말해 디자인이란 논리와 감성의 균형이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디자이너로 만드시려고 좌뇌와 우뇌를 주신 것 같다. 어떤 이는 논리의 뇌만, 또 어떤 이는 감성의 뇌만 사용하는데, 디자이너들은 논리와 감성의 뇌를 모두 사용한다. 감성과 논리는 좌뇌와 우뇌로 분리되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디자인은 반대의 두 개념을 새로운 방법으로 결합시켜 완벽한 조화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작업에 빠져있다 보면 정말이지 신의 경지에 도전하는 것 같은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160)

 

나는 이와 같은 소비자 심리를 이해하면서 디자이너의 역할을 ‘CUPI(Creating User’s Personal Identity)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규정지은 바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소비자 상품 메이커들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으나 이제는 거꾸로 그들이 소비자의 개성 창조에 커다란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점점 확산되는 CUPI 디자인 개념에 대한 나의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2003년 디자인 컬랙션 브랜드인 INNO tm를 런칭했다.(161)

 

나는 가까운 미래에 제조 브랜드 못지 않게 디자인 브랜드가 소비자의 상품 구매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Design by~’가 의미를 갖는 시대가 오고 있다. 나아가 ‘Design by INNO’ 제품을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자 하는 이노족의 확산이 나의 꿈이다.(163)

 

(애플사의 스티븐 잡스)는 필사의 노력으로 애플 사의 주가를 40달러로 끌어올렸고, 그와 애플 사는 다시 일어서는 기적을 연출했다. 그 싸움의 가장 중요한 전략은 디자인 경영, 즉 디자인 전략이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남다른 디자인에 대한 이해와 그를 바탕으로 한 전략으로 죽어가던 애플 사를 기적적으로 살려냈다. 그의 디자인 전략은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맡기고, 기술자는 디자인에 따라 만들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전략의 결과물이 바로 아이맥에서 아이포드로 이어지는 애플의 히트 상품들이다.(171)

 

디자이너가 먼저 디자인하고 엔지니어가 그에 따라 기술을 개발한다는 디자인 원칙을 완벽하게 실현시킨 애플 사의 사례는 기업 경영자가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디자인 경영을 도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동시에 원칙을 지켜야 성공한다는 교훈을 남겨주었다.(173)

 

훌륭한 디자이너라면 디자인을 할 때 막연히 좋아서 내놓는 것이 아니라 경영의 측면을 최대한 고려해서 내놓는다. 최대 과제는 물론 소비자의 사랑이다. 이는 디자인과 경영이라는 두 가지 기술, 즉 마케팅과 디자인을 엮어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소수만이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174)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마음을 눈에 보이게 전달하는 것, 그리하여 사용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디자인의 힘이다. 그러므로 디자이너는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마음을 열고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 바로 이것이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실제로 오늘날의 마케팅은 소비자 만족나아가 소비자 감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190)

 

생산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 특히 디자이너는 500여 년 전의 다 빈치가 상상 속에서 낙하산을 그려냈듯이 무궁무진한 상상으로 미래의 세계를 현실로 이끌어내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기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만으로 혹은 예술에 대한 뛰어난 테크닉만으로는 절대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다.(197)

 

사실 디자인은 장식의 개념에서 출발했다. 특히 예전에는 디자인 = 장식미술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디자인 = 패션이라는 개념이 무척 강하다. 디자인을 제품에 추가로 붙이는 과소비적인 작업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디자인의 덕을 가장 많이 보는 기업인들까지도 디자인은 비용 부담을 주기 때문에 가급적 쉽게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디자인을 추가 장식품 정도로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199)

 

좋은 디자인이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디자인이 잘못되면 제품 개발에 있어 가장 비중이 큰 금형비가 올라간다. 안타깝게도 이런 우매한 디자인이 우리 주변엔 참 많다. 기업들은 디자인 컨설팅 비용은 아까워하면서도 금형 제작에 수십만 불이 더 추가되는 것에는 어쩔 수 없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며 무감각한 경우가 많다. 디자인 비용을 아끼기 위해 디자인을 싸구려에게 잘못 맡김으로써, 또는 디자이너를 잘못 선택함으로써 이러한 결과가 생긴다.(201)

 

디자인을 제대로 알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다각도로 생각해보자)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창조한 자신만의 고유한 디자인일 경우에만 해당한다. 기업에 이윤을 가져오는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정직이다. 정직해야만 남의 디자인을 베끼지 않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다. 디자인이 독창적일 때라야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203)

 

오늘날에는 이 경향이 더욱 두드러져 패션과 인테리어가, 가전과 자동차가 서로 트렌드를 넘나들고 있다. 컨버전스(Convergence)’ 컨셉이 여러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제품 디자이너가 종이 배터리 기술을 응용하여 재킷을 디자인하여 제품 디자인 상을 받고, 유명 스포츠카인 페라리 디자이너가 삼성의 휴대폰을 독특한 컨셉으로 제시, CES에서 전시한 것도 이러한 트렌드의 반증이다. , 전 산업계에 걸쳐 여러 가지 상품들이 서로의 경계를 넘어가며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204)

 

그렇다면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이 과연 패션 트렌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아직은 MP3플레이어나 휴대폰 등 단순한 디지털 기기들이 옷의 내부에 장치되거나 편리하게 휴대할 수 있는 정도지만, 이미 안경, 시계, 장신구 등의 형태로 컴퓨터 개발이 진행되고 있고, 미래는 의심의 여지없이 자연스럽게 패션처럼 입고 다니는디지털 기기들이 지배할 것이다. 급변하는 기술과 편안하고 자유로운 스타일의 만남은 패션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더욱 과감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207)

 

금세? 금새?(금사이 전자로 표현)

 

