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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평점 :
잃어버린 여행가방(박완서, 실천문학사, 2005.12, 9,800원)
1. 생각하면 그리운 땅
자연은 위대한 영혼을 낳고 – 남도기행
타임머신을 타고 간 여행 – 하회 마을 기행
생각하면 그리운 땅 – 섬진강 기행
만추 여행 – 오대산 기행
2. 잃어버린 여행가방
잃어버린 여행가방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감동 – 바티칸 기행
아, 참 좋은 울음터로구나 – 중국 백두산 기행
상해와의 인연 – 상해 기행
3.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숨 쉬지 않는 땅 – 에티오피아 방문기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인도네시아 방문기
4. 해오의 여정
모독 – 티베트 기행
신들의 도시 – 카트만두 기행
우리가 조금 잘살게 됐다고 자본주의의 악의 꽃만 들입다 수입해 정신없이 즐기다가 어느 날 문득 불빛이 사위어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사막화된 황무지 한가운데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남도기행, 27)
옛사람이 집터를 잡는다는 건 당장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 몇백 년을 두고 후손이 번창할 자리를 잡는다는 뜻이었다.(하회마을 기행, 31)
가장 앞서갔다고 생각되는 게 가장 처진 게 될 수도 있다. 지금 가장 낙후된 고장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앞선 희망의 땅이 될 수도 있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토에 마지막 남은 보석 같은 땅이여, 영원하라.(섬진강 기행, 48)
음력 설까지 쇠었으니 이제 확실하게 한 살을 더 먹었다. 이 나이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니 장수의 복은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다. 재물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내가 쓰고 살던 집과 가재도구를 고스란히 두고 떠날 생각을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의 최후의 집은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가방이 아닐까. 내가 끼고 살던 물건들은 남 보기에는 하찮은 것들이다. 구식의 낡은 생활필수품 아니면 왜 이런 것들을 끼고 살았는지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 어린 물건들이다. 나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소멸과 동시에 남은 가족들에게 처치 곤란한 짐만 될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단순 소박하게 사느라 애썼지만 내가 남길 내 인생의 남루한 여행가방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의 입장이 되어 골머리가 아파진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하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내가 일생 끌고 온 이 남루한 여행가방을 열 분이 주님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 앞에서는 허세를 부릴 필요도 없고 눈가림도 안 통할 테니 도리어 걱정이 안 된다. 걱정이란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궁리할 때 생기는 법이다. 이게 저의 전부입니다. 나를 숨겨준 여행가방을 미련 없이 버리고 나의 전체를 온전히 드러낼 때, 그분은 혹시 이렇게 나를 위로해주시지 않을까. 오냐, 그래도 잘 살아냈다. 이제 편히 쉬거라.(잃어버린 여행가방, 63)
아무리 승용차로 간다 해도 내일 아침 그 많은 인파를 뚫고 과연 제시간에 바티칸에 도착할 수 있을까, 내가 걱정한다고 달라질 리 없는 걱정은 안 하는 게 수라는 걸 알 만한 나이가 됐건만도 그 모양이었다.(바티칸 기행, 66)
남의 정치 체제나 문화, 국민소득 들을 우리와 비교하지 않고 그 나름대로 사는 양상으로 그냥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될 수 있으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까지도 잊어버리고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외국이나 외국인 앞에서 마음을 도사려 먹지 않고 그저 부드러운 시선으로 남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새로운 경험이 될 터였다.(중국 백두산 기행, 75)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쪽 조선족들의 꾸미지 않고도 저절로 큰 마음씨와, 남북 두 개로 갈라진 조국을 편견 없이 직시하고, 그른 건 그르다 옳은 건 옳다, 거침없이 말하면서 양쪽을 함께 얼싸안으려는 열띤 태도는 흉내내봄 직한 것이었다.(상동, 78)
차려입은 겉모양은 우리가 그이들보다 좀 나아 보일지 몰라도 마음은 훨씬 더 초라하고 밉다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비밀스러운 열등감이었다. 우리의 빈번한 왕래가 그 땅에 앞으로 유발시킬 소비의 욕구를 생각하면 우리가 바로 인간 공해라는 미안감도 들었다.(상동, 88)
남자(이이화 소장)의 울음은 거의가 중국 사람인 선객들에게도 충격을 준 것 같았다. 저희들끼리 수군대며 일제히 우리에게 창가 자리를 내주었고, 눈빛에 깊은 연민이 어렸다.
