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 이어령 산문집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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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다고 생각한 책장을 한 장 넘기는 순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책을 빨리 읽는 편이라 그 많은 책들을 거뜬하게 읽고 서평 활동도 지속할 수 있는데,

이 책은 뒷장에 누가 무거운 납덩어리를 붙여놓은 것처럼 넘기기가 어렵다.

바로 읽었던 문장들이 자꾸 머리에 남고, 입속에 거슬리어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

이어령 교수님의 글들은 대부분 그랬다.

쉽게 쓰인 글 같고 표현 같지만 어느 하나 무겁지 않은 것이 없다.

문장 하나를 지어내는데 가장 귀한 실을 골라 짜인 옷처럼 혹은 이불처럼

귀하다는 생각이 드는 글들이었다.

저자는 “내 개인의 신변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사적 체험이면서도 보편적인 우주를 담”은 이야기들로 “한 권의 책을 엮었으면 하는 생각”과

‘어머니의 귤’처럼 일부만 공개되었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의 “전문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소망을 위해

“여섯 살 때 ‘메멘토 모리’의 배경이 되는 고향 이야기를 담”아 이 책을 내놓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다.”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글을 쓴다는 것을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밤새 쓴 글들을 다음날 보면 부끄러워 과제로 제출하지 못한

날들도 있었다.

특히 정말 뛰어난 작품이나 문장을 만난 날들은 그 일들이 더욱 많아졌다.

이번에도 같은 마음이 들었다. 최근 꽤 많은 책들을 읽고 짧은 글을 남기며 스스로 세운 자만심과 자신감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하찮게 만들어진 내 단어들은 견고하게 쌓아올린 문장에 넋이 나갔고, 어느 하나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선명하게 그려지는 저자의 문장과 문단들에 부끄러워졌다.

글을 이런 사람들일 써야 하는구나.

우물이 깊어서 살짝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았는데 깊은 어둠이라서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찧는 기분!

 

감기에 걸려본 적이 없는 사람과 악수도 하지 않겠다는 저자는 감기를 통해 어머니와 사랑하는 이들의

관심과 따듯함을 그려낸다.

그냥 한 번 앓고 지나가는 감기라고 생각했는데, 감기는 살아가면서 꼭 지나쳐야 하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 안에는 밤새 뜨거워진 이미라를 식히는 분주한 어머니의 손이 있었다.

감기를 걸려본 사람만이 사랑을 알고, 배운다는 저자의 말에

아플 때마다 나를 끌어안고 밤새 등을 토닥여주던 어린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에게 받았던 사랑이 이런 것이겠구나, 좋은 옷, 신발 같은 것이 아니라

뜬 눈으로 어린아이의 열을 지켜 보가 새벽부터 직장에 나가던 엄마의 고단함

없는 살림에 몰래 바나나를 사와 앓고 있는 아이의 입에 넣어주던 미안함

그런 것들이 자꾸 떠올랐다.

 

사람의 기억은 부정확하다기 보다 무책임하다는 말,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에 얼마만큼의 진실이 담겨 있을까? 기억을 기록이라고 하지 못하는 것들은

선명하지 않고 정확하지 않아서 하지만.

그 기억이란 게 각자의 소망대로 바뀌어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을 만들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가위바위보를 하면 언제나 나는 나의 고향에 간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면 어린 시절 고향으로 돌아가는 저자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였을까?

10리만 걸어가면 갈 수 있는 외갓집이 있고, 그 외갓집에는 늙은 어머니의 어머니가 있는 곳.

한 살 더 먹는 아이가 불쌍한 아버지의 부성애는 두 개의 생일을 만들었고,

그렇게 저자는 삶의 모든 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리며 글로 나타낸다.

나의 문학은 어머니의 땅에서 탱자처럼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노랗게 노랗게, 그리고 둥글게 둥글게 나의 언어들이 울타리를 만들어간다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p229

 

탱자나무에서 9월에 열리는 탱자는 향기는 좋으나 그냥 먹기에 쓰고 시어, 즙을 내거나 말려 약재로 쓰인다.

설탕에 절여 음용하기도 한다.

그래, 탱자 같은 책이다. 어찌나 향긋한지 그 향에 반하지만 함부로 먹으려 드니 시고 쓰다.

쉽게 넘어가지 않은 글에 영양이 가득하다고 하니 나는 잘 말리어 필요할 때마다 약으로 쓰거나

달달한 설탕을 넣어 올여름 시원한 에이드로 먹어야겠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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