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평전
송우혜 지음 / 서정시학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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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東柱)는 동주의 친동생이 보기에 동국(東國, 우리나라)을 밝히는 기둥이란 뜻이고, 윤동주 평전의 저자 송우혜 교수가 보기엔 태자나 세자를 가리켜 동궁(東宮)’이라고 불렀듯 장남이란 뜻이며, 동주 본인이 보기엔 동주(童舟) 아이 배란 뜻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동주는 동주(同走) 함께 달리기란 뜻이다. 왜냐면 그의 육신은 29살에 광복을 반년 앞두고 일본 형무소에서 옥사했지만 그의 정신은 동생과 친구와 친척과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와 함께 지금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밑줄>

필자의 추정이 맞는다면 신학문을 가르칠 교육기관 이름으로서 명동은 곧 동국(우리나라)을 밝힐 인재를 기른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대학󰡕의 첫 구절 식으로 풀어보면 신학문지도 재명동(新學問之道 在明東)’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갈 것이 있다. 윤동주의 친동생 윤일주 교수가 동주(東柱)’란 이름을 두고 동주란 이름도 아버지가 지은 것이며, ()자는 명동에서 따온 것이 분명하다고 추정한 부분이다.

필자가 보기에 윤 교수의 추정은 사실과 어긋나는 듯하다. 윤동주(尹東柱)자는 󰡔주역󰡕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주역󰡕에서 진괘, 진은 장남을 뜻한다. 그래서 제왕가에서는 태자나 세자를 가리켜 동궁(東宮)’이라고 불렀다. 동주가 윤씨 집안의 첫아들이기에 장남을 의미하는 자를 쓰고 그 뒤에 항렬자인 주자를 붙인 것으로 봐야 한다.

 

2년에 걸친 광명 시절에서 특기할 것은, 그가 5편의 동시를 세상에 발표한 일이다. 당시 연길에서 󰡔카톨릭 소년󰡕이라는 어린이 잡지가 월간으로 발행되고 있었는데, 윤동주가 거기 투고하여 채택되었다. 그는 (‘童舟라는) 필명까지 만들어 사용했다.

 

사이좋은 정문의 두 돌기둥 끝에서

오색기와 태양기가 춤을 추는 날,

금을 그은 지역의 아이들이 즐거워하다.

 

아이들에게 하로의 건조한 학과로

해말간 권태가 깃들고

모순두 자를 이해치 못하도록

머리가 단순하였구나.

 

이런 날에는

잃어 버린 완고하던 형을

부르고 싶다.

 

(윤동주 이런 날)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한다 하여 숭실중학교 교장을 강제 퇴직시키고 강제 귀국시키는 일제 당국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숭실중학교를 자퇴했다. 그러나 이젠 학생들이 일본 국기 아래서 단순하게 즐거워하고 있는 곳, 신사참배라면 아예 신성한 의무로서 경건하게 거행하도록 금을 그은 지역안에 제 발로 들어와 있는 처지였다. 그야말로 모순된 일이었다. 그 자신의 이런 모순은 너무 쓰라려서 그는 차마 겉으로 내색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다만 이런 날에는 잃어버린 완고하던 형을 부르고 싶다라는 아픈 결구로서 자신의 고뇌를 형상화했다.

여기에 나오는 잃어버린 완고하던 형은 곧 송몽규를 지칭한 것이라고 본다면, 윤동주는 송몽규의 완고함’, 즉 현실적인 불이익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신념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행동력과 그에 따를 고난을 마음 깊이 기리고 있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이것이 광명(중학교) 시절의 윤동주가 지녔던 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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