몇 해 전 미국 헐리우드에서 거행되었던 아카데미 상 시상식에서 공로 특별상을 받은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꿈과 열정의 힘으로 살아온 사람(He was driven by dream and passion)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마음에 와닿았다. ‘열정은 배우나 디자이너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이어주는 원동력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제 멋진 항해를 할 때가 아닌가 한다.(212)

 

내가 아이디어 스케치를 위해 종종 찾는 팔로알토 사무실 인근의 스타벅스에서는 노트북을 두드리고, 헤드폰을 귀에 꽂은 채 커피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다. 조금 심한 표현을 하자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조용히 차만 마시는 손님은 거의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222)

 

이제 지구촌 젊은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간에 휴대용 디지털 기기, 즉 휴대폰이나 MP3 플레이어와 같은 음향기기, 또는 게임기, 아니면 노트북 컴퓨터를 배낭이나 서류가방에 넣고 다닌다. 그들은 움직이면서 일하고, 통화하고, 음악과 비디오, 게임을 즐기며 하루를 보낸다. 집에 돌아가서도 디지털 홈 엔터테인먼트에 홈 네트워킹을 활용해서 편안하면서도 효율적인 하루를 살게 될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힘은 인류의 삶을 하루가 다르게 풍요롭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222)(풍요롭게라는 표현의 한계. 하지만 일정 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술의 흐름. 그 흐름의 속도에 대해 생각해볼 것)(222)

 

디자이너에게도 이러한 환경은 마치 날개와 같아서 미래를 향한 무궁무진한 비행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한다. 나는 내가 디자이너란 사실을 나도 모르게 감사하곤 한다.(222)

 

소비자들은 새롭게 등장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설명서를 볼 필요도 없이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야말로 진정한 소비자들의 세상이 된 것 같다.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 위해 속속 탄생하는 디지털 기술들은 디자인이라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을 거쳐서 하나의 손쉬운 상품의 형태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나는 디자인이야말로 소비자와 가장 가까이 만나고 있는 기업의 핵심 역량이라고 늘 이야기하곤 한다. 기술이 공장과 연구소에서 태어난다고 하면 디자인은 바로 시장과 소비자에게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시대에 들어와서는 과거보다 디자인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224)

 

이제는 인간의 감성을 매료시키는 그 무엇을 창조해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변화를 꾀해야 한다.

그것은 멋진 디지털 기술을 돋보이게 하는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은 물론, 어떤 기업이 내놓은 신선한 고객 만족 서비스일 수도 있다. 레스토랑에서 개발한 새로운 메뉴일 수도 있고 한국의 번화가를 활보하는 새로운 패션 트렌드일 수도 있다. 그렇게 끊임없는 변화와 함께 다가올 미래를 기다려 보자. 지금보다 멋진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230)

 

 

디자인의 창조성은 기획의 창조성으로부터 기인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담고자 하는 내용을 시각에서부터 어필하지 못한다면 상품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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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 전망 2006
홍순영 외 엮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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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영, 황인성, SERI 전망 2006, 삼성경제연구소, 2005.11.28, 초판 1.

 

<차례>

책을 펴내며

2006 전망 기조

1. 세계 경제

2. 국내 경제

3. 산업

4. 기업경영

5. 공공정책

6. 사회 문화

 

<전망 기조>

-         2005년 하반기에 오면서 경기 회복 속도가 탄력을 받기 시작

-         성장패턴이 내수 침체, 수출 호조라는 양극단에서 벗어나 점차 동반상승하는 양상으로 변화

-         2005년 연간 경제상승율 상반기 3.0% > 하반기 4.6%

-         시장금리 : 연초 국고채 발행규모가 확대되면서 반짝 상승한 금리는 2월 이후 하락세 전환

-         2006년 세계 경제는 전년에 비해 소폭 둔화될 전망

; 미국 금리 인상 효과의 가시화, 부동산 경기 진정에 따른 소비위축(2001~2004 미국의 주택가격은 저금리의 영향으로 매년 8.7% 상승, 버블 붕괴의 우려가 있으나 전체 주택담보대출에서 변동금리대출은 32% 수준이므로 가계 부채상환 능력을 급격히 약화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

; 중국 무역마찰 및 위안화 평가절상으로 수출 둔화, 대내적으로 거시 조정정책으로 투자 상승세 제한, 경제성장률 8% 후반으로 하락할 전망

-         국내 가계부채 문제) 2005 상반기 가계부채 전년 동기대비 7.9% 증가. 확대의 주요원인은 주택담보대출의 증가. 소비를 조정하던 판매신용은 조정과정이 마무리된 상태

-         2006년 부동산종합대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시중금리 역시 점진적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2003 10월 부동산 안정화 종합대책 이후 2004 9월까지 전국의 주택가격은 2.1% 하락에 그쳐 정부의 부동산가격 안정화 노력이 과도한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

-         2001년 확장기에는 세계 IT버블의 붕괴로 수출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경기는 소비에 의존. 당시 소비확대는 실질소득의 뒷받침 없이 가계부채로 빌려온 것. 2003년의 확장기에는 가계버블이 파열되면서 소비가 극도로 위축. 수출 호조세가 소비로 확산되지 못함에 따라 경기상승기가 1년 정도에 머물렀다. 2006년 상반기에는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1.2% 증가하는 등 호조를 보여 내수보다 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높을 것으로 전망

-         시장금리는 국내 경기 회복에 따른 자금 수요 확대와 국제적인 금리 상승 추세의 영향으로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

-         2006년에 경제성장률이 4.8%를 기록하면 GDP규모는 754조 원으로 추산. 반면 2006년의 잠재GDP규모는 770조원으로 추정. 현재의 경기 상승 기조가 지속된다 하더라도 한국 경제에는 20조 원 정도의 여력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 이러한 GDP 갭으로 인해 2006년에도 내수 확대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

-         수출에 있어 상위 5개 품목의 수출 비중이 2004 44.2%에 이르는 등 소수 품목에 대한 의존도는 높은 상황

 

<세계경제>

미국의 장기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주택가격은 2% 이상 하락하고,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은 0.4~0.6%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

 

* 고유가 지속

- 1999년 영국과 노르웨이의 원유 생산량은 600b/d(배럴/데이)로 세계 원유 생산량의 8% 점유. 그러나 2005 1~5월 영국의 원유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9.5%, 노르웨이는 7.5% 감소하는 등 북해 유전의 원유 생산량 급감

* 달러화 약세

- 1985년 플라자 합의 직전 (미국)무역적자의 주범은 일본으로 미국 무역적자 총액에서 대일 무역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3%. 2002년 이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급증하였고, 그 주범은 잘 알려진 대로 중국.

