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귀향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리뷰를 쓰기에 앞서, 흑색 소설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졌습니다. 한참동안 검색창을 따라 휘돌다 왔는데, 일목요연한 정의는 없고, 요거 한 줄 건졌네요.
흑색 소설(폭력, 섹스, 돈을 주제로 하는 소설)
그러나, 저 간단명료한 문장이 흑색소설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귀향',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난 단어이지만....라틴 아메리카, 필름 누아르 등의 다양한 단어가 어우러들 때 '흑색 소설'이라는 것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리뷰를 열면서 낯선 단어를 붙들고 잠시 서성였듯이, 이 책을 처음 열고도 한동안 갈피를 못 잡고 헤매었습니다. 작가에 대해서도, 내용에 대해서도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만났으니까요. 도서관 검색창에 우연히 떠오른 '루이스 세풀베다'라는 이름을 적어 넣고, 빌리려고 했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 대출중인지라 꿩 대신 닭으로 들고나온 터였습니다.
문장이 어렵거나 글이 현학적이라 헤맨 것은 아닙니다. 정 반대로, 너무 쉽고 흥미진진했기에 놀랐죠. '루이스 세풀베다'라는 이국적인 이름이 주는 기묘한 아우라에 지레 겁을 먹고 있었나봐요.
필름 누아르를 차용했다고 하더니, 정말 책이라기 보다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영화에서 신이 바뀌듯 칠레, 독일로 뚝뚝 끊어지며 바뀌는 장면과 더불어 등장하는 생소한 이름들을 외우려고 앞 장을 수도 없이 뒤척였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죠. 이야기 전개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으니까요.
전후 독일에 남겨진 군인, 은퇴한 게릴라들의 피폐한 삶과 쓸쓸한 심사를 헤아리기엔 근대 세계정치사에 대한 내 지식이 너무 짧지 않나, 울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군부 독재 아래에서의 인간군상을 그린 무수한 국내 소설 속 인물들과 후안 벨몬테가 오버랩 되면서는 그 답답함도 자연스럽게 가시더군요.
'귀향'을 읽었다고 하자 무수한 서재지인들이 루이스 세풀베다를 찬양하고 나섭니다. 이구동성, 이 작품이 세풀베다의 다가 아니라 하며, 대부분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최고로 꼽는군요. 멋진 작가를 새로이 만났다는 것은, 게다가 그와의 근사한 만남 이후에도 처음을 능가할 무수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상상만 해도 짜릿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