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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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씹히는 거 구경하러 갔다가 좌파도 같이 씹히는 걸 보고 당황했다.  

당황했지만 황당하지는 않았다. 

(놀란 건 같지만 당황은 내 잘못 때문이고, 황당은 남 잘못 때문이다.)  

좀더 섹시한 좌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졸라 감사하다 씨바 ㅋㅋ 

 

<마음에 든 구절들> 

 

우는 세계관이 아니라 반응이라고 생각해. 공포와 마주한 동물의 반응. 그런 수준의 반응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도 다들 하는 거거든. 식량이 없는 두려운 겨울을 견디고 봄까지 살아남기 위해 가을에 졸라 많이 처먹는 곰의 적응과 하등 차이가 없는 거라고. (중략) 좌도 정글의 불확실성이 두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우가 그 공포에 압도되어 자기만이라도 살려고 반응하는 거라면, 좌는 그 공포를 잘게 나눠 각자가 담당해야 하는 공포의 몫을 줄여서 해결하려 하는 거라고.

(중략)

그렇다면 좌의 취약점이 뭐냐. 좌는 스스로 지적으로 우월하고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는 거. 그게 왜 문제냐면, 좌가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드러나는 지적 오만이 대중들로부터 좌를 유리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거. 자기들만의 언어로, 자기들끼리만 대단하고 자기들끼리만 정당하지.

(중략) 

농담도 하고 술도 마시고 손도 잡고 그러다 점점 서로 매력을 느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건데. 그런데 진보정당의 방식은 이런 식이야.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 계획서와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놔. 그리고 입주할 주택의 입지 조건과 주입할 차량의 대출 조건 및 주변 교육 환경의 우수성에 대해 부동산과 금융, 교육 전문 용어를 섞어 진지하게 프리젠테이션하지. 그런 다음 건조한 표정으로 바로 결혼하재. 만약 나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속물이라 더 큰 집과 더 큰 자동차에 넘어간 방증이라며. 그걸 당한 상대는, 당신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당신 패션부터 좀 후줄근한 것이 촌스러운 데다, 자료는 열심히 준비한 것 같지만 뭘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겠고, 결정적으로 내가 당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냐며 일어나 떠나버려. 남겨진 진보 군은 자기 프러포즈가 실패한 요인을 열심히 분석하다가 입지 조건과 대출 조건의 우수성을 다른 경쟁자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 내리지. 그렇게 연애 한번 못해봤으면서 꼭 결혼할 거라고 혼자 다짐을 하지. 20년 후에. 아, 슬퍼.

더 슬픈 건 뭐냐. 욕심 많고 잇속 빠른 보수 군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진보 군이 책상 위에 남기고 간 계획서와 설계도를 집어 와서는 표지만 엄청 화려하게 바꾸고 총천연색 컬러로 인쇄해서, 자리를 박차고 떠난 국민 양을 찾아가 계획서를 다시 내놓는다는 거야. 하지만 그 내용은 읽어 주지 않아. 휘리릭 페이지만 넘기면서 대신 장미 한 송이 안겨주고 레스토랑으로 데려가서 엄청 맛있어 보이는 스테이크를 시키지. 그들을 그렇게 연애를 시작해버리네.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 국민 양은 알게 되지, 그 장미는 플라스틱이고 그 밥값은 자기가 내는 거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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