* 과잉유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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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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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리스터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1996.11.1. 7,800)

 

할머니가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널리 퍼지게 된다.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5)

 

그게 이치란 거야.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흑표범인 파코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너도 꼭 알아두어야 하고.(25)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두지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한테도 뺏기고우리 체로키한테 뺏기기도 하지.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아오고 싶어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그러고 나면 또 길고 긴 협상이 시작되지.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더 늘리려고 말이다. 그들은 자기가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지그러니 사람들은 그놈의 말과 깃발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 셈이야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어.(25)

 

어쨌든 조지 워싱턴이 총알에 맞았을 거라는 할아버지의 해석은 나한테 그럴 듯하게 들렸다. 그래야 그가 일으킨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설명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39)

 

개든 사람이든 간에 자기가 아무데도 쓸모없다고 느끼는 건 대단히 좋지 않다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셨다.(42)

 

그놈이 나무 앞에서 두세 번 짖자 그 빈 나무 속에서 다른 여우 한 마리가 나왔다. 그러자 첫번째 놈은 나무 속으로 들어가고 두번째 놈이 쫓아오는 개들을 끌고서 총총걸음으로 달아났다. 할아버지가 나무 곁으로 가보니 그 속에서 여우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더란다. 개들이 바로 코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자신의 잔재주에 얼마나 자신이 있었던지 개들이 그렇게 가까이 지나가도 여우는 쥐뿔도 신경을 안 쓰더라는 것이다.(55)

 

할아버지는 예전에도 이런 일을 많이 봤다고 하셨다. 사람들 중에도 감정이 앞서는 바람에 리핏처럼 호되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시면서,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았다.(54)

 

할머니가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퍼지게 된다.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97)

 

할머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다. (중략)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과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다. 할머니는 이 마음을 영혼의 마음이라고 부르셨다.(101)

 

그런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할머니는 어디서나 쉽게 죽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여자를 봐도 더러운 것만 찾아내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쁜 것만 찾아내는 사람,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고 목재와 돈덩어리로만 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죽은 사람들이었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102)

 

산사람들에게 변변한 직장이란 일정한 보수를 받고 고용되는 직업을 뜻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한테 고용되어 생활하는 것을 도저히 참아내지 못하는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봤자 만족은 없고 시간만 낭비할 뿐이라고 주장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107)

 

참 묘한 일이지만 늙어서 자기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 좋은 점만 생각나지 나쁜 점은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나쁜 건 정말 별거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아니겠냐고 하셨다.(127)

 

그 정치가는 차에서 내리자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내 손만은 잡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인디언이라서 그랬을 거라고 하셨다. 인디언은 아예 투표를 하지 않으니 그 정치가한테는 우리가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그럴듯한 설명이었다.(132)

 

인디언은 우의의 표시로 손바닥을 펴서 들어올려 보인다. 아무 무기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할아버지의 눈에는 충분히 이치에 맞는 이 행위가 백인들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비치곤 했다. 백인들은 악수로 같은 뜻을 표현하지만, 악수라는 것은 감칠 듯이 다정한 말을 입에 올리면서도 친구라고 하는 상대가 혹시라도 소매 속에 총을 숨기고 있을까봐 그것을 떨어뜨리기 위해 흔들어대는 행위라는 게 할아버지의 주장이셨다. 할아버지는 악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친구라고 생각한 상대를 의심하며 소매에서 뭔가를 떨어뜨리려는 사람이 좋게 보일 리 없었던 것이다.(194)

 

할아버지는 해가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일은 자주 있다, 특히 오후 늦게 밭일을 끝내고 한시바삐 냇가에서 몸을 씻고 싶다는 생각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는 더 그렇다고 하셨다. 또 할아버지는 우리가 무슨 일엔가에 몰두해서 해가 아무리 더디게 움직여도 눈길 한번 주지 않으면, 해도 게으름피우는 것을 포기하고 자기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하셨다.(222)

 

또 할어버지 자신은 언제나 어둠이 무서워서 조마조마해하고 있으니, 이제 어둠 속에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는 것은 전적으로 나한테 달려 있다고 하셨다.(224)

 

윌로 존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셨다. 그분의 눈속 아득하게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빛 같은 것이 보였다. 나중에 할머니는 윌로 존이 그런 눈빛을 보인 건 몇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230)

 

와인 씨는 나에게 가르쳐준 연필 깍는 방법을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하셨다. 인색한 것과 절약하는 것은 다르다. 돈을 숭배하여 돈을 써야 할 때도 쓰지 않는 일부 부자들만큼이나 나쁜 게 인색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살면 돈이 그 사람의 신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인생에서 어떤 착한 일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써야 할 때에 돈을 쓰면서도 낭비하지 않은 것이 절약하는 것이다.(254)

 

할머니의 가슴 앞섶에는 나에게 쓴 편지가 꽂혀 있었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를 느끼듯이, 귀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할머니가.(330)

 

