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요술 조약돌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63
한성옥 그림, 팀 마이어스 글, 김서정 옮김 / 보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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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줄도 길다'라는 하이쿠 모음집을 읽고 코웃음을 쳤었습니다.
'뭐야~ 장난 하나?'
당시의 저에게는 달랑 한 줄의 하이쿠들이 성의 없는 말장난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이상하죠? '시인과 요술 조약돌' 속의 두 개의 하이쿠를 보면서는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더군요. 하이쿠의 참맛이라 할까,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고 짧은 글의 진가를 알아차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 특이한 그림책입니다. 일본을 배경으로 했지만, 글쓴이도 그린이도 모두 일본 사람이 아니니 말이예요. 그러나 가끔은 '타인의 눈에 비친 나'가 더 명료한 순간도 있잖아요? 일본인들은 이 그림책을 보며 어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제가 볼 때는 일본 특유의 정서가 아름답게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영리한 여우와 무던한 시인 바쇼가 어우러지는 이야기가 낯설 법도 한데, 깜찍한 반전이 곳곳에 숨어 있어서인지, 딸아이는 또랑한 시선을 끝까지 흐트러뜨리지 않습니다.
"와....궁금하다. 다음 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도란거림에 곁에 누워 자는 척하던 아빠도 참질 못하고 "궁금하긴 뭘, 조약돌이 금돈으로 바뀌겠구먼~" 합니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지만, 몇 번을 들어도 새록새록한 맛....옛 이야기가 가진 힘을 고대로 재현해 내다니, 팀 마이어스라는 사람은 참 글재주가 좋은 이네요.



그런데, 글보다 더욱 빛나는 것은 그림입니다. 
'우리 아이, 책 날개를 달아주자'의 저자 김은하님은 좋은 그림책의 조건 중 하나로 다양한 시선을 꼽습니다. '시인과 요술 조약돌'이 바로 그래요. 재주 좋은 카메라 맨이 찍은 영화처럼, 멀어졌다 다가왔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았다 정면에서 바라 보았다,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화면은 이야기를 한층 흥미진진하게 끌어갑니다.
아....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또 어떤가요! 양 옆에 억새가 가득한 길, 예쁜 글 상자 주위를 화려하게 물들이는 단풍잎새들, 나무 그림자가 그윽한 절의 뒷마당.... 그림책 속 세상이지만, 여행을 막 마친 듯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풍요로운 볼거리 입니다.  



'더불어 먹는 버찌는 혼자보다 더욱 달콤해'
지금은 여우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엄마 때문에 깔깔대고 웃을 뿐이지만, 이 한 줄의 하이쿠가 딸아이 가슴 속에 단단한 씨앗처럼 자리잡길 바란다면....그래서 일 이 년 후 읽을 때면 '나누는 즐거움'이라는 큰 나무로 자라 있길 바란다면....그림책 한 권에, 너무 과한 욕심을 거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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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2-04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과 여우"에 이어 나왔나 보군요! 맑은 느낌 여전하겠지요? 보관함에 넣어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