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을 보기 좋게 비틀어 버린 책이다. <시크릿>에 감동한 사람들에게도 불편한 진실을 일깨워준다. 단, 노예처럼 살아도 살기만 하면 좋다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안 읽히는 게 좋겠다. 괜히 마음만 상할테니까.

 

<좋은 구절>

미국이 가장 훌륭하고 가장 위대한 나라라는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분명히 군사적으로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다. 하지만 다른 많은 분야에서 미국이 기록한 점수는 형편없으며, 2007년 시작된 경기 침체 이전에도 그랬다. 미국 어린이들은 다른 선진국 어린이들에 비해 수학이나 지리 같은 기본 과목에서 뒤처져 있다. 또 유아 사망률이 더 높고, 아이들이 가난 속에서 성장하는 비율도 높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인하다시피 미국의 의료 서비스는 파탄했고, 의료 기반 시설은 붕괴하고 있다. 과학 및 기술 분야에서도 우위를 빼앗겨 많은 기업이 연구개발사업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분야를 보면 자부심은커녕 당황스러울 뿐이다. 미국은 수감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부와 소득의 불평등 수준도 세계 최고다. 또 총기 폭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개인 부채에 짓눌려 있다.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다룬 최초의 역작은 1936년 출판된 이후 지금까지 팔리고 있는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의 ‘카네기 인간관계론(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이다. 기업가 앤드류 카네기와 발음이 같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름(Carnagey)의 철자를 바꾼 카네기는 독자들이 정말로 행복할 것이라고 가정하지 않았다. 제대로 연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였다. “웃을 기분이 아니라고?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억지로 웃어라. 혼자 있다면 휘파람을 불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노래를 불러라.” 당신은 긍정적으로 행동하도록 자신을 ‘강제’할 수 있고, 아니면 그렇게 되도록 훈련받으면 된다. “많은 기업이 전화 교환원들에게 관심과 열의를 풍기는 목소리로 응답하도록 훈련시킨다.” 전화 교환원이 정말로 열의를 느낄 필요는 없다. 그런 느낌을 ‘풍기면’ 된다. 카네기의 책에서 최고의 성취로 꼽는 것은 진심을 가장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인간관계의 다른 모든 법칙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표명하는 것도 반드시 진심 어린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진심을 ‘표명’하는 체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관한 설명은 책에 나와 있지 않지만, 거의 배우 수준의 연기력이 요구되리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사회학자 앨리 혹실드는 1980년대에 발표한 유명한 연구에서 항공기 승무원들이 언제나 쾌활하게 승객을 응대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감정이 고갈된다고 밝혔다. “그들은 자기의 진짜 감정을 잃어버립니다.” 혹실드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긍정적 사고는 고용주의 손에 의해 19세기 주창자들이 짐작도 하지 못했을 용도로 바뀌었다. 떨치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라는 권고가 아니라 직장에서의 통제를 위한 수단, 더 높은 실적을 내라고 들들 볶는 자극제가 되었다.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낸 출판사는 1950년대에 일찌감치 기업 시장으로 눈을 돌려 “기업 임원 여러분, 이 책을 직원들에게 주십시오. 커다란 이익을 낼 것입니다”라는 광고를 냈다. 광고는 영업사원이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이 파는 상품과 자기가 속한 조직에 새로운 신뢰를 갖게 될 것이며, 내근 직원들의 효율성도 높아져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장담했다. 동기 유발이 채찍으로 사용되면서 긍정적 사고는 순응적인 직원의 품질 보증서가 되었고, 1980년대 이후 다운사이징 국면에서 고용 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채찍을 쥔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정리 해고는 기업을 강하게 했을까, 약하게 했을까? 1990년대 미국경영자협회에서 조사한 결과 정리 해고가 생산성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리 해고를 하면 분명히,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오른다. 주식회사 미국의 새로운 ‘비즈니스 영성’의 핵심에 만약 신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 신의 이름은 시바(Shiva), 파괴의 신이다.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 현실을 기껍게 받아들이고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기어이 해고된 노동자들과 과로에 시달리며 아직 버티고 있는 직원들에게 주는 최대의 선물, 곧 긍정적인 사고다.