블루보이는 코가 발달되어 있으니까 아마 지금쯤 벌써 고향산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블루보이라면 문제없이 할아버지 뒤를 따라잡을 것이다.(332.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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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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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행가방(박완서, 실천문학사, 2005.12, 9,800)

 

1.       생각하면 그리운 땅

자연은 위대한 영혼을 낳고 남도기행

타임머신을 타고 간 여행 하회 마을 기행

생각하면 그리운 땅 섬진강 기행

만추 여행 오대산 기행

2.       잃어버린 여행가방

잃어버린 여행가방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감동 바티칸 기행

, 참 좋은 울음터로구나 중국 백두산 기행

상해와의 인연 상해 기행

3.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숨 쉬지 않는 땅 에티오피아 방문기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인도네시아 방문기

4.       해오의 여정

모독 티베트 기행

신들의 도시 카트만두 기행

 

우리가 조금 잘살게 됐다고 자본주의의 악의 꽃만 들입다 수입해 정신없이 즐기다가 어느 날 문득 불빛이 사위어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사막화된 황무지 한가운데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남도기행, 27)

 

옛사람이 집터를 잡는다는 건 당장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 몇백 년을 두고 후손이 번창할 자리를 잡는다는 뜻이었다.(하회마을 기행, 31)

 

가장 앞서갔다고 생각되는 게 가장 처진 게 될 수도 있다. 지금 가장 낙후된 고장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앞선 희망의 땅이 될 수도 있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토에 마지막 남은 보석 같은 땅이여, 영원하라.(섬진강 기행, 48)

 

음력 설까지 쇠었으니 이제 확실하게 한 살을 더 먹었다. 이 나이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니 장수의 복은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다. 재물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내가 쓰고 살던 집과 가재도구를 고스란히 두고 떠날 생각을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의 최후의 집은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가방이 아닐까. 내가 끼고 살던 물건들은 남 보기에는 하찮은 것들이다. 구식의 낡은 생활필수품 아니면 왜 이런 것들을 끼고 살았는지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 어린 물건들이다. 나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소멸과 동시에 남은 가족들에게 처치 곤란한 짐만 될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단순 소박하게 사느라 애썼지만 내가 남길 내 인생의 남루한 여행가방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의 입장이 되어 골머리가 아파진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하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내가 일생 끌고 온 이 남루한 여행가방을 열 분이 주님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 앞에서는 허세를 부릴 필요도 없고 눈가림도 안 통할 테니 도리어 걱정이 안 된다. 걱정이란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궁리할 때 생기는 법이다. 이게 저의 전부입니다. 나를 숨겨준 여행가방을 미련 없이 버리고 나의 전체를 온전히 드러낼 때, 그분은 혹시 이렇게 나를 위로해주시지 않을까. 오냐, 그래도 잘 살아냈다. 이제 편히 쉬거라.(잃어버린 여행가방, 63)

 

아무리 승용차로 간다 해도 내일 아침 그 많은 인파를 뚫고 과연 제시간에 바티칸에 도착할 수 있을까, 내가 걱정한다고 달라질 리 없는 걱정은 안 하는 게 수라는 걸 알 만한 나이가 됐건만도 그 모양이었다.(바티칸 기행, 66)

 

남의 정치 체제나 문화, 국민소득 들을 우리와 비교하지 않고 그 나름대로 사는 양상으로 그냥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될 수 있으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까지도 잊어버리고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외국이나 외국인 앞에서 마음을 도사려 먹지 않고 그저 부드러운 시선으로 남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새로운 경험이 될 터였다.(중국 백두산 기행, 75)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쪽 조선족들의 꾸미지 않고도 저절로 큰 마음씨와, 남북 두 개로 갈라진 조국을 편견 없이 직시하고, 그른 건 그르다 옳은 건 옳다, 거침없이 말하면서 양쪽을 함께 얼싸안으려는 열띤 태도는 흉내내봄 직한 것이었다.(상동, 78)

 

차려입은 겉모양은 우리가 그이들보다 좀 나아 보일지 몰라도 마음은 훨씬 더 초라하고 밉다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비밀스러운 열등감이었다. 우리의 빈번한 왕래가 그 땅에 앞으로 유발시킬 소비의 욕구를 생각하면 우리가 바로 인간 공해라는 미안감도 들었다.(상동, 88)

 

남자(이이화 소장)의 울음은 거의가 중국 사람인 선객들에게도 충격을 준 것 같았다. 저희들끼리 수군대며 일제히 우리에게 창가 자리를 내주었고, 눈빛에 깊은 연민이 어렸다.

분단된 민족에 대한 그이들의 적나라한 연민의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우리가 중국 땅에서 숱하게 뿌리고 다닌 연민을 같잖고도 창피하게 여겼다. 그이들이 우리보다 조금 못 입었다고, 조금 덜 정결하다고, 조금 작은 집에 산다고 여길 때마다 아끼지 않은 연민은 이제 그이들로부터 받고 있는 연민에 비하면 얼마나 사소하고도 천박스러운 것이었나.

