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전집 - 증보판 창비신서 10
신동엽 지음 / 창비 / 198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신동엽하면 MC, 개그맨 신동엽이 먼저 떠오른다. 사람들의 머리뿐만 아니라 인터넷 검색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학교에선 1960년대의 참여시인, 저항시인 신동엽이 등장한다. 그런데 교과서에도 신동엽하면 그저 껍데기는 가라만 나온다. 하지만 껍데기는 가라만 읽고 신동엽을 안다고 한다면 그야 말로 껍데기만 안 것이다. 요즘 교과서에선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금강을 읽지 않고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만 읽는 것은 그야 말로 누가 신동엽을 읽었다 하는가이다.

 

작품을 읽은 것은 작가를 읽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 하나가 아니라 전체를 읽어야 한다. 물론 조정래를 알기 위해서 조정래의 작품 전체를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수십편의 대하소설을 남겼고 요즘도 여전히 창작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동엽같은 시인이자, 요절하여(1930~1969) 작품 수가 많지 않은 작가의 경우는 전집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신동엽 작품은 전집 한권에 불과하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에 다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가수의 음반 하나하나 구입해 듣지 않고, 베스트음반 하나만 듣는 성격이라고 고집한다면, 좋다. 신동엽의 대표작 금강만 읽길 강력히 추천한다. 피 끓는 청춘이 읽어도 좋고, 다시 일어나고 싶은 중년이 읽어도 좋다. 조선말 혁명의 현장으로 당신을 인도해 줄 것이다.

 

<울컥하며 옮긴 시>

 

- 응 (1965)

 

응 그럴걸세, 얘기하세

응 그럴걸세

응 그럴걸세

,

응 그럴 수도 있을걸세.

응 그럴 수도 있을걸세.

, 아무렴

그렇기도 할걸세

그녁이나, , 그녁이나

, 그래, 그럴걸세

응 그럼, 그렇기도 할걸세.

,

더 하게!

 

 

-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밤은 (1968)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밤은

자다가 재미난 꿈을 꾸었지.

 

나비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다가

발 아래 아시아의 반도

삼면에 흰 물거품 철썩이는

아름다운 반도를 보았지.

 

그 반도의 허리, 개성에서

금강산 이르는 중심부엔 폭 십리의

완충지대, 이른바 북쪽 권력도

남쪽 권력도 아니 미친다는

평화로운 논밭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밤은

자다가 참

재미난 꿈을 꾸었어.

 

그 중립지대가

요술을 부리데

너구리새끼 사람새끼 곰새끼 노루새끼들

발가벗고 뛰어노는 폭 십리의 중립지대가

점점 팽창되는데,

그 평화지대 양쪽에서

총부리 마주 겨누고 있던

탱크들이 일백팔십도 뒤로 돌데.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

물방게처럼

한 떼는 서귀포 밖

한 떼는 두만강 밖

거기서 제각기 바깥 하늘 향해

총칼들 내던져 버리데

 

꽃피는 반도는

남에서 북쪽 끝까지

완충지대,

그 모오든 쇠붙이는 말끔이 씻겨가고

사랑 뜨는 반도,

황금이삭 타작하는 순이네 마을 돌이네 마을마다

높이높이 중립의 분수는

나부끼데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밤은 자면서 허망하게 우스운 꿈만 꾸었지.

 

 

- 산문시 1 (1968)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변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에 놀러 가더란다.

 

 

- 금강 (1967)

 

(생략)

 

왕은

백성들의 가슴에 단

 

군대는

백성의 고용한

문지기

 

앞마을 뒷마을은

한 식구

두레로 노동을 교환하고

쌀과 떡, 무명과 꽃밭

아침 저녁 나누었다

 

가을이면 영고, 무천

겨울이면 씨름, 윷놀이

, 지금도 살아 있는 그 흥겨운

농악이여

 

시집가고 싶을 때

들국화 꽂고 꽃가마

장가가고 싶을 때

정히 쓴 이슬마당에서

맨발로 아가씨를 맞았다.

 

아들을 나으면

온 마을의 경사

딸을 낳으면

이웃마을까지의 기쁨

 

서로 자리를 지켜 피어나는

꽃밭처럼

햇빛과 바람 양껏 마시고

고실고실한 쌀밥처럼

마을들은 자라났다.

 

지주도 없었고

관리도, 은행주도

특권층도 없었었다.

 

반도는

평등한 노동과 평등한 분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그 위에 백성들의

축제가 자라났다

 

늙으면 마을사람들에 싸여

웃으며 눈감고

양지바른 뒷동산에 누워선, 후손들에게

이야기를 남겼다.

 

반도는

평화한 두레와 평등한 분배의

무정부 마을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그 위에 청춘들의

축제가 자라났다

우리들에게도 생활의 시대는 있었다.

 

(생략)

 

출세한다는 건

피 빨아먹는 자리

놀고 먹는 자리

백성의 피기름 솟는

흡구 자리 하나

차지한다는 것

 

(생략)

 

정권 없는

통치자 없는

정부 없는

농민들만의 세상, 이상사회

우리들 손으로 이룩할

책임

우리가 업어야 합니다.

 

(생략)

 

그리고

오후 세 시, 돌문 밖

질경이랑 반지꽃이랑 냉이랑

예쁘게 돋은 흙언덕

높은 장대 위,

 

교수된

정봉준의 머리는

칼로 다시 잘리워

매달리웠다

 

다섯 차례의

혹독한 왜식 고문

일본인 낭인 무전, 전중의 번갈은

일본망명 권유

인품에 감동, 뒷날의 쓸모를 계산한

일본 공사 정상의 은근한 호의

들은 체하지 않고

발 밑에 이까려버린

농민지도자

전봉준의

.

 

그는

목매이기 직전

한 마디의 말을 남겼다

 

하늘을 보아라!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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