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오잔호텔로 오세요
후루우치 가즈에 지음, 남궁가윤 옮김 / 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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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아하는 소설가들 중에 일본 작가들이 많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오쿠다 히데오, 무레 요코

에쿠니 가오리, 다지이 오사무, 나스메 소세키 등 사람 이름 잘 못 외우데 일본 소설가 이름은 곧잘 외우고

신작이 나올 때마다 먼저 찾아 읽었다.

각 작가마다 장르도 문체도 이야기 흐름도 많이 다르지만 일본 소설 특유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특히 에쿠니 가오리, 무레 요코 등 소소한 이야기들이 소설이 되어 내 머리 안에 잔잔한 그림을

그려 낼 때가 많았다.

사진첩을 보니 2018년 겨울 도쿄에서 찍은 사진들이 보였다. 꽤 추워진 날씨에 도쿄를 걸었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저렴한 비즈니스호텔에 묵고, 지하철 요금을 아끼기 위해 대부분 걸어 다니며 온전히 느꼈던 도쿄의

거리와 사람들.

 이 책을 읽고 한 번쯤 소설에 나온 오래되었지만 잘 가꾸어진 일본 호텔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묶은 저렴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가꾸며 돌보는 그런 곳

돌멩이 하나도 애정을 주고 매일 가꾸면 빛이 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오잔호텔'의

색깔은 얼마나 따뜻할까? 그 안에서 즐기는 애프터눈티에서는 어떤 위로를 맏을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소설에서 주인공의 갈등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오후 3시, 오 잔 호텔로 오세요'에서의 갈등은 다른 소설처럼

극 박하거나 막장이거나 혹은 범죄는 아니지만 주인공에겐 넘어야 할 큰 산이었고 우리 모두 흔하게 겪는

일에서 시작한다.

정말로 오잔호텔에 취업을 하고 싶어 그것 하나만 바라보고 취업 뽀개기를 성공한 스즈네, 그럼에도 가고 싶은

애프터눈 티가 아닌 팀에서 일을 하다 임신을 한 선배가 자리를 비운 덕분에 꿈에 그리던 팀으로 이동하게 된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맡았다는 기쁨과 성과를 내고 싶다는 욕심에 의한 노력은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왜 그러는지 몰라도 이상하게 욕심을 내더라

오후 3시, 오잔호텔로 오세요 p27

 

스즈네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저주의 문장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를

소심하고 주늑들게 만든다. 그래, 그런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누구는 한두 번, 어떤 사람은 평생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응원하기보다 뒤에서 비난하고 헐뜯는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모두 다 알고 있는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런 사람들 비난하며 험담하는 것은

얼마나 쉽고 재미있는가?

예전 인터넷에 돌던 '쾌락'지수에 관한 조사에서 험담이 꽤 높은 점수라는 것에 놀란 적이 있다.

담배, 도박, 마약 만큼 끊기 힘든 게 뒷담회라고 말하던 회사의 누군가 생각난다.

스즈네를 중심으로 애프터눈 티에 근무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이야기는 다들 자신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숨긴 채 묵묵하게 살아간다.

영어 난독증이라는 콤플렉스를 숨기고 파티 시 에로 살아가는 다쓰야, 그레이존에 있다는 주문은 종종

그의 실력과 무관하게 그를 무능력하게 만들고 만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뛰어난 언어 능력과 접객 능력을 가진 스이린, 중국이란 유리장벽으로 정규직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이직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를 업그레이드한다. 비록 좋지 않은 꼼수를 썼더라도.

고전 과자를 만들었던 제법 진지했던 히데오의 과거나 파티족으로 하루하루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루디까지

각 구성원들의 이야기는 한 편이 짧은 드라마처럼 속이 옹골지게 꽉 차있다.

그중 가오리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었다. 얼마 전 나도 겪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능력 있고 인정받는 멋진 선배였던 가오리, 스즈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녀가

육아로 인해 다른 사람이 된 모습은 일 년 전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로 산후 도우미도 쓰지 못한 채 아이와 둘이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던 매일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절망은 차올라 아픈 젖가슴 보다 더욱 힘들었었다.

이미 지나친 과거이지만, 가오리가 마치 나인 것 같아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어졌다.


 

이야기를 전반에 걸친 애프터눈 티에 대한 역사, 구성, 먹는 방법까지 한 편의 애프터눈 가이드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이야기는 우리가 왜 애프터눈 티를 찾는가?에 대한 다양한 답을 보여준다.

자신은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한 면 밖에 보지 못한다 스이린이 본심을 숨김없이 털어놓았을 때부터 계속 그런 생각이 시달렸다

그러나 자신에게 유리한 면을 보는 것과 사물에 아름다운 면을 보는 것은 분명 다르다

가오리가 자신에게 좋은 선배고 스이린이 든든한 동료였던 것 또한 틀림없이 진실이다

오후 3시, 오잔호텔로 오세요 p27

스즈네가 성장이 돋보이는 이야기는 유리한 면을 보는 습관을 아름다운 면을 보는 것으로 치환하며

멋지게 마무리된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그녀가 기특했다.

어쩌면 우리는 솔직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옆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여 폄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올곧은 행동과 태도가, 바른 선택들이 나를 더욱 초라하게 하거나 비참하게 만들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즐겁게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교코와 그를 비웃으며 공격하는 여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아, 그렇구나 자신은 불행한데 누군가 그 불행을 탈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꼽구나 하는 인간의 단면을

보게 되었다.


 

과거 전쟁고아에서 범죄자로 이후에는 작은 공장을 꾸리는 평범한 할아버지로 늙어가는 시게루에게

과자는 "상" 이다. 그가 범죄자의 삶에서 평범한 세상으로 건너 올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준 달콤한.

그 달콤함은 그에게 어떠한 보상보다 귀하고 값진 것이었다.

그러한 경험은 스즈네를 애프터눈 티에 빠지게 하는 유년 시절의 바탕이 된다

과자는 상

과자가 상이라는 두 단어가 소설 전체를 말해준다고 생각이 들었다.

각자는 이야기를 거쳐 자신의 찾는 것들을 깨닫게 되고, 트라우마를 인정하며

과거 잊었던 가족들과 재회를 한다.

말끔하게 정리되는 이야기의 끝은 결국 해피엔딩이다.

좋다, 해피엔딩이라니! 따뜻한 오후 3시 아름다운 오잔호텔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분명 해피엔딩이 어울 릴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과자는 결코 필요불가결한 존재는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즐겁고 아름답다.

앞으로도 향기로운 차와 보석 같은 과자를 즐기는

애프터눈 티의 시간은 힘겨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에 색채를 더해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겉모양이 예쁜 가토나 귀여운 프티 푸르의 단맛을 돋보이게 하려면 짜디짠 소금 약간이나 씁쓸한 술이 소량 필요하다니,

세상은 이 얼마나 만만치 않단 말인가.

오후 3시, 오잔호텔로 오세요 p330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는 삶을 위해, 내 시간을 조금 비워두어야겠다.

사랑하는 가족, 그리운 친구 아니면 가장 친하게 지내야 하는 나를 위해

조만간 비싸도 좋으니 애프터눈 티를 온전히 즐기는 시간을 예약해야지.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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