돌이켜보니 우리 세 사람의 호곡장은 다 달랐지만 결국은 한뿌리에 닿아 있었다.(상동, 95)

 

땅의 숨결이란 무엇인가. 나무와 풀과 푸성귀의 씨앗을 품고 싹트게 하고 밀어올리는 거대한 에너지가 아닌가. 만약 올해로 이 가혹한 한발이 끝나고 충분한 비가 내린다면 땅이 되살아날까. 나는 그 메마른 땅으로 폭우가 쏟아질 것을 상상하는 게 더 무서웠다. 토사와 영양분을 사정없이 훑어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숨 쉬지 않는 땅이란 물과 영양분의 저장 능력이 없는 땅이기도 했다.(에티오피아 방문기, 107)

 

그러나 이 지역은 1977년 오가딘전쟁 때 멩기스투 정권이 소련, 쿠바 등 외세의 군사력 지원까지 받아 진압한 곳으로 그때 전란을 피해 소말리아로 피난 갔던 소말리아계 에티오피아인들이 소말리아 내전을 피해 다시 건너온 것이니 피난인 동시에 귀향일 수도 있었다.(상동, 108)

 

그렇다고 시내에 차가 귀한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이 일제인 외제차의 왕래가 빈번하고 고급차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요컨대 그들은 심심한 것이었다. 선량하지만 무기력해 보여서 속상했다. 저 아이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무기력으로부터 일으켜 세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나라에 진정한 변화가 올 것 같았다.(상동, 117)

 

농업을 전적으로 강우량에 의지하던 고장이 장기간의 한발로 메말라가는 모습은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우리가 곧잘 쓰는 신토불이가 우리하고는 다른 뜻으로 딱 들어맞고 있었다.(상동, 123)

 

이틀만에 메켈레로 돌아와 지칠 대로 지친 몸이 혼곤한 잠에 빠지면서 나는 분명히 어릴 적 원두막에서 듣던, 옥수수 잎사귀를 때리던 상쾌한 소나기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바람 소리였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내려다보니 자카란다 꽃이 마당 하나 가득 보랏빛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상동, 125)

 

티베트의 하늘은 그때의 우리 하늘빛보다 더 깊게 푸르다. 인간의 입김이 서리기 전, 태초의 하늘빛이 저랬을까? 그러나 태초에도 티베트 땅이 이고 있는 하늘빛은 다른 곳의 하늘과 전혀 달랐을 것 같다. 햇빛을 보면 그걸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다. 바늘쌈을 풀어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에선 적의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산소가 희박한 공기층을 통과한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은,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일 것이다.(티베트 기행, 134)

 

식물한계선을 넘은 높이에 있는 이곳 산은 눈을 이고 있지 않으면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맨몸이다. 바위도 없이 갈색 흙으로 된 산들이 우기에 팬 자국을 주름처럼, 거대한 발가락처럼, 사타구니처럼 드러내고 대책 없이 서 있는 꼴은 황량과 파렴치의 극치이다. 그 낯선 풍경에는 이국적이라는 말도 그 감미로운 울림 때문에 해당이 안 된다. 딴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게 아니라 딴 천체를 여행하고 있는 것처럼 아득하고 공포스러운 외로움에 사로잡히게 된다.(상동, 145)

 

지구가 마침내 생명을 품을 수 없을 만큼 지치고 노쇠하면 저런 모양으로 먼지로 풍화해버릴 것도 같다. 종말인 듯 시초인 듯, 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종말과 시초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억겁의 시간 속에서 존재가 풍화 직전의 먼지보다 하찮게 여겨진다.(상동, 146)

 

포탈라 궁은 철근이 하나도 안 들어가고 돌과 나무만 가지고 지은 고층 건물인데 3백여 년 동안 끄떡없이 유지되는 걸로도 세계적인 불가사의에 들어간다는 게 안내원 석 부장의 설명이다. 티베트의 얼마 안 되는 삼림 지대와 부탄 등 주변 국가에서 나는 주니퍼 나무(삼나무의 일종)가 그렇게 단단하다고 한다.(상동, 153)

 

옴마니반메훔을 직역하면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라고 한다.

몇 호 안 되는 마을도 희게 칠한 불탑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고, 불탑에는 물론 집에도 반드시 오색 헝겊 깃발이 꽃혀 있다. 세로로 꽂힌 깃발 맨 위엔 청색, 백색, 적색, 녹색, 황색의 순서로 손수건만한 헝겊을 달아놓고 있다. 부처님이 득도했을 때 몸에서 오색의 빛이 난 데서 유래된 종교적 관습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말 한마디, 일거수 일투족이 부처하고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상동, 169)

 

우리가 모르는 사람을 처음 소개받을 때 그 사람의 학벌이나 지위, 재산 정도 따위보다도 그 사람의 귀여운 버릇이나 소탈한 일화 같은 것이 오히려 그 사람을 이해하고 호감을 갖는 데 믿을 만한 구실을 할 때가 있다. 헬레나의 글도 내가 티베트를 여행하는 동안, 특히 시골에서는 그런 좋은 위미의 선입관이 돼주었다.(상동, 189)

 

고마워하면서 잡아먹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시체를 독수리에게 먹히는 조장의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땅이라는 걸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영혼을 떠나보낸 육체에 대해서는 그게 비록 인간의 시신이라 할지라도 미신적인 공포감이나 신비화 없이 냉정하게 직시하는 능력 또한 티베트 민족의 상냥함과는 또 다른 엄혹한 면이 아닐까. 야크를 중히 여기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야크에서 나는 건 털끝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 완벽한 이용으로 표현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 연민, 자비 등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공통의 정서라고 해서 그 사랑법까지 똑같을 수는 없지 않을까.(상동, 190)

 

1절    형이 아우에게

나는 타국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 슬퍼하지 말아다오, 아우야.

이것은 전생에서의 인과일 테니까.

언젠가 구름 사이로 볕이 드는 날도 있을 테니.

 

2절    아우가 형에게

나는 여기 남아 있을 게요, 형님.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아주세요.

이것도 전생으로부터의 인과겠죠.

한 방울의 물도 결국에는 큰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걸요.

 

3절    티베트 민중이 두 분에게

우리들은 고통을 달게 받겠습니다.

이것이 전생으로부터의 인과니까요.

제발 슬퍼하지 마세요.

하늘의 해와 달 같은 두 분의 지킴 덕으로 우리들의 오늘이 있으니까요.

(상동, 199)

 

더 열렬한 신자나 명상가 중에는 평생의 목표를 자기가 사는 고장으로부터 카일라스 산까지 오체투지로 가는 걸로 세우기도 한단다.

