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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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일은 어떤 것일까 며칠을 생각해 보았다.

하루에 적게는 3시간 많게는 여섯 시간 이상 책을 읽고, 두세 시간 자판을 두드리면서

과연 내가 쓰는 글이 어떠한가를 고민하는 일이 많아진다.

아, 정말로 서평 쓰는 거에 진지하구나. 남들에게 취미에 불과한 것인데 왜 이토록 집념에 가까운

행동을 하고 있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지만 요즘 고민은 더 잘 쓰고 싶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정말 잘 쓴 글을 보고 싶었다. 문장 하나하나 버릴 것이 없어서 여러 번 읽어야 하는 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이런 감성은 어디서 파는 거지?

혹은 이런 사건을 통해 작가는 이러한 세계를 만들어 내는구나 하는 글을 만나야 했다.

그러다 읽은 책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 호미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은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꾸준하게 읽었는데 산문집은 처음이었다.

한때 온 국민이 다 읽었을 거라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라는 두어 번 읽었을 정도로

선생님 작품을 좋아했었다.

어쩌면 내가 쓰는 문장도 그분의 것처럼 오랜 시간 생각해서 골라낸 빛나는 것들이면 좋겠다

싶었을 때도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이 좋은 원단을 골라 정성스러운 옷을 짓는 것이라면, 선생님 옷은 마치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지어낸 가장 귀한 옷, 그래서 입는 사람이 편안하고 핏이 살아나며 평생을 입어도 질리지 않는 명품 같은 것이다.

이에 반해, 요즘 공장에서 드르륵드르륵 미싱으로 박아 만들어 낸 옷 같은 책들이 볼 때가 있다.

읽다가 혹여 나 또한 그러한 편안함에 길들여 질까 봐, 아주 훗날에 내가 쓴 글도 그렇게 될까 봐 경계하게 된다.

 

#이치울 노란집의 생활을 담은 산문집

『호미』는 박완서 선생님이 2011년 80세로 삶을 마무리하기까지 마지막 13년을 보낸 ‘아치울 노란집’에서의 소박하고 정겨운 생활을 담은 산문집이다. 출간 15주년을 맞이하며 백일홍 에디션으로 재출간된 책은 표지만큼이나 참 어여쁜 글들이 가득 담겨 있다.

선생님의 전원생활을 담은 이야기부터 종교, 유년 시절과 전쟁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글들은

그 한편이 소설 같고 드라마 같았다.

#꽃과 나무에 말을 거는 작가 이야기

미안하다고, 너를 죽이려 한 것도, 너의 꽃을 싫어한 것도 사과할 테니 내년에는 꽃 좀 피우라고 자꾸자꾸 말을 시켰다. 그랬더니 그 이듬해는 시원치는 않지만 꽃이 몇 송이 피었고, 지난봄에는 더 많은 꽃이 피었다. 아마 오는 봄에는 더 장하게 꽃을 피울 모양이다. 벌써부터 여봐란듯이 자랑스럽게 준비하고 있는 솜털 보송보송한 수많은 꽃봉오리들을 보니. 그래서 나는 요새도 나의 목련나무에 말을 건다.

용서해 줘서 고맙고, 이 엄동설한에 찬란한 봄을 꿈꾸게 해줘서 고맙다고.

호미, p14

선생님은 베어버린 목련이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다시 자라나는 것에 미안함을 표현한다. 지는 모양이 흉물스럽다 싫어해 베어버린 목련 나무는 밑 둥만 남은 채로 긴 계절을 이겨내어 기필코 다시 자라났다. 가지를 뻗어 온전한 나무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죄책감을 안고 사과를 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사과하는 마음이 안쓰럽고 애잔해졌다.

아파트의 편안한 삶이 싫어서 텃밭을 가꾸기 위해 전원주택으로 이사 간 삶은

그녀가 백여 가지 꽃과 나무를 가꾸며 고단한 정원일을 하는 이야기 중심으로 그려진다.

봉숭아, 복수초, 매실, 살구, 자두, 목련 잔디와 각종 일년초들. 텃밭의 크기는 알 수 없지만 이른 새벽

흙을 고르고 더운 여름 목마른 꽃과 나무에 물을 주며 떨어진 잎을 쓰는 가을이 온전히 담겨 있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마치 선생님의 정원에 초대받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여행이야기도 종종 나오는데 중국 여행에서 불편한 다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게꾼을 이용했다는 일화와 산 위에 세워진 호텔을 미안한 마음에 이용하기 죄스러웠다는 마음이 한편으로 이해가 되었다.

예전 치앙마이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인력거를 한 번 이용한 적이 있는데, 여간 불편한 마음이 들어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전혀 이해하지 못해 난감한 적이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게 직업인 사람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게 도와주는 길이라며, 미안한 마음을 갖는 나를 꾸짖기도 했는데 선생님도 같은 경험을 했다니!

진솔하다는 말이 진솔하지 않아서 쓰이는 것 같아 대화에서 거의 쓰지 않는다는 글은

입버릇처럼 "솔직하게 말해서"를 사용하는 나를 반성하게 하였다.

진짜로 솔직하게 말할 때는 저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종로 서적, 개성 이야기 그리고 38선

책 안에는 일제강점기 아래에서 다녔던 초등학교 일화와 고등학교 기억,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시어 미니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일제강점기와 남북전쟁을 겪고 마흔이 되어서야 소설가로 데뷔한 선생님의 일화를 산문을 통해 보게 되니

한국 근현대사 드라마 한 편을 본 것 같기도 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그 많은 일들을 겪을 수 있다는 게, 이젠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난 나의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 또한 북한이 고향이었고 일사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왔으며 오 남매를 키운 사람이었다.

전쟁 이야기,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하면 잡아갈까 무서워 많이 듣진 못했지만

가끔 일본어를 하는 할머니 모습과 금강산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의 일화가 떠올랐다.

우리의 할머니 세대는 정말로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시대와 호흡하는 문장들

각 문장들은 공간과 시대를 잘 표현해 준다. 유년 시절의 그리움이, 여행에 대한 고단함이 정치에 대한 실망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문장들을 읽고 있을면 왜 작가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였는지 알 수 있다.

호미는 따뜻한 저자의 삶의 태도와 담백한 생각들, 자연을 사랑하고 아꼈던 마음들을 잘 알 수 있었던

이야기로 어떤 글이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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