분단된 민족에 대한 그이들의 적나라한 연민의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우리가 중국 땅에서 숱하게 뿌리고 다닌 연민을 같잖고도 창피하게 여겼다. 그이들이 우리보다 조금 못 입었다고, 조금 덜 정결하다고, 조금 작은 집에 산다고 여길 때마다 아끼지 않은 연민은 이제 그이들로부터 받고 있는 연민에 비하면 얼마나 사소하고도 천박스러운 것이었나.
돌이켜보니 우리 세 사람의 ‘호곡장’은 다 달랐지만 결국은 한뿌리에 닿아 있었다.(상동, 95)
땅의 숨결이란 무엇인가. 나무와 풀과 푸성귀의 씨앗을 품고 싹트게 하고 밀어올리는 거대한 에너지가 아닌가. 만약 올해로 이 가혹한 한발이 끝나고 충분한 비가 내린다면 땅이 되살아날까. 나는 그 메마른 땅으로 폭우가 쏟아질 것을 상상하는 게 더 무서웠다. 토사와 영양분을 사정없이 훑어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숨 쉬지 않는 땅이란 물과 영양분의 저장 능력이 없는 땅이기도 했다.(에티오피아 방문기, 107)
그러나 이 지역은 1977년 오가딘전쟁 때 멩기스투 정권이 소련, 쿠바 등 외세의 군사력 지원까지 받아 진압한 곳으로 그때 전란을 피해 소말리아로 피난 갔던 소말리아계 에티오피아인들이 소말리아 내전을 피해 다시 건너온 것이니 피난인 동시에 귀향일 수도 있었다.(상동, 108)
그렇다고 시내에 차가 귀한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이 일제인 외제차의 왕래가 빈번하고 고급차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요컨대 그들은 심심한 것이었다. 선량하지만 무기력해 보여서 속상했다. 저 아이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무기력으로부터 일으켜 세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나라에 진정한 변화가 올 것 같았다.(상동, 117)
농업을 전적으로 강우량에 의지하던 고장이 장기간의 한발로 메말라가는 모습은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우리가 곧잘 쓰는 신토불이가 우리하고는 다른 뜻으로 딱 들어맞고 있었다.(상동, 123)
이틀만에 메켈레로 돌아와 지칠 대로 지친 몸이 혼곤한 잠에 빠지면서 나는 분명히 어릴 적 원두막에서 듣던, 옥수수 잎사귀를 때리던 상쾌한 소나기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바람 소리였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내려다보니 자카란다 꽃이 마당 하나 가득 보랏빛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상동, 125)
티베트의 하늘은 그때의 우리 하늘빛보다 더 깊게 푸르다. 인간의 입김이 서리기 전, 태초의 하늘빛이 저랬을까? 그러나 태초에도 티베트 땅이 이고 있는 하늘빛은 다른 곳의 하늘과 전혀 달랐을 것 같다. 햇빛을 보면 그걸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다. 바늘쌈을 풀어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에선 적의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산소가 희박한 공기층을 통과한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은,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일 것이다.(티베트 기행, 134)
식물한계선을 넘은 높이에 있는 이곳 산은 눈을 이고 있지 않으면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맨몸이다. 바위도 없이 갈색 흙으로 된 산들이 우기에 팬 자국을 주름처럼, 거대한 발가락처럼, 사타구니처럼 드러내고 대책 없이 서 있는 꼴은 황량과 파렴치의 극치이다. 그 낯선 풍경에는 이국적이라는 말도 그 감미로운 울림 때문에 해당이 안 된다. 딴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게 아니라 딴 천체를 여행하고 있는 것처럼 아득하고 공포스러운 외로움에 사로잡히게 된다.(상동, 145)
지구가 마침내 생명을 품을 수 없을 만큼 지치고 노쇠하면 저런 모양으로 먼지로 풍화해버릴 것도 같다. 종말인 듯 시초인 듯, 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종말과 시초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억겁의 시간 속에서 존재가 풍화 직전의 먼지보다 하찮게 여겨진다.(상동, 146)
포탈라 궁은 철근이 하나도 안 들어가고 돌과 나무만 가지고 지은 고층 건물인데 3백여 년 동안 끄떡없이 유지되는 걸로도 세계적인 불가사의에 들어간다는 게 안내원 석 부장의 설명이다. 티베트의 얼마 안 되는 삼림 지대와 부탄 등 주변 국가에서 나는 주니퍼 나무(삼나무의 일종)가 그렇게 단단하다고 한다.(상동, 153)
‘옴마니반메훔’을 직역하면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라고 한다.