인도에서 카일라스 산까지 이십 년이 넘게 걸려도 그걸 실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상동, 210)

 

그러나 밤하늘의 별은 놀라웠다. 세상을 잘 만나 여기저기 돌아다녀본 데도 많고 지상의 모습뿐 아니라 밤하늘의 모습도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팅그리의 밤하늘처럼 신비하게 별이 빛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잃었던 유년기의 신비까지 가슴으로 쏟아져내리는 것 같았다. 혹독한 기후를 견디며 불모의 황원에서 노숙하는 유목민도 저런 밤하늘을 이고 자리라. 그들의 상상력이 화려 찬란하고도 천상적인 까닭을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상상력의 총집결이 그 장엄하고도 사치를 극한 사원의 불상들이 아닐까.

다음날도 히말라야 산맥을 전망하기에 좋은 쾌청한 날씨였다. 우리가 에베레스트라고 부르는 히말라야 최고봉을 여기서는 초모랑마라고 한다. 에베레스트는 그 산이 최고봉이라는 걸 발견한 서양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거라고 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만 발견해도 거기다 제 이름을 붙이고 싶어하는 게 서양 문명이니까 어련했겠는가. 그러나 초모랑마는 최고봉이라고 발견되기 전에도 최고봉이었고, 이름이 붙여기지 전부터 거기 있었다. 에베레스트는 칠성이가 미국 가서 리처드가 된 것 같은 이름이니 본고장에서는 초모랑마라고 불러주는 게 예의일 것 같았다.(상동 219)

 

우리가 세계의 지붕이라고 부르는 이 티베트 고원은 5천만 년 내지 1억 년 전에는 바다였다고 한다. 그럼 인도 대륙은 자연히 거대한 섬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섬이 무슨 까닭으로인지 북진을 해 아시아 대륙과 충돌을 하면서 그 힘으로 바다 밑이 솟아올라 광대한 고원이 됐다고 한다. 그 증거가 되는 어패류의 화석이 지금도 이 고원 여기저기서 많이 발견되고 그건 지금도 이곳 시장의 중요한 관광상품이 되고 있다.(상동, 221)

 

이게 그 말썽꾸러기 버스하고도 작별이었다. 버스와는 상관없이 티베트 운전사와 안내양을 우리는 다들 좋아하고 정도 들었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작별을 아쉬어하면서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다. 괜히 가슴이 뭉클하면서 우리와의 만남이 저들에게 무엇이 되어 남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의 관광 작태가 저들에게 모독이나 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나에겐 아직도 랏채에서의 기억이 상처처럼 생생하고도 고약했다.(상동, 227)

 

없는 나라 차가 없다고 할 정도로 각국의 고물차들을 다 볼 수 있는 까닭 중 하나는 유럽의 젊은이들이 낡은 차나 버스를 한 대 사가지고 나라마다 색다른 풍물을 즐기며 지구를 반 바퀴 도는 긴 여행 끝의 종착역이 바로 카트만두이기 때문이란다. 타고 온 차를 여기서 팔면 그동안의 여비뿐 아니라 돌아갈 비행기표 값까지 떨어질 정도로, 아무리 고물차라도 차 값이 비싼 게 이 나라라고 한다. 바퀴 달린 건 아직 자전거도 못 만든다는 이 나라의 비극이다. 공업화하고 상관없는 공해여서 더욱 민망하다.(카트만두 기행, 229)

 

하루 50루피(1달러)로 벌기 어려운데 그들이 세운 학교의 학비가 일 년에 2천 루피도 더 든다는 애절한 호소를 단지 장사꾼의 우는 소리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우리야말로 자식 가르치는 데 있어서 이 지구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족 아닌가.(상동 247)

 

이곳까지 임종을 위해 와 있는 노인들도 많아, 그런 노인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집도 있다. 그런 노인들은 아마 안 죽고 있는 동안 매일매일 죽음을 예습할 수 있으리라. 죽음이 복습이 되면 혹시 덜 힘들까. 늙으면 친구의 부음이 가장 큰 충격이 되는 우리나라 노인들하고는 너무도 다르다.(상동, 250)

 

실상 온통 약탈한 것 투성이인 세계 유수의 박물관이나 신자 없는 장려한 성당, 그림엽서하고 똑같이 가꾸어놓은 전원 풍경에 실컷 질리고 감동하고, 그런 문화를 가진 민족이니 뭐라도 배워야 할 것 같은 압박감으로 그들의 일상적인 언행까지를 흘금흘금 관찰하게 되는 유럽이나 미국 여행이란 얼마나 피곤한가. 그렇다고 만 불 시대의 부를 마음껏 으스대며 남을 마구 얕보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 무절제한 쇼핑과 환락을 일삼는 동포들과 하루 몇 번씩 부딪혀야 하는 동남아나 중국 여행이 덜 피곤한 것도 아니다. 무시당할까 봐 전전긍긍하기나 무시하기에 급급하기나 피차 편안치 못한 관계이긴 마찬가지다.

