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13000년 인간사를 600여쪽에 정리했는데, 그걸 또 한 문장으로 요약해 줬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민족간 우열, 승패가 갈린 것은 능력 차이가 아니라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운명적으로 우열, 승패가 갈린 것은 과거의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치고, 이제는 수렵, 채집, 이주 사회의 평화적 방법으로 전쟁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수렵과 채집의 사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내가 이해한 것을 정리하자면인류가 수백만년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쭉 그곳에서만 살다가 최근 만여년 전부터 유럽아시아아메리카태평양 이스터섬까지 이주했다수십명의 무리(band)를 이뤄 수렵과 채집으로 이주생활을 하다가농사와 목축으로 정주생활을 시작해 전쟁으로 규모를 키워갔다수백의 부족(tribe), 수천의 추장 사회(chiefdom), 5만 이상의 국가(state). 이 과정에서 통치의 수단으로 문자종교 등이 발명되었다. 


흥미로운 부분! 

유럽은 분열되어 있어서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만들었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했다.  

일본은 한국의 후손이다. 


책을 다 읽은 후 아래 동영상을 보면 더 좋을 듯

https://youtu.be/MT73bLZ3DUI 


 

<밑줄>

뉴질랜드에서 동쪽으로 800km 정도 떨어진 채텀 제도에서 수세기에 걸쳐 살아오던 모리오리족은 183512월에 갑자기 자유를 잃었다. 그해 1119, 총과 곤봉과 도끼로 무장한 500명의 마오리족이 탄 배가 도책했고 125일에는 다시 마오리족 400명이 더 왔다. 마오리족은 몇 패로 나뉘어 모리오리족의 촌락들을 누비고 다니면서 모리오리족은 이제 자기들의 노예라고 선언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죽여버리기 시작했다. 만약 모리오리족이 조직적으로 저항했다면 수적으로 21의 열세에 있던 마오리족을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리오리족에게는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들은 대표자 회의를 열어 맞서서 싸우는 대신 평화와 우정을 제안하고 물자를 나눠 주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모리오리족이 미처 그 제안을 전달하기도 전에 마오리족이 한꺼번에 공격해 왔다. 그로부터 며칠 사이에 그들은 수백 명의 모리오리족을 살해하고 많은 시체를 요리해 먹었으며 남은 사람들은 노예로 삼았고 더구나 그들마저 몇 년동안 닥치는 대로 죽여서 대부분 없애버리고 말았다.

모리오리족은 고립되어 있던 소수의 수렵 채집민으로 지극히 간단한 기술과 무기밖에 없었다 그들은 전쟁의 경험이 전무했고 강력한 지도층이나 조직력이 부족했다. 반면에 마오리족 침략자들은 격렬한 전쟁이 만성적으로 되풀이되는 조밀한 농경민 사회에 속해 있었다.

 

오늘날 식량 생산이 곧 육체 노동 감소,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 평균 수명 증가 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자기는 직접 먹거리를 기르지 않으면서도 풍요롭게 살고 있는 제1세계의 사람들뿐이다. 전 세계에서 실제 식량 생산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농경민이나 목축민들은 수렵 채집민들보다 잘 산다고 말하기 어렵다. 시간의 효율성에 대한 연구들을 보더라도 하루 중 노동 시간이 수렵 채집민들보다 오히려 길면 길었지 짧지는 않다.

고고학자들의 밝혀낸 바에 따르면 많은 지역에서 최초의 농경민들이 수렵 채집민을 교체했지만 그들은 수렵 채집민보다 체격도 작고 영양 상태도 좋지 않았으며, 심각한 질병을 더 많이 앓았고 평균적으로 더 젊은 나이에 죽었다. 만약 그 최초의 농경민들이 식량 생산을 시작하는데 따르는 결과를 미리 예상할 수 있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은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고 그 같은 선택들 하게 되었을까?

 

식량생산자들은 인구가 훨씬 조밀했기 때문에 굳이 기술, 병원균, 직업 군인 등등 식량 생산과 관련된 그 밖의 이점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순전히 숫자만 가지고도 수렵 채집민들을 몰아내거나 몰살할 수 있었다.

 

도둑 정치가와 현명한 정치가의 차이, 이를테면 날강도에 가까운 폭군과 대중에게 은혜를 베푸는 성군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다. 결국 생산자들로부터 거뒤들인 공물 중에서 얼마만큼의 비율을 엘리트 계급이 가져가는지, 그리고 그 공물 중에서 얼마만큼이 공공 용도에 사용되어 평민들에게 재분배되는지가 관건인 셈이다.

 

도둑 정치가가 대중의 지지를 얻는 마지막 방법은 도둑 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구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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