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거나 학교에서 쫓겨나면 그 학생에 문제가 있으려니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혹시나 학교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학생이 문제아여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무난할까?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거짓이 싫어서 은둔을 원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신병원에 가게 되고 또다시 학교에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가 샐린저는 실제로 평생 은둔의 삶을 택했다.

청소년기의 방황을 그린 소설을 흔히 성장소설이라고 한다. 급속한 성장에는 성장통이 따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황은 청소년만의 특권인가? 인생은 방황의 연속이다. 따라서 청소년에겐 성장통이 있듯 더 나이가 들면 성숙통(?)이 있다.

사회를 그만두거나 거기서 쫓겨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까? 아니면 그 사회에 문제가 있을까?

 

<밑줄>

내가 엘크론 힐즈를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주위에 가식적인 인간들만 우글거렸기 때문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예를 들면 하스 교장은 일요일마다 학교를 찾아오는 학부모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돌아다니곤 했다. 지독할 정도로 사근거리면서 간혹 만만하게 보이는 학부모들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 교장이라는 인간이 내 룸메이트의 부모에게 어떻게 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말은 학생의 엄마가 뚱뚱하거나, 촌스러워 보인다거나, 아버지의 어깨가 넓고 낡은 양복을 걸치고 있거나, 남루한 검은색이나 흰 구두를 신고 있으면, 하스 교장은 그저 간단한 악수만 하고 지나가거나, 억지 미소만 지은 채 지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학부모들과는 30분이나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건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들이었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 자식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오직 나중에 캐딜락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야. 축구 팀이 경기에서 지면 온갖 욕설이나 해대고, 온종일 여자나 술, 섹스 같은 이야기만 지껄여대. 더럽기 짝이 없는 온갖 파벌을 만들어, 그놈들끼리 뭉쳐 다니지 않나.

 

엘크론 힐즈에서 알고 지냈던 아이가 떠올랐다. 제임스 캐슬이라는 아이였는데, 필 스태빌이라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놈에 대해 자신이 한 말을 절대로 취소하지 않았던 친구였다. 제임스 캐스은 그 자식을 거만한 녀석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 말을 스태빌의 친구 중 치사한 놈 하나가 스태빌 자식에게 고자질을 했던 것이다. 그놈은 지저분한 녀석들 여섯 명을 이끌고 제임스 캐슬의 방으로 쳐들어가서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 말을 취초하라고 위협했다. 하지만 캐슬은 취소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놈들은 캐슬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정말 말로로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너무 끔찍했다 ... 결국 그 아이는 자신은 말을 취소하지 않은 채, 그대로 창문으로 뛰어 내리고 말았다 ... 그런 짓을 저지른 놈들에게 학교에서 내린 조치는 고작 퇴학이었다. 그놈들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그 시간만 되면 반 아이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연설을 하는 거예요. 그냥 즉흥적으로 말이에요. 그러다가 연설을 하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주제에 벗어나게 되면 모두들 탈선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드는 일이죠. 결국 F학점을 맞았지요 ... 우리 반에 리처드 킨셀러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항상 주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탈선이라고 모두들 외쳤어요. 그래서 자기 차례가 되니까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이야기를 하더군요. 교실 뒤에서는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기는 했지만, 입술을 떠는 것을 멈추었을 때는 그 아이의 이야기가 어느 누구보다도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그 애도 결국은 그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았어요.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두어야 한다.

 

넌 정말, 정말 이상한 아이야.

 

아빠가 오빠를 죽일 거야. 분명히 죽일 거라구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무슨 일이든 상관하지 않을 테고. 그저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다른 사람들을 모르는 곳에 가는 걸로 족했다. 그곳에서는 귀머거리에 벙어리 행세를 하며 살 참이었다. 그러면 누구하고도 쓸데없고, 바보 같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누구라고 내게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종이에 써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도 귀찮아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평생 누구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지내게 되리라. 사람들은 나를 귀가 들리지 않는 불쌍한 벙어리인 줄 알고 혼자 내버려 두게 될 것이다. 차에 기름을 넣는 일을 하며, 그만큼의 보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돈을 모아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사는 것이다. 오두막집은 숲 가까이에 지을 것이다. 숲 속은 햇빛이 비치지 않기 때문에 좋지 않으니까. 음식도 손수 요리해서 먹을 것이고, 결혼하고 싶어지면, 나와 똑같이 귀머거리에 벙어리인 귀여운 여자를 만날 것이다. 그 여자는 내 오두막에서 같이 살 것이다. 그녀도 내게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종이에 써서 할 것이다. 그러다가 아이가 생기면, 그 애를 어딘가에 숨겨 놓을 것이다. 그러고는 책을 많이 사주고, 우리가 직접 글을 읽는 법이나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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