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 - CJK - 죽은자를 위한 미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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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은, 내가 둘째 아이를 낳기 며칠 전에 시작되었다. 그 때 나는 출산과 산후조리를 위해 큰 아이를 떼어 놓고 혼자 친정에 내려가 있었다. 시간은 많았고,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았다. 12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건만, 새벽녘 자궁에 억눌린 방광 때문에 화장실에 다녀오면 정신이 말짱해졌다. 그럴 때면 나는 거실에서 24시간 뉴스만 방영하는 뉴스채널을 틀고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보고, 또 보았다.

게다가 미디어는 전쟁의 미래주의를 신나는 활극으로 묘사하면서 그 참상을 우리 영혼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완화하여 제시한다.  --제 3장, 충격과 공포 中

그랬다. TV 속의 전쟁은 지루할정도로 평온해 보였다. 미국 보수 언론의 시각에서 탈색된 그 화면들은 당최 현실감이 없었다. 만약 그 전쟁터 속 어디엔가, 나처럼 만삭의 임산부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시나마 들었다면....그렇게 몇날며칠, 전쟁을 심심파적으로 삼지는 못했을텐데. 
그 때의 나는 그 전쟁에 너무도 무지했다. 아니, 무지 이전에 무관심했다. 조금이나마 이라크 전의 부조리를 깨달은 지금, 나는 그 때의 내가 안타깝다. TV를 보며 언론의 궤변을 통탄하지 못한 점이 이제서야 뒤늦게 속이 상한다.

전쟁을 미학적인 관점에서 풀어내면서도, 왜 그것이 미학의 대상이 되면 안 되는가를 철저히 규명해 주는 멋진 책이었다. 내 머리와 사고가 이 책에 일임되는 것을 피하려 애를 썼지만,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 전쟁에 대한 진중권의 달변에 요만큼의 허점도 발견하지 못하고 동화되어 있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다만, 흑백에 사이즈도 작은(책 크기가 작으니 도판도 작아질 수 밖에) 도판은 가끔 없는만 못하다는 짜증을 일으켰다. 적어도 그 그림들에 색깔이라도 허락해 주었다면...싶다.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나라는 결국 그 나라 인민의 '인권'도 침해할 수 밖에 없는 것. 이라크에 자유를 주러 간 미군은 지금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를 하고 있다. --제 8장, 전쟁과 평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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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07-17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이요!!^^ 잘 읽었어요.. 아마 진우맘님이 리뷰상을 못 타시는 건 알라딘에서 내부자거래 의혹을 두려워해서일 거에요.^^

진/우맘 2004-07-17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고마워요 금붕어님. 우울한 저녁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칭찬이십니다.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