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세트 (반양장본) - 전3권 - 새 번역 완역 결정판 열하일기 4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 돌베개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열하일기는 중국의 열하라는 휴향지에 청나라 황제의 생일선물을 들고 조선의 사신이 가는 길에 연암 박지원이 쓴 일기이다. 1780624일부터 820일까지의 일기 외에 호질, 허생전을 비롯한 여러 글을 덧붙였다. 당시 연암의 나이가 44살이니 지식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기행문을 쓰기엔 적절한 때였을 것이다. 청에 대해선 문화적으론 얕잡아 보고 있지만 기술적으로는 배울 점이 많다고 우리와 비교하는 대목이 곳곳서 보인다. 연암은 실용적 지식인의 선구자였다.

 

<밑줄>

교육

중국은 글을 배우는 데에 이른바 글을 외우는 송서와 강의의 두가지가 있어서, 우리나라 초학자들이 음과 뜻을 겸하여 배우는 것과는 공부 방법이 같지 않다. 중국은 초학자들이 단지 사서 장구를 입으로 암송하고, 암송을 익숙하게 한 뒤에 다시 선생에게 나아가 뜻을 배우는 데 이를 강의라고 한다. 설령 종신토록 강의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익힌 장구가 일상적으로 쓰는 보통화가 되므로, 이 때문에 여러 나라 말 중에서 한어가 가장 쉽고 이치에도 맞는다.

 

과거시험

낙방한 답지에도 품평한 글이 정성스럽고 상세하게 쓰여 있어, 답지를 작성한 사람이 떨어진 이유를 소상하게 알 수 있도록 했다. 그 정중하고 친절하며 간절한 모습이 마치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가르치고 배우는 화기애애한 뜻이 담긴 것 같다. 대국의 과거 시험장이 간결하고도 엄격하고, 시험을 보고도 채점하는 방식이 상세하고도 근엄하여 과거 응시생을 조금도 유감스럽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겠다.

 

예술 (음악)

그 음악으로 하늘에 성대하게 제사 지내면 하늘이 신이 흠향하실 것이고, 그 음악으로 사방 사람들을 교육하고 감화시키면 백성들이 즐거워하여 막히거나 거슬리는 일이 한 가지도 없을 것이며, 억눌리거나 위축되는 사물이 한 가지도 없을 것입니다. 천지 사이에 꽉 찬 것은 모두가 만물이 생동하는 평화스러운 일단의 기운입니다. 음악이 그런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옛 성인들은 귀로 듣는 데에 있는 힘을 다 쏟아부었는데, 지금의 군자들은 눈으로 보는 데에 서 갑자기 찾으려고 합니다. 이는 아침저녁으로 악기를 타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공부인가를 알지도 못한 채, 소리와 음률을 놓아 버리고 폐하면서 한갓 책장 위에서만 읽어 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술문화

중국의 술 마시는 법은 대단히 얌전해서, 비록 한여름이라도 술은 반드시 데워서 마시고 비록 소주라도 데워서 마신다. 술잔은 은행 알만큼 작은데 그것도 이빨에 걸쳐 가지고 홀짝 홀짝 빨다가 그나마 남은 것은 탁자 위에 놓았다가 조금 뒤에 다시 홀짝거리지, 결코 잔을 뒤집어 털어 넣는 법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풍습은 천하에게 가장 험악하다. 반드시 큰 사발로 이마를 찡그려가면서 단번에 술잔을 뒤집어 마신다. 이는 술을 들이붓는 것이지 마시는 게 아니며, 배 불리기 위해서이지 아취를 돋우기 위함이 아니다. 한번 마셨다 하면 반드시 취할 때까지 마시고, 취하면 반드시 주정을 하고, 주정을 하면 반드시 치고받고 싸우니, 술집의 항아리, , 사발을 깡그리 차서 깨뜨려 버린다.