몇 호 안 되는 마을도 희게 칠한 불탑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고, 불탑에는 물론 집에도 반드시 오색 헝겊 깃발이 꽃혀 있다. 세로로 꽂힌 깃발 맨 위엔 청색, 백색, 적색, 녹색, 황색의 순서로 손수건만한 헝겊을 달아놓고 있다. 부처님이 득도했을 때 몸에서 오색의 빛이 난 데서 유래된 종교적 관습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말 한마디, 일거수 일투족이 부처하고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상동, 169)
우리가 모르는 사람을 처음 소개받을 때 그 사람의 학벌이나 지위, 재산 정도 따위보다도 그 사람의 귀여운 버릇이나 소탈한 일화 같은 것이 오히려 그 사람을 이해하고 호감을 갖는 데 믿을 만한 구실을 할 때가 있다. 헬레나의 글도 내가 티베트를 여행하는 동안, 특히 시골에서는 그런 좋은 위미의 선입관이 돼주었다.(상동, 189)
고마워하면서 잡아먹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시체를 독수리에게 먹히는 조장의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땅이라는 걸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영혼을 떠나보낸 육체에 대해서는 그게 비록 인간의 시신이라 할지라도 미신적인 공포감이나 신비화 없이 냉정하게 직시하는 능력 또한 티베트 민족의 상냥함과는 또 다른 엄혹한 면이 아닐까. 야크를 중히 여기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야크에서 나는 건 털끝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 완벽한 이용으로 표현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 연민, 자비 등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공통의 정서라고 해서 그 사랑법까지 똑같을 수는 없지 않을까.(상동, 190)
1절 – 형이 아우에게
나는 타국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 슬퍼하지 말아다오, 아우야.
이것은 전생에서의 인과일 테니까.
언젠가 구름 사이로 볕이 드는 날도 있을 테니.
2절 – 아우가 형에게
나는 여기 남아 있을 게요, 형님.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아주세요.
이것도 전생으로부터의 인과겠죠.
한 방울의 물도 결국에는 큰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걸요.
3절 – 티베트 민중이 두 분에게
우리들은 고통을 달게 받겠습니다.
이것이 전생으로부터의 인과니까요.
제발 슬퍼하지 마세요.
하늘의 해와 달 같은 두 분의 지킴 덕으로 우리들의 오늘이 있으니까요.
(상동, 199)
더 열렬한 신자나 명상가 중에는 평생의 목표를 자기가 사는 고장으로부터 카일라스 산까지 오체투지로 가는 걸로 세우기도 한단다.
인도에서 카일라스 산까지 이십 년이 넘게 걸려도 그걸 실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상동, 210)
그러나 밤하늘의 별은 놀라웠다. 세상을 잘 만나 여기저기 돌아다녀본 데도 많고 지상의 모습뿐 아니라 밤하늘의 모습도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팅그리의 밤하늘처럼 신비하게 별이 빛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잃었던 유년기의 신비까지 가슴으로 쏟아져내리는 것 같았다. 혹독한 기후를 견디며 불모의 황원에서 노숙하는 유목민도 저런 밤하늘을 이고 자리라. 그들의 상상력이 화려 찬란하고도 천상적인 까닭을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상상력의 총집결이 그 장엄하고도 사치를 극한 사원의 불상들이 아닐까.
