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램의 희망 - 삶의 매순간은 신성하다
강인식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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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학석사, MIT 박사, 그리고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학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자동차 전복사고로 목 이하를 움직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다. 어쩔 것인가?

식물인간이 아닌 것만으로도 희망은 남아 있었다.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스스로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에겐 다시 웃을 수 있는 희망이 되었다. 심지어 자신만을 위했던 그간의 삶을 반성하고, 남을 위해 살아가야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 앞에선 절망은 사치다.


<밑줄>

다시 일어설 수 있겠습니까? 손을 쓸 수는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완전한 절망은 아닙니다.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C4가 완전히 손상됐나요?”

그렇습니다

간결한 대답이었다. 대화는 그것이 전부였다. 걸어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런, 괜히 큰돈 쓰면서 비싼 병원에 왔잖아

USC 대학병원 중환자실의 사용료는 하루에 2천만원이 넘었다.

 

MIT에는 유명한 통계가 있다. 교수의 이혼율이 70%에 이른다는 것이다. 나는 솔로몬 교수의 말을 들으며 그 통계의 의미를 깨달았다. 늘 고민하지만 가정생활과 연구 과학자로서의 생활을 둘 다 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혼자서 하는 입시 형태의 공부에는 강할지 몰라도 연구에서 뒤처지는 것이 토의를 통해 자기 의견을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MIT에서 가장 잘못한 것이 있다면 입시 식의 공부를 지향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기초연구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결과까지 한꺼번에 보장해야 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연구결과를 왜곡하거나 과대포장하는 것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연구 결과가 과장되었을 때 이를 잡아내고 제재를 가할 제도나 윤리적인 기준도 거의 없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면 될까?”

제가 보기에 형은 다친 직후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답을 구하신 것 같은데요?”

그 순간, 나는 맞아. 내가 죽음을 앞두었을 때 나만을 위한 삶에 대해 후회했었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정도나마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과학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다. 그런데 과학은 큰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과학은 불행히도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많은 질문들에 대해 답을 줄 수가 없다. 과학은 절대적이나 모든 것에 답을 주지는 못한다. 한 예로서 과학은 왜 우리가 사는지, 선과 악은 왜 있는지, 죽음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학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을가 싶어서 성직자들에게 물어본다. 그들은 이 문제들에 대해 우리에게 그럴싸한 설명을 해 준다. 그러나 전적으로 그 설명들에 기대기는 어렵다. 언제나 의심과 회의가 싹튼다. 러셀은 과학과 신학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 놓인 그 넓은 회색지대가 철학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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