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 마틴 루터 킹 자서전
클레이본 카슨 엮음, 이순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마틴루터킹목사 자서전)’을 읽고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은 영어 문제 지문에서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때론 국어, 화법 시간에 잘된 연설의 사례로 언급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연설을 한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의 인생을 두로 살펴보기에 좋다.

 

1929년 정의로운 목사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그 역시 아버지 못지않게 정의로운 목사가 되었다. 55년 로자 팍크스 여사가 버스좌석의 흑백차별에 저항하여 체포된 일을 계기로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운동을 시작한다. 6839세의 나이로 암살당하기까지 비폭력 평화시위로 말콤엑스와는 같고도 다른 길을 걸었다.

 

백인목사들이 수감 중인 킹 목사에게 시위 중단을 요구하는 신문광고를 내자 이에 긴 반박문을 써서 보냈는데, 여기서 킹 목사의 사상을 깊이 느낄 수 있다.

 

<밑줄>

 

집안 분위기는 화목했다. 부모님은 훌륭한 분이셨다. 나는 두 분이 언쟁을 벌이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는 나의 종교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내가 사랑을 베푸는 주님의 존재를 별 어려움 없이 확신할 수 있었던 것과 낙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은 모두 타고난 건강 체질과 화목하고 사랑이 넘쳐흐르는 가정 덕분이었다.

 

농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농장주인이 할아버지를 속여서 피땀 흘려 번 돈을 부당하게 빼앗는 현장을 목격했다. 아버지는 농장주인 앞에서 할아버지에게 주인이 부당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렸다. 그러자 농장주인은 이 검둥이 입을 당장 틀어막지 않으면 내 주먹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하며 몹시 화를 냈다. 그 농장주인에게 밉보였다가는 밥줄이 끊길 형편이었기에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에게 잠자코 있으라 하셨다. 바로 그 순간 아버지는 농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는 버스에 탄 흑인들에게 퍼부어지던 폭력과 모욕을 목격한 다음부터는 버스를 타지 않으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애틀랜타에서 교원급여 평준화투쟁을 주도했고, 법원 내 앨리베이터의 흑백차별을 철폐하는 데 기여했다.

 

간디를 연구하면서 나는 진정한 평화주의란 악에 대한 무저항이 아니라 악에 대한 비폭력적인 저항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간디는 폭력적인 저항자에 못지않은 용기와 힘을 가지고 악에 대항하면서도 가슴에는 증오가 아닌 사랑을 품고 있었다. 진정한 평화주의란 니버가 주장한 것처럼 사악한 힘에 굴복하는 비현실적인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주의란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보다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더 낫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랑의 힘에 의거하여 악에 용감하게 맞서는 태도를 의미한다. 폭력의 가해자는 우주 속에서 폭력과 고통을 증식시키지만 폭력의 피해자는 상대편에 수치심을 불러일으켜 심정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에게는 선한 본성이 잠재해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니버를 통해서 인간에게는 악의 본성도 잠재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인간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복잡성과 집단적인 악이 구현되는 실체를 인식할 수 있었다. 평화주의자 중에는 이런 점을 간과하고 인간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가지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독선으로 기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였다. 머릿속에서 조용히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마틴 루터, 정의를 위해 일어서라. 평등을 위해 일어서라. 진리를 위해 일어서라. 보라,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정당한 법을 준수하는 것은 법적 의무일 뿐 아니라 도덕적 의무입니다. 하지만 부당한 법에 복종하지 않는 것도 역시 도덕적 의무입니다. 저는 부당한 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을 빌어 말하자면, 부당한 법은 불멸의 자연법에 근거하지 않은 인간의 법입니다. 부당한 법은 수와 힘의 측면에서 다수에 속하는 그룹이 소수그룹에 대해 준수를 강요하면서 자신들은 전혀 구속받지 않는 법입니다. 정당한 법은 다수그룹 자신이 자발적으로 준수하면서 소수그룹에 대해서 준수를 강요하는 법입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에서 자행했던 일들은 모두 합법적인 것이었고 헝가리의 자유투사들이 헝가리에서 했던 일들은 모두 불법적인 것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는 유태인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편의를 제공하는 행위는 모두 불법적인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불만을 품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들에게 불만은 당연하고 건강한 것이지만, 그것을 발산할 때는 비폭력적 직접 행동이라는 창조적인 배출구를 이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어라하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극단적으로 사랑을 추구하신 분이었습니다.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공평이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라하고 말씀하신 아모스는 극단적으로 정의를 추구하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비롯하여 세 사람이 십자가에 달렸는데, 그 세 사람의 죄명은 모두 극단주의였습니다. 그 중 두 사람은 주위 환경에 비해서 비도덕적이라는 점에서 극단주의자였고, 예수님은 사랑과 진리와 선행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극단주의자였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간디는 몇십년 간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간디가 통일시키려 했던 조국은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갈등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간디는 조국의 분열을 지켜보면서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페인에 가고 싶어했습니다. 스페인에 가서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울의 가장 큰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스페인에 가지 못하고 로마의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인생은 이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그런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꿈은 오늘이나 내일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 꿈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유익한 것이다.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훌륭한 것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이 투쟁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여기서 투쟁을 멈춘다면 큰 비극이 야기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행진계획이 세워지면 모두들 참석합시다. 직장을 빠지더라도, 학교에 결석을 하더라도 행진에 참여하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형제들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여러분이 직접 파업을 하지는 않더라도 언제나 힘을 합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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