다음날도 히말라야 산맥을 전망하기에 좋은 쾌청한 날씨였다. 우리가 에베레스트라고 부르는 히말라야 최고봉을 여기서는 초모랑마라고 한다. 에베레스트는 그 산이 최고봉이라는 걸 발견한 서양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거라고 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만 발견해도 거기다 제 이름을 붙이고 싶어하는 게 서양 문명이니까 어련했겠는가. 그러나 초모랑마는 최고봉이라고 발견되기 전에도 최고봉이었고, 이름이 붙여기지 전부터 거기 있었다. 에베레스트는 칠성이가 미국 가서 리처드가 된 것 같은 이름이니 본고장에서는 초모랑마라고 불러주는 게 예의일 것 같았다.(상동 219)
우리가 세계의 지붕이라고 부르는 이 티베트 고원은 5천만 년 내지 1억 년 전에는 바다였다고 한다. 그럼 인도 대륙은 자연히 거대한 섬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섬이 무슨 까닭으로인지 북진을 해 아시아 대륙과 충돌을 하면서 그 힘으로 바다 밑이 솟아올라 광대한 고원이 됐다고 한다. 그 증거가 되는 어패류의 화석이 지금도 이 고원 여기저기서 많이 발견되고 그건 지금도 이곳 시장의 중요한 관광상품이 되고 있다.(상동, 221)
이게 그 말썽꾸러기 버스하고도 작별이었다. 버스와는 상관없이 티베트 운전사와 안내양을 우리는 다들 좋아하고 정도 들었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작별을 아쉬어하면서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다. 괜히 가슴이 뭉클하면서 우리와의 만남이 저들에게 무엇이 되어 남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의 관광 작태가 저들에게 모독이나 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나에겐 아직도 랏채에서의 기억이 상처처럼 생생하고도 고약했다.(상동, 227)
없는 나라 차가 없다고 할 정도로 각국의 고물차들을 다 볼 수 있는 까닭 중 하나는 유럽의 젊은이들이 낡은 차나 버스를 한 대 사가지고 나라마다 색다른 풍물을 즐기며 지구를 반 바퀴 도는 긴 여행 끝의 종착역이 바로 카트만두이기 때문이란다. 타고 온 차를 여기서 팔면 그동안의 여비뿐 아니라 돌아갈 비행기표 값까지 떨어질 정도로, 아무리 고물차라도 차 값이 비싼 게 이 나라라고 한다. 바퀴 달린 건 아직 자전거도 못 만든다는 이 나라의 비극이다. 공업화하고 상관없는 공해여서 더욱 민망하다.(카트만두 기행, 229)
하루 50루피(1달러)로 벌기 어려운데 그들이 세운 학교의 학비가 일 년에 2천 루피도 더 든다는 애절한 호소를 단지 장사꾼의 우는 소리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우리야말로 자식 가르치는 데 있어서 이 지구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족 아닌가.(상동 247)
이곳까지 임종을 위해 와 있는 노인들도 많아, 그런 노인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집도 있다. 그런 노인들은 아마 안 죽고 있는 동안 매일매일 죽음을 예습할 수 있으리라. 죽음이 복습이 되면 혹시 덜 힘들까. 늙으면 친구의 부음이 가장 큰 충격이 되는 우리나라 노인들하고는 너무도 다르다.(상동, 250)
실상 온통 약탈한 것 투성이인 세계 유수의 박물관이나 신자 없는 장려한 성당, 그림엽서하고 똑같이 가꾸어놓은 전원 풍경에 실컷 질리고 감동하고, 그런 문화를 가진 민족이니 뭐라도 배워야 할 것 같은 압박감으로 그들의 일상적인 언행까지를 흘금흘금 관찰하게 되는 유럽이나 미국 여행이란 얼마나 피곤한가. 그렇다고 만 불 시대의 부를 마음껏 으스대며 남을 마구 얕보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 무절제한 쇼핑과 환락을 일삼는 동포들과 하루 몇 번씩 부딪혀야 하는 동남아나 중국 여행이 덜 피곤한 것도 아니다. 무시당할까 봐 전전긍긍하기나 무시하기에 급급하기나 피차 편안치 못한 관계이긴 마찬가지다.
네팔 여행은 그런 부담없이 상대방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신기해하며 인정해주고 같이 즐길 수 있어 좋고,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못 꿀 낭비를 와장창 하고 나면 책임감과 약속에 얽매인 사람노릇과 공해로 질식할 것 같은 몸과 마음이 당분간은 견딜 수 있는 생기를 회복한 것처럼 느껴져서 또한 좋다. 요새도 뭔가로 벌충을 해주지 않으면 도저히 참아낼 수 없을 것처럼 심신이 바스라졌다고 여겨질 때 떠나야지, 떠나야지 하고 거기서 누가 부르는 것처럼 마음이 달뜨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네팔에서 어쩌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걸으러 온 사람이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상동, 25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