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논쟁 - 괴짜 물리학자와 삐딱한 법학자 형제의
김대식.김두식 지음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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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형제의 공부논쟁이라? 공부 잘 한 형제의 자랑질이 뻔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김두식을 봐서 읽었다.  

 

형인 김대식은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서울대 물리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런 그가 유학파의 교수 임용을 비판한다. 일견 모순되지만 예전엔 외국서 배울 게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자기 집을 지어야한다는 논리이다.

 

경쟁을 중시하는 면에선 공감할 수 없었으나 합리적인 경쟁을 해야 한다는 면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건설의 비젼을 보여줘서 지지한다는 말에는 공감할 수 없었으나 진보 엘리트주의자들의 위선을 비판하는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김대식의 생각과 말투는 마치 소설가 김훈을 떠오르게 한다. 소위 이성적 보수라고 볼 수 있는 사람. 그러나 이성적으론 이해해도 감성적으론 공감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표지를 보곤 공부에 대한 두 사람의 토론을 예상했으나 읽어보니까 우리나라 교육, 특히 이공계 대학에 대한 김대식 인터뷰집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핵심은 국가 경쟁력을 위해선 과고, 외고 같은 특목고를 없애야 한다는 것, 쓸데없는 영재 교육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태워 버리지 말자는 것! 진정한 경쟁은 평준화다.

 

<밑줄 쫙>

일본은 희한하게도 20세기 초반이 되면 이미 유학파의 자취를 찾을 수 없어요. 직접 후학을 기르기 시작한 거죠 ...... 유학을 가는 대신에 도쿠가와 시대부터 자리 잡은 전통적인 장인 시스템이 작동해요. 그 기초 위에서 15명이 노벨상을 탄 거예요. 15명 중에서 13명은 일본에서 박사를 딴 사람들이고, 그것도 대부분 지방 국립대 출신이예요.

 

우리나라 영재교육은 다 사기입니다. 영재교육 받아서 잘된 사람을 떠올려보세요. 역사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 공헌한 사람들 대부분은 일반적인 과정을 밟아 성장한 사람들이에요. 노벨상을 받은 사람도 90퍼센트 이상이 일반 고등학교 나온 사람들입니다. 아주 특수한 몇몇 천재들의 사례를 포장해서 영재교육이나 조기교육의 효율성을 입증하려고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게 다 진실과는 거리가 있어요 ..... 미국에도 요즘 조기교육에 열을 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13세에 대학에 들어가서 20대 초반에 박사를 받는 애들을 제가 미국에서 직접 봤어요. 미국에서 영재교육을 받은 애들 대부분 실패합니다. 30대가 되면 다들 무대에서 사라져요. 두뇌를 너무 일찍 태워먹은 거예요.

 

천재들이 과학계를 이끈다는 건 증명이 안 된 신화예요. 뭔가 엄청난 걸 발명한 사람 중에서 학교에서 1등을 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시험 잘 보는 학생은 남들이 주는 문제를 푸는 데까지는 해낼 수가 있어요. 그러나 새로운 발견 혹은 발명을 하거나 새로운 이론을 만든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시험 잘 치는 사람에게만 과학을 맡겼어요. 그 결과로 새로운 이론, 새로운 발견 하나를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단 하나의 초가집도 짓지 못했어요. 지금이라도 거대한 전환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계속 망하는 거예요.

 

평준화 세대는 이미 경기고 세대의 엘리트주의에 무릎을 꿇었어요. 이미 졌지만 그래도 저는 평준화를 향한 싸움을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하는 거예요. 국가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평준화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초연구 분야는 미국이든 유럽이든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평준화이고 나눠 먹기예요. 독일의 경우 정교수든 부교수든 상관없이 누가 어떤 프로포절을 써도 1년에 1억 정도씩은 배정받아요. 10억짜리 연구를 한개 돌리는 대신에 1억짜리 연구를 열개 돌리는 게 낫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연구원처럼 어떤 연구팀에 1년에 100억씩 10년간 천억을 주는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기초과학은 운 좋은 사람을 아무도 따라가지 못하는 특성이 있어요. 기초과학의 특성 자체가 세런디퍼티에 있기 때문입니다. 발견의 반 이상이 세런디퍼티에 의한 거예요. 통계적으로 입증되기는 어렵지만 우연을 통해 발견한 게 80퍼센트 되고, 똑똑해서 발견한 게 20퍼센트 정도 될 겁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연성에 투자를 해야죠. 우연성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우연성에 투자하면 부수적인 효과를 누리게 됩니다.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것은 교육에 투자하는 겁니다. 기초과학에서 놀라운 발견을 할 확률 못지않게 교육 자체가 중요하니까요. 독일도 일본도 그래서 기초과학 분야에 폭넓은 투자를 하는 겁니다. 한두명에게 돈을 쏟아붓는 엘리트 과학이 아니라요. 이런 엘리트주의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평준화 이전의 경기고 출신들이에요. 자기만 망하지 않고 잘못된 믿음으로 나라 전체를 망치고 있는 겁니다.

 

애 키우기가 힘든 게 아니라 애를 명문대 보내기 힘든 시대일 뿐이에요. 자세히 들어보면, 사교육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강남 애들만 명문대를 간다, 가난한 자신이 애를 낳아봐도 명문대 보낼 희망이 없다, 그러니 낳지 말자, 이런 식이에요. 애를 명문대 보내겠다는 욕심만 버려도 애 낳아서 키우는 게 훨씬 덜 힘들 겁니다. 다행히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은 한표를 행사해요. 가난한 사람들이 인구를 늘려서 혁명을 하는 거죠! 부자들을 다 몰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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