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시절의 이야기
임종국 지음 / 아세아문화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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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임종국의 빼앗긴 시절의 이야기를 읽고

 

광복의 해 16살이던 소년 임종국에게 패잔 일본군이 20년 뒤에 보자는 말을 한다. 그로부터 정확히 20년 후인 1965년 다카키 마사오(한국명 박정희)에 의해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이뤄졌다. 이때부터 임종국은 친일과거사를 연구했고 그 결과 심지어 아버지의 친일행적마저 폭로하였다. 60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집요한 노력으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가 생기고 친일인명사전이 탄생하게 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펴낸 임종국 선집 총 8편은 여성의 운동, 특히 학생독립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밑줄>

 

김연실전은 단순히 신여성사가 아니라 여학생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새로워진 사회에서 배우고 있는 여학생들은 지난날 새로워지려는 사회의 여학생들이 어떻게 고민하고 행동하고 전진하고 희생되었는가를 알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3월의 횃불은 이 땅의 여학생들이 표현한 최초의 스튜던트 파워였다. 이로써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함께 동등할 수 있다고 증명한 경성여보고의 어느 여학생은 만세행렬을 방관하는 남학생을 심지어 뺨까지도 갈겼다. 이리하여 반영독립운동으로 6번째 투옥된 네루는 옥중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그의 딸에게 보냈다.

코리아의 민중 특히 청년남녀들은 우세한 적에 항거하여 용감하게 투쟁했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그들의 이상을 위해 순사(殉死)한 것이다. 코리아에서는 대개 학교를 갓 나온 소녀들이 이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면 아마 너도 마음이 끌릴 것으로 생각한다

네루가 탄복한 한국 여학생들의 자주독립정신과 항거의 기록!

 

이화여고 310명 전부, 동덕여고 190명 전부, 배화여고 200명 전부, 숙명여고 406명 전부, 경성여자상업 282명 전부, 경성실천여고 112명 전부, 정신여고 93명 전부 ... 1930115일 아침 300명의 이화여고생들은 격문을 뿌렸던 것이다. “학교는 경찰의 침입을 반대하라. 식민지 교육정책을 전폐하라. 광주학생사건에 대하여 분개하라. 학생 희생자를 모두 석방하라. 조선의 청년학생 옹호, 일본의 야만정책을 반대하라. 각 학교의 퇴학생을 복교시켜라” ... 이 사건이 세칭 여학교 만세사건이다. 7명 수형자 중에서 5명이 이화여고 학생이어서 혹은 이화여학교사건이라고도 한다. 6.10만세와 광주학생사건으로 한국의 남학생들이 용감했다면 한국의 여학생들도 결코 비겁하지 않았다. 그들은 독자적으로 여학교 만세사건을 일으킴으로써 그들의 의기와 용감성을 천하에 과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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