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인생에 대하여 - 김광섭 자서전, 나의 이력서
김광섭 지음 / 한국기록연구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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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광섭 보단 덜 유명한 시인 김광섭, 그러나 나이 좀 있으신 분들은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성북동 비둘기>로 김광섭을 기억하실 것이다.

 

진짜 유명한 <저녁에>이다. 왜냐면 화가 김환기가 그리고, 가수 유심초가 불렀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저녁에>의 마지막 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시는 <인생>이다.

 

너무 크고 많은 것을 / 혼자 가지려고 하면 // 인생은 불행과 무자비한 / 70년 전쟁입니다 / 이 세계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닙니다 // 신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 평화와 행복을 위해 / 낮에는 해 뜨고 / 밤에는 별이 총총한 / 더없이 큰 / 이 우주를 그냥 보라구 / 내주었습니다. -김광섭 <인생>

 

일제 강점기에 와세다대 영문과를 졸업한 수재였지만 모교인 중동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할 시절 일제에 저항하는 수업을 하다가 38개월간 수감이 된다.

 

광복 후 이 대통령 밑에서 공보비서직을 3년간 하다가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눈 밖에 나서 경질된다. 뇌졸중으로 투병 중에 성북동 비둘기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을 창작한다. 죽었다 살았던 일, 죽을 때까지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살아야 하는 아픔이 오히려 그의 작품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밑줄>

그러던 어느날, 그러니까 그해 겨울방학을 눈앞에 둔 마지막 수업시간 때의 일이었던 것 같다. 일본 시찰 이후 오랫동안 침묵만을 지켜오던 나는 드디어 이 시간에 입이 터지고 말았다. 학생들에게 일제의 현황을 말하고, 애란 민족의 수난사를 토하면서 일제 항거에의 민족정신을 간접적이나마 고취시키고 말았다. 바로 이것이 내가 서대문형무소로 가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대통령은 내실로 들어가더니 프 여사와 말다툼을 했다. 부부싸움 현장이라 있을 곳이 못된다고 여긴 나는 되돌아가려는데 등 뒤에서 이런 말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무이길래 이 사람을 써라 저 사람을 써라 하는 거요?”

뭣이 잘못 됐나요?”

이런 말이었다. 이 두 마디 말로 나는 두 분의 말다툼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 인사문제였고, 그 문제가 이번에 있었던 장관경질과 관계가 있음을 짐작케 했으니, 인사문제에 프 여사가 개입했던 것이 아닌 생각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지 며칠 뒤 아침 프 여사의 비서였던 황규면씨가 내 집에 찾아왔다. 용건은 프 여사가 전하라는 말이라면서 오늘부터 경무대를 그만두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그 짐작이란 며칠 전의 부부싸움이다. 그때 이 대통령은 언성을 높여 프 여사와 말다툼이 있었고, 그 내용은 인사문제였으니 필경 항간에서 잘못된 인사라는 내 말을 그대로 프 여사가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고 물었을 때 이 대통령은 나에게서 들었다고 했을 것이다.

 

그날 운동장에서 졸도한 후 나는 오랫동안 엎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동행했던 설창수씨는 구경에 정신이 팔려 나를 잊고 딴 곳으로 갔던 모양이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혹시나 해서 살펴보니 죽음이 촌전에 다다른 위급한 환자였단다. 그분은 학생들을 동원해서 나를 이곳으로 떼메다 놓았다.

메디컬센터 병실 창밖에는 포플러가 숲을 이루었다. 그 밑을 걸었던 일들이 이젠 하나의 추억이 되고 말았다. 애들이 집에 핀 라일락꽃을 꺾어왔다. 진한 향기가 코에 스며들자 불현 듯 집이 그리워졌다.

그러나 수족은 이미 다른 사람의 것이 돼버렸다. 집에 가려면 걸을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겨울산>, <>, <성북동 비둘기> 등의 시상등은 성북동에서 구상하여 미아리에서 완성한 것이다. 일찍이 쾨테는 모든 시를 상황의 소산이라고 보았다. 와병 중에 내가 쓴 시는 괴테의 말대로 확실히 상황의 소산이었다. 몇 번이나 죽음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반신불수의 아들을 보고 어머님이 세상을 뜨시더니 이번엔 아내가 나의 이 꼴을 남겨놓고 먼저 떠난 것이 아닌가. 설상가상이라더니 나를 두고 한 말인 듯했다. 아내의 시신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병신의 몸을 치며 애들과 함께 통곡했다.

새삼 아내의 사랑이 그립다. 중세의 철인 안셀렘은 <인생은 나그네>라더니 아내마저 잃어버린 나는 세상의 나그네와도 다름없다. 그래도 나는 임종의 그날까지 시를 생각하며 시를 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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