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 소녀가 