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평] 오키프는 산타페 사막에서 꽃을 보았다
 
만개(滿開)/ Hunter Drohojowska-Phlip 지음/ Norton출판사

[조선일보]

1986년 99세의 나이로 사망한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한 화가라고 할 만하다. 꽃과 동물의 뼈를 그린 추상화로 유명한 오키프는 인생의
후반부를 뉴멕시코주(州) 산타페 부근에서 보냈다. 오늘날 산타페가 예술의 도시로 자리잡게 된 데는 그녀의 영향이 컸다. 그녀는 성공한 예술가였지만 삶은 굴곡이 많았다. 이 책 ‘만개(滿開)’ (원제 Full Bloom: The Art and Life of Georgia O’keeffe)는 오키프의 삶과 예술을 다룬 전기인데, 저자가 여성인 탓인지 민감한 부분도 거침없이 다루고 있다.

조지아 오키프는 1887년 위스콘신에서 아일랜드계 부모 사이에 둘째로 태어났다. 오키프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었지만 버지니아로 이사한 후에는 집안이 기울었다. 오키프는 시카고와 뉴욕에서 미술학교를 다녔지만 늘 돈이 부족했다. 오키프는 텍사스에 미술교사 자리를 얻어 집을 떠났는데, 그 때 서부의 광활한 아름다움을 처음 접했다. 1914년 뉴욕의 컬럼비아 사범대학에서 공부하던 오키프는 그녀의 운명을 바꾼 애니타 폴리처를 만났다. 폴리처는 오키프의 그림 몇 점을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에게 보여 주었다. 영향력 있는 화상(畵商)이며 저명한 사진작가이던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그림을 보고 감탄했다.

1918년 오키프는 텍사스에서의 교편생활을 접고 뉴욕으로 향했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의 스튜디오에서 머물면서 그림을 그렸다. 자연히 이들은 동거하게 됐는데, 당시 오키프는 31세였고 유부남인 스티글리츠는 54세였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초상, 누드 등 많은 사진을 찍었고, 오키프를 화단(畵壇)에 등장시켰다. 몇 년 후 스티글리츠는 부인과 이혼하고 오키프와 결혼했다. 오키프가 스티글리츠의 품에 안긴 것은 어머니의 사망과 아버지의 가출, 첫 남자와의 실연 등으로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스티글리츠가 젊은 조수 도로시 노먼과 동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상심한 오키프는 40이 넘은 나이에 다시 누드로 카메라 앞에 서는 등 스티글리츠의 마음을 돌리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때부터 오키프는 친구 레베카와 함께 뉴멕시코를 자주 여행했다. 인디언 문화와 스페인의 영향이 공존하는 산타페는 오키프를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산타페에서 오키프는 자유를 느꼈다. 고스트 랜치에 머물면서 사막에 뒹구는 동물 뼈 등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비평가들과 언론은 이런 그림에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1946년에 스티글리츠가 사망하자 오키프는 산타페 부근 애비퀴에 완전히 정착했다.

오키프는 뉴멕시코의 자연과 고요함을 좋아했지만 그녀가 은둔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지인들이 산타페로 찾아왔고, 오키프는 그런 교류를 즐겼다. 미국 곳곳에서 오키프 전시회가 열리고, 예술원 정회원으로 추대되는 등 그녀의 명성은 대단해졌다.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오키프는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오키프는 점차 자기 중심적으로 변해 갔다. 비서와 하녀가 그만두는 일이 자주 생겼다. 오키프는 또한 시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게다가 친구들마저 잃었다. 뉴멕시코에 함께 자리잡은 레베카는 1968년에 자살했다. 오키프는 자신을 스티글리츠에게 소개한 50년 친구 애니타 폴리처와 절교했다. 폴리처가 자기에 대해 쓴 책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충격을 받은 폴리처는 병들어 죽었다. 오키프는 당시 한창이던 여성운동에 냉담했다. 그녀는 ‘여류화가’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 하지 않았지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사람은 모두 남자였다”고 말했다. 오키프는 자기 그림을 여성의 성(性)과 연상시키는 데 대해 불쾌하게 생각했다.

80세가 넘자 오키프는 거동이 불편해졌고 더욱 외로워 졌다. 1973년 당시 26세이던 존 해밀턴이 우연하게 오키프를 만났고, 오키프는 그에게 자기를 도와 줄 것을 부탁했다. 해밀턴은 근처에 집을 짓고, 눈이 멀고 잔소리가 많은 오키프를 그림자처럼 돌보았다. 오키프와 해밀턴은 너무 친해서 이들이 사랑하고 있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1983년 들어 오키프는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고, 1986년 3월 6일 산타페에서 숨을 거두었다. 오키프는 많은 그림 등 대부분의 재산을 해밀턴에게 주도록 하는 유언을 남겼는데, 이를 두고 소송이 제기됐다. 결국 타협이 이루어져 그림들은 몇 개의 미술관에 분산 기증되었다. 1997년에는 오키프 미술관이 산타페에서 문을 열었다. 신화가 되다시피 한 예술가를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이상돈·중앙대 법대교수 sdlee51@hotmail.com )

조지아 오키프에 대한 신간이 나온 줄 알고 좋아라 했더니만....쯧, 해외 서평이다. 국내엔 왜 그녀에 대한 책이 나오질 않는건지.... 그래도 신문 해외서평란에 큼지막하니 실렸으니, 조만간 국내 출간을 기대해봐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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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2-13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키프, 누군지 전혀 모르는데요. 제 라이벌 진우맘님은 어쩜 이리도 해박하시단 말인가요!!!

진/우맘 2004-12-1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Ÿ!!! 놀리시는거죠!!!! ㅡ,,ㅡ

panda78 2004-12-13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잉... 저도 드디어 오키프에 대한 책이 한권 나왔나 했더니... 쯔업. 번역되어 나오기를 기다려 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