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마음을 놓다 -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필자는 <게르니카>의 사회적 주제보다는 피카소의 개인적 심리에 관심을 두었다.

마친가지로 나(독자)는 필자의 주제의식보다는 필자 개인의 어릴적 부모와의 관계, 유학시절 고독한 공부, 바뀐 머리 스타일에 무심한 남편에 대한 서운함 등에 더 관심을 두었다.

그리고 홀로 어묵을 먹으며 정종을 한잔을 할 수 있는 '방심'을 부러워한다.

힘들 땐 글씨보다는 그림을 보라는 제안을 기억하며,

나도 그림에, 방심하고 싶다. 

 

<밑줄 쫙>

 

'미운 세살'이 미운 짓을 많이 하는 이유는 자기 행동의 허용 범위를 알기 위해서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점차 아이는 세상과 자기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들이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좀더 자라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 아이는 어느 선까지 자기 주장을 해야 하는지 조금씩 익히게 된다. 그러는 동안 '나'라는 경계가 만들어진다.

 

인간으로서의 모든 욕망을 억누르고 자기절제의 미덕을 쌓아야 하는 수녀들은 과거에는 거울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프라비니성심수녀회의 견습 수녀들은 언제나 아침 10분 동안에 찬물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 입고는 거울 없이 머리를 빗어야 했다. 거울 속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기만족에 빠지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어느 수녀원 부속학교에서는 휴대용 손거울을 압수하기 위해 수녀 선생님들이 기숙사를 뒤지고 다녔다고 한다. 수녀들에게 거울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은 분명 그것이 자기애의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기애란 바로 사랑에 빠지기 전 단계이기 때문이다.

 

개는 후회하지 않는다.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소통할 줄 아는 현명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은 준 것 만큼 되돌려 받지 않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한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만큼은 개처럼 해야 한다. 사랑하라. 개처럼 솔직하고 단순하게.

 

부모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아는 것은 오직 은혜와 효도라는 말밖에 없다. 부모이기에 희생하고 자식이이게 복종하면서 서서히 꿈이 말라가고 조금씩 섭섭한 감정을 쌓아가는 것도 은혜이고 효도일까? 가슴에 고인 물은 오래 두면 썩는다. 부모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도리를 행하기보다는 서로 많이 사랑해주면 좋겠다.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드는 사람은 인간관계에 서툰 부류에 속한다. 이런 사람은 아주 이기적인 집을 마음 속에 지어 놓고 그 집 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가두려 한다. 정작 스스로는 틀을 지어놓은 규칙들이 깨어질까 두려워 하면서, 상대방의 많은 것을 희생시켜 자신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포함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혼자 있는 것과 외로운 것은 같지 않다. 외로움은 상실감을 내포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10년 후 물어물어 다시 이 연주가를 찾아온다 한들 지금과 똑같은 느낌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행복은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색깔이 달라지는 카멜레온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추구하고 마침내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견하고 매순간 경험하는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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