네팔 여행은 그런 부담없이 상대방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신기해하며 인정해주고 같이 즐길 수 있어 좋고,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못 꿀 낭비를 와장창 하고 나면 책임감과 약속에 얽매인 사람노릇과 공해로 질식할 것 같은 몸과 마음이 당분간은 견딜 수 있는 생기를 회복한 것처럼 느껴져서 또한 좋다. 요새도 뭔가로 벌충을 해주지 않으면 도저히 참아낼 수 없을 것처럼 심신이 바스라졌다고 여겨질 때 떠나야지, 떠나야지 하고 거기서 누가 부르는 것처럼 마음이 달뜨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네팔에서 어쩌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걸으러 온 사람이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상동, 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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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내 운명 - 번역이 좋아 번역가로 살아가는 6人6色
이종인 외 지음 / 즐거운상상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번역은 내 운명(즐거운상상, 2006.3.3 )

 

1)

강주헌 – 1957년 서울생, 외대 불어과(/박사), 프랑스 브장송대 수학(언어학 박사), 외대/건대 수학, 현재 전문번역가,

<문화란 무엇인가 1/2>, <노스트라다무스의 대예언>,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내 인생을 바꾼 스무 살 여행>

 

번역은 쉬어야 한다! 내용은 어렵더라도 읽어 내려갈 수는 있어야 한다! 이 원칙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 원칙은 촘스키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모든 책에 적용시킨다. 전문 용어는 최대한 살리더라도 누구나 읽어 낼 수 있게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요약하면 어려운 책도 쉽게 번역하자는 것이다. 전공자들이야 원서를 읽으면 될 것이 아닌가. 책을 번역하는 목적, 더구나 출판의 목적은 대중화에 있으니까 말이다. 출판을 뜻하는 ‘publishing’의 어원이 ‘public’에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17)

 

2001 11강주헌 해외저작권을 중계하는 에이전시 설립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미국에서는 10년 전, 1995년에 첫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34)

 

 

번역 강좌라면 번역을 가르치는 것이 우선이고, 다리 역할은 부수적인 차원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옆에 있던 번역가 친구가 한겨레문화센터 편을 드는 것이 아닌가!

기존 번역 학원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초보 번역가들을 등쳐먹는다고 욕했잖아.”

에잇, 친구가 배신하다니! 결국 한겨레 문화센터에 번역 강좌가 개설되었다.(37)

 

2)

권남희 - 1966년생, 중앙대 일어과,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사임당아씨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 유머작가, <창이 있는 서점에서> <러브레터> <질투의 향기> <토토의 새로운 세상>..

 

그런데 그 후로 난 참치를 먹지 않는다. 왠지 참치를 먹으면 그때가 생각나서 눈물난다. 배터지게 잘 먹고 이런 말 해서 참치업계 종사자들에게 몹시 미안하지만, 눈물 젖은 참치를 먹어보지 않은 자는 돌을 던지지 말라고.(65)

 

번역하는 사람들의 인터넷 까페(68)

 

아마존 재팬 같은 일본 사이트를 찾아,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좋은 책들을 골라 보라. 검토서를 작성해서, 출판사에 보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71)

 

일이 없는 동안에는 차라리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책을 읽어 국어실력을 키워라. 번역을 하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음 번역은 매끄러워져 있을 것이다.(72)

 

3)

김춘미 이대 영문과, 외대 일본어과(석사), 고대 국문과(박사). 고대 일문과 교수. 한국 일본학회 회장

<해변의 카프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밤의 원숭이>(이상 무라카미 하루키),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우선 번역이 원문을 언어적, 문화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로 번역이 원문의 분위기, 정서를 잘 전달하고 있을 것. 원작의 리듬, 호흡, 문체적 특징 등은 작가의 문학 세계의 내실이므로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는 리듬을 중시하는 편이다. 그래서 원작가의 호흡과 문체의 리듬을 가장 중요시한다. 세 번째로 번역된 텍스트가 그 나라의 문학 작품으로도 매력적인 읽을거리가 되어야 한다. 먼저 번역이 원문에 충실하며 동시에 번역된 언어로서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위의 기준으로 심사한 결과, 황석영 선생의 <오래된 정원>을 번역한 아오야키 유코 씨에게 대상이 돌아갔다.(104)

 

번역이란 뭔가를 진지하게 배우려는 작업이라고 한 하루키의 얘기에서 번역이 새로운 문체의 획득, 다시 말해 새로운 자아(주체)의 획득에 모종의 역할을 했을 거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소설가가 번역을 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자기 나름의 문체 창출을 위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근대 문학 형성기부터 작가란 자기만의 문체를 확립하기 위해 고심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119)

 

4)

송병선 외대 스페인어과 졸업, 콜럼비아 하베리아나 대학(박사), 울산대 스페인 중남미학과 교수, <거미여인의 키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번역은 단지 복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을 문화적으로 확장하면, 문화의 지배국인 유럽과 미국은 위대한 독창성의 출발점이지만, 그들의 것을 수용하는 국가들은 번역이며 복사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피지배 국가들은 메트로폴리스의 텍스트들을 마구 먹어치워 주인의 복제품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직역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역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한쪽 발을 직역에, 다른 한쪽 발을 의역에 놓고 작업하는 번역가이다. 이 말은 외국 작품을 우리에게 맞게 완전히 동화시키는 작업보다는, 문화적 차이를 보존하면서 외국적인 요소들에 어느 정도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이다.

…(중략)..

다시 <돈키호테>로 돌아가자. 이 작품의 신부는 원본을 우선시하는 죄를 범한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그것을 해체한다. 우리는 이 작품의 저자가 믿을 수 없는 무어인인 시데 아메테 베넨헬리인지, 아니면 세르반테스인지, 그것도 아니면 익명의 번역가인지 알지 못한다.(135)

내가 옮긴 작품들도 나의 관점을 보여주는 재창조물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들은 나의 머리와 경험에서 나온 산물, 그러니까 내가 전적으로 친권을 가진 친자식들은 아니지만, 고통 끝에 탄생시킨 나의 아이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타인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소중하게 여긴다. ‘눈에 보이는번역과 내 관점에 의한 번역을 통해 나는 내가 소개하고 번역하는 작품이 단순히 사본에 불과하다는 것에 반항한다. 이런 번역은 불가피하게 반역을 통한 또 다른 산물을 창조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반역자이자 창조자인 말린체이다.(135~136)

 