 

건축(난방)

점방 주인이 내실 캉의 연기 빠지는 방고래를 열고 자루가 긴 가래로 재를 모아서 버린다. 나는 이참에 캉의 제도를 대략 관찰하였다. 먼저 캉의 바닥을 높이 한 자 남짓 쌓아 땅을 고르게 한 뒤에 벽돌을 깨뜨려 바둑알 놓듯 깔아서 지탱하는 버팀돌을 만들고 그 위에 벽돌을 깐 것뿐이다. 벽돌의 두께가 본래 가지런하기 때문에 깨어서 버팀돌을 만들어도 기우뚱거릴 염려가 절로 없어지고, 벽돌의 몸통이 본시 고르기 때문에 서로 나란히 배열하여 깔아도 틈이 벌어질 염려가 절로 없다. 연기 고래는 손을 펴서 겨우 들락거릴 정도의 높이이고, 버팀돌을 서로 번갈아 불 들어가는 목구멍이 된다. 불이 목구멍에 닿으면 불길은 반드시 끌어당기듯 빨려 넘어가고, 화염이 불 목구멍을 메우듯 재를 몰고 간다. 여러 개의 불 목구멍이 번갈아 불길을 삼키고 보내고 하므로, 불을 토해 낼 짬도 없이 바로 굴뚝까지 이르게 된다. 굴뚝에는 여러 고래를 하나로 모으고 그 깊이를 한 길 남짓하게 만드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개자리이다. 재는 항상 불에게 내밀려 캉 가운데 떨어지므로 삼년에 한 번은 고래의 한쪽을 열고 재를 쳐낸다.

우리 구들 놓는 법은 여섯 가지가 잘못되었으나 아무도 따져보는 사람이 없단 말이야. 진흙을 쌓아서 구들 골을 만들고 그 위에 돌을 얹어서 구들을 만든다. 돌의 크기나 두께가 본래 각기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작은 자갈돌을 포개서 네 귀퉁이 괴어서 절름거리는 것을 막지만 구들돌이 타버리고 진흙이 말라 항시 무너지거나 떨어질까 염려하니, 이게 첫째 잘못된 점이네. 구들돌의 표면이 울퉁불퉁한 곳에는 흙으로 때우거나 진흙을 발라서 평평하게 만들기 때문에 불을 때도 골고루 따뜻해지지 않으니, 이게 둘째 잘못이네. 불길이 지나가는 고래가 높고 널찍해서 화염이 서로 닿지 못하는 것이 셋째 잘못이네. 담벼락이 성기고 얇아서 항상 틈이 생기는 것이 괴로우며, 바람이 불어 불길이 거꾸로 가고 연기가 새어 방에 가득 차는 것이 넷째 잘못이네. 불목의 아래가 번갈아 목구멍 노릇을 하지 못해 불이 멀리 넘어가지 못하고 불길이 뒤로 장작 쪽으로 밀려나는 것이 다섯째 잘못이네. 방구들을 건조시키는 공력에 반드시 장작 백 단은 들어가고 열흘 안에는 방으로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 여섯째 잘못이네.

 

교통 (도로와 수레)

우리나라는 일찍이 수레가 없었고, 아직 바퀴가 완전히 둥글지 않으며 바큇자국이 하나의 궤에 들지 않으니, 이는 수레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풍부한 재화와 물건이 어느 한곳에 막혀 있지 않고 사방에 흩어져 옮겨 다닐 수 있는 까닭은 모두 수레를 사용하는 이점 때문이다.

 

호질

너희 인간들이 이치를 말하고 성의 논할 때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거리지만, 하늘이 명한 입장에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같이 만물 중 하나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은 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범이나 메뚜기나 누에나 벌이나 개미나 사람이나 모두 함께 살게 마련이지, 서로 해치고 어그러질 관계가 아니다. 또 선과 악으로 구별한다면 공공연히 벌과 개미집을 터는 놈이야말로 천지의 큰 도적놈이 아니겠느냐. 제 마음대로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훔치는 놈이야말로 인의를 해치는 큰 화적놈이 아니고 무엇이냐.

우리 범이 지금까지 표범을 잡아먹지 않은 까닭은 제 동류에게는 차마 손을 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노루나 사슴을 잡아먹는 숫자는 사람이 잡아먹는 수효만큼 많지 않고, 우리가 마소를 잡아먹는 숫자도 사람만큼은 많지 않으며, 우리가 사람을 잡아먹는 숫자도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숫자만큼은 안 된다.

 

허생전

내가 부자가 되려고 했다면 백만 금을 버리고 이까짓 십만 금을 취하려고 하겠소? 내가 지금부터는 그대의 도움을 받아 가며 살아갈 터이니, 그대가 나를 자주 들여다보고 먹는 입을 따져서 양식을 보내 주고, 몸을 헤아려 옷감이나 보내 주구려. 한 평생 그렇게 살아간다면 충분할 것이니, 어찌 재물로 정신을 괴롭히고 싶겠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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