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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안준철 / 현대문화센터 / 1992년 11월
평점 :
품절
“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 눈물이 흐르곤 했었던 그날들” 김창기 작사 작곡 김광석 노래 ‘그날들’의 가사이다. 이 가사의 원조는 안준철 시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의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 나는 이미 그윽해진다”이다.
“거창 고등학교에 다녀온 뒤 나는 교사가 되겠다는 신념을 끝내 버리지 못하여 당시 식솔을 거느린 생활인으로서의 위기감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사범대학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서른 세 살의 나이로 첫 교단을 밟은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내림을 거부할 수 없어 끝내 무당이 되는 것처럼 안준철 선생님은 그렇게 운명처럼 교사가 되었다.
그리곤 담임반 학생들의 생일에 시를 만들어 선물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제자의 영전에 바치는 시까지. “계집 아이처럼 / 희고 고왔던 / 네 얼굴보다도 // 으깨진 뼛가루가 / 더 곱고 희더라 // 주검조차 눈부신 / 열아홉살 // 그 젊은 나이로 / 너는 정녕 / 먼 길을 떠난 것이냐 (‘하얀 주검’ 中)”
나는 고등학교 교사이다.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넘어선 시기와 질투의 시간, 즉 방학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예전처럼 쉬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방학이 아니다. 백여명 학생들의 생기부에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500자씩 입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악용해서 미사여구가 범벅된 거짓말을 입력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솔직하게 ‘잤다. 떠들었다. 딴 공부했다’라고 적어줄 수도 없어 괴로운 시간을 견디어 내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안준철 선생님의 이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였다. 안선생님이 교단에 오른 것은 1980년대 말이다. 그때엔 지금처럼 거짓말 생기부를 강제로 입력해야 했던 시기가 아니다. 다만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 제자에게 생일시를 써주는 일을 묵묵히 하셨다. 아, 나도 세특이 아니라 편지를 쓰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안준철 선생님과는 구면이다. 20년전 처음 만났을 때 퇴임을 10년 앞둔 노교사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 대한 사랑은 초임교사 못지 않은 낭만선생님이셨다(실제 별명도 낭만샘). 어느새 지금의 나도 퇴임을 10년도 채 남지 않은 늙은 교사가 되었다. 게다가 방학 내내 세특 작문하는 것에 진이 다 빠져버린.
그런데 운명처럼 이 시집을 만나게 되었고 이젠 세특을 편지처럼 써보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안준철 선생님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