급격히 성장하는 분야인 경제 자기계발서들도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다운사이징에 적응하도록 일조한다. 다운사이징 선전의 고전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1000만 부가 팔렸는데 기업에서 뭉텅이로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 준 것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책을 읽기 싫어하는 독자의 손에 들어갈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94쪽밖에 안되는 얇은 두께에 활자도 큼지막하고, 어린이용 책에 적합한 우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미로 속에서 치즈를 먹으며 사는 두 사람 헴(Hem)과 허(Haw)가(이 둘은 심사숙고하는 인간의 속성을 대표한다) 어느 날 치즈가 늘 있던 곳으로 가 보았더니 치즈가 사라지고 없다. 이 작은 사람들은 부당하다고 불평하고 화를 내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한편 미로 속에는 쥐 두 마리가 있었는데 쥐들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치즈가 있는 다른 곳을 찾아 달려간다. 인간들과 달리 쥐들은 단순한 삶을 산다. “그들은 지나치게 분석하지 않고, 일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마침내 작은 사람들도 ‘새로운’ 치즈에 적응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쥐들에게서 배운다. 허는 끌어당김의 법칙(「시크릿」 참고)에 해당하는 방법을 써서 치즈를 찾는다. 그는 우선 마음 속에 그림을 그린다. “아주 생생하고 상세하게, 체다 치즈부터 브리 치즈까지 좋아하는 치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한가운데 자기가 앉아 있는 모습을”. 옛 치즈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대신 허는 변화가 더 나은 것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곳 ‘맛있는’ 새 치즈를 먹게 된다. 이것이 정리 해고 희생자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지나치게 분석하고 불평하는 인간의 위험천만한 속성을 극복하고 쥐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 직장에서 쫓겨나면 조용히 입 다물고 나와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 재빨리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오스틴(「긍정의 힘」 저자)의 세계에서는 하느님마저 지지자의 역할을 할 뿐 필수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다. 신비와 경외감은 사라지고 없다. 하느님의 존재는 집사장 내지 개인적 조력자로 격하되었다. 하느님은 나의 속도위반 딱지를 해결해 주고, 식당에서는 좋은 자리를 찾아 주고, 내가 책 계약을 딸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런 사소한 과업을 위해 하느님한테 기원하는 것을 보면 필요 이상으로 공손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우리의 마음이 자석처럼 움직여 시각화한 모든 것을 끌어당긴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일단 받아들이면 인간이야말로 전능한 존재가 아닌가?


우리는 ‘긍정적’이라는 단어와 ‘좋은’이라는 단어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이런 도덕 체계에서는 항상 밝은 면을 보고, 늘 태도를 고쳐 나가고, 인식을 교정하지 않으면 어두운 사람으로 규정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긍정적 사고의 대안이 절망은 아니다. 실제로 부정적 사고는 긍정적인 사고만큼이나 망상이 될 수 있다.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의 고뇌를 외부로 투사하며, 모든 일에서 최악의 결과를 예상하고, 그런 왜곡된 기대를 통해 고뇌를 부풀린다.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 모두 감정과 지각을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 대신 환상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거나, 침체로 빠져드는 익숙한 신경 경로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런 두가지 경향에 대한 대안은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자기감정과 환상으로 채색하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쾌활하게 생활하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고 해도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데에 심리학자 줄리 노럼이 말한 ‘방어적 비관주의’가 필요하다. 조종사만 최악의 사태를 그려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 운전자도 그렇다. 아무도 차 앞으로 불쑥 튀어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가정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며 보다 부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브레이크를 밟을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가 단번에 낙관적 진단을 내놓기보다는 부정적인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검사하기를 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