우리나라에 <독서의 역사>로 잘 알려진 아르헨티나 출신의 번역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이렇게 번역가를 찬양한다. “번역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세밀한 독서방법이다. 책을 읽고 번역하면서 우리는 해석한다. 번역가는 원문에 담긴 모든 불완전함을 보고, 모든 논리의 부족과 실수, 그리고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대목들을 본다. 번역가의 눈은 무자비하고 타협하지 않는다.” 해당 작품을 번역가보다 더 자세하게 읽는 독자는 없다는 망구엘의 지적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138)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세계 문학을 이끌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현대문학은 단순히 제3세계 문학이라는 주변문학으로만 간주되던 실정이었다.(141)

 

나는 내 수정본이 결정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본이란 화석과 같은 죽은 존재라고 여긴다. 번역에서 결정본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번역은 영원히 살아 있다. 번역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은 가능한 한 여러 번 번역되어야 한다. 번역은 변화이며 움직임이다. 더 이상 가야할 장소 없이 동일한 상태로 남아 있을 때 문학은 죽어버리기 때문이다.(148)

 

내가 보기에는 더욱 급한 일이 지금 살아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번역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다시 번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40여 권의 책을 번역했지만, 내가 번역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은 없다. 단지 4만 부에서 5만 부 정도가 팔린 준 베스트셀러가 몇 권 있을 뿐이다. 나는 대부분 인세로 계약하기 때문에 번역서를 출판할 때마다 베스트셀러를 꿈꾼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이것은 정말로 이엇다. 그 꿈이 망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꿈을 꾸며 행복해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행복한 번역가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번역을 통해 많은 출판계 사람들을 알계 되었고, 어떤 경우는 흉허물 없는 우정까지 나누기 때문이다. 번역이란 세계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은 내 고통과 노력의 산물인 번역물만큼 소중하니까.(159)

 

5)

이종인 - 1954년생, 고대 영문과, 브리태니커 편집국장, 성대 전문번역가 겸임교수,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만약에> <고대 그리스의 역사> <성의 페르소나> <영어의 탄생>

 

인세는 책이 많이 팔릴수록 번역가에게 유리하고, 척박한 출판 환경에서 문화사업의 보람으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출판 경영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방식이다.(170)

 

(출판사) 대부분 책이 출판된 그 다음달에 (인세를) 주는 게 표준 절차인 듯하다. 문제는 그 책이 언제 나오는가이다.(172)

 

만약 어떤 책이 확실히 출판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미리 안다면, 나는 아무리 번역료를 많이 주어도 계약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173)

 

에세이난 소설 같은 타이틀은 공경희씨가, 추리 설이나 애정 소설은 선배 번역가 이창식 씨가 많이 담당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럼 나는 어느 장르인가? 나의 고민은 특정한 장르 없이 텍스트가 어려운 것일수록 이 아무개에게라는 동의할 수 없는 낭설이 출판계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176)

 

<리더쉽 리터러시>(세종서적, 1999)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인 스토리를 24회나 되풀이해야 하는 것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텍스트가 따분하다고 생각할 경우 과연 잘 된 번역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런 책을 만났을 때 번역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180)

 

번역타이틀을 앞에 놓은 번역가의 심리는 텅빈 스크린, 맑은 연못, 비어 있는 계곡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193)

 

딱ㄸ가한 문장을 그녀가 부드럽게 고쳐놓은 부분이 여러 군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바르고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구사하여 무명을 비단으로 만들어 놓은 그녀의 솜씨 때문에 번역을 할 때마다 미성 씨의 쉬운 문장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195)

 

장인의 명성은 그가 만들어내는 물건에 달린 것이지, 그의 이력에 달린 것이 아니다. 항상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치열한 정신으로 매달려야 한다.(197)

 

그런데 이(..) 글의 아름다움이 번역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이 글은 황신혜라는 여배우의 외모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번역하고 잇다. 황신혜에 대하여 저자 특유의 해석을 가하고 있다. 모든 번역은 텍스트에 대하 논평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 논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200)

 

이렇게 볼 때 번역이 원작보다 못하다는 얘기는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 원작이라는 것도 이미 리얼리티(실제 : 보다 구체적으로 위에서 예를 든 황신혜나 경정산)로부터 한 단계 떨어져 있으므로, 원작과 번역이 서로 리얼리티를 다투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바로 이런 근거에서 번역은 제2의 창작 혹은 아름다움의 창조가 되는 것이다.(205)

 

잘 된 번역서에는 우리말 특유의 아름다움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번역과정에서 외국어(원서의 언어)와의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우리말의 결정체인 번역서, 거기에는 황신혜 못지 않은 한국어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있다.(206)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라는 장편 소설의 맨 처음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한 모습으로 행복하다. 하지만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사유로 불행하다.” 나는 톨스토이의 행복한 가정이 23각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212)

 

6)

최정수 : 70년생, 연대 불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연금술사> <, 자히르> <숨쉬어> <꼬마 니콜라의 쉬는 시간> <빈센트와 반 고흐>

 

번역가는 해당 국가에서 그 책의 최초의 독자이다. 그 책을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정확하고 성실하게 소개하는 것, 그것은 번역가의 영광이지만, 앞으로 그 책을 읽게 될 이름 모를 수많은 독자들을 생각한다면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일이다.(229)

 

사실, 파울로 코엘료는 엄청한 대중적 인기에 비해 평단으로부터 그리 인정을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대중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대중의 입맛에 맞게 잘 차려내지만, 문체나 문학성,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빈약하다는, 이른바 깊이는 없고, 글 솜씨만 좋은 마케팅의 귀재라는 것이 대다수 평론가들의 입장이었다.(235)

 

하지만 이 일은 동서고금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그리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아주 크고 다채로운 세계이다. 내 세계의 지평을 조금 넓혀보고 싶은 사람, 또 하나의 세계를 소유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도전해 봐도 좋은 일 아닐까?(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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