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전 - 염상섭 중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9
염상섭 지음, 김경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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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이 1920년대에 쓴 중편소설이다. 3.1만세 전에 시대상을 그린 작품인데, 원래 이름은 묘지였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주인공 이인화는 처자식을 조선에 두고 일본으로 유학가서 술집 여자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인물이다. 조선으로 돌아가 아내의 임종을 보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줄거리 속에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나약한 시대인식을 엿볼 수 있다.

 

내지(일본)의 각 회사에서 연락해 가지고 요보(조선인을 비하하는 말)들을 붙들어 오는 것인데.... 즉 조선 쿨리(중국, 인도인 노예) 말씀요. 농촌 노동자를 빼내 오는 것이죠 (중략) 요보들은 말을 잘 듣고 쿨리만은 못해도 힘드는 일을 잘 하는데다가 삯전이 헐하니까 안성마춤이지...그야 처음 데려갈 때에는 품삯도 많고 일은 드러누워서 떡먹기라고 푹 삶아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갈 노자며 처자까지 데리고 가야 하고, 게다가 빚까지 갚아주는 데야 제아무런 놈이기로 아니 따라나설 놈이 있겠소. 한번 따라나서기만 하면야 전차가 있는데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지. 일이 고되거나 품이 헐하긴 고사하고 굶어뒈진다기루 하는 수 있나, 하하하

 

조선노동자를 꾀여 일본 공장이나 광산에 팔아먹는 일본상인의 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주인공 이인화는 마땅한 저항도 치열한 시대인식도 없다.

 

망국 백성이 된 지 벌써 근 십 년 동안 인제는 무관심하도록 주위가 관대하게 내버려 두었었 다. (생략) 칠 년이나 가까이 일본에 있는 동안에, 경찰관 이외에는 나에게 그다지 민족관념을 굳게 의식케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원래 정치 문제에 흥미가 없는 나는 그런 문제로 머리를 썩여본 일이 거의 없었다 하여도 가할 만큼 정신이 마비되었었다. (생략) 조선사람이란 무엇에 써먹을 인종인지 모르겠다. 아침에도 한잔, 낮에도 한잔, 저녁에도 한잔, 있는 놈은 있어 한잔, 없는 놈은 없어 한잔이다. 그들이 이렇게 악착한 현실 앞에서 눈을 감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노력이요, 그리 하자면 술잔밖에 다른 방도와 수단이 없다. 그들은 사는 것이 아니라 목표도 없이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 무덤으로 끌려간다고나 할까? 그러나 공동묘지로는 끌려가지 않겠다고 요새는 발버둥질을 치는 모양이다. 하여간 지금의 조선사람들에게서 술잔을 뺏는다면 아마 그것은 그들에게 자살의 길을 교사하는 것일 것이다. 부어라! 마셔라! 그리고 잊어버려라! 이것만이 그들의 인생관인지 모르겠다.”

 

일제 강점기에 부유한 일본 유학생인 이인화는 그저 조선인이란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이고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걸 숨기고 싶은 사람에 불과하다. 조강지처의 죽음 앞에 큰집 형님이란 사람은 이인화에게 내년 봄에는 재혼해야 하지 않겠냐고 묻고, 이인화도 웃음으로 화답한다. 그렇게 조강지처 조국의 죽음은 오히려 그들의 바람이었다. 

 

이인화는 한 소설가의 필명이기도 하다. 친일파 박정희를 미화해서 논란이 된 작가인데 그가 왜 이인화를 필명으로 사용했는가를 알고 싶다면 만세전을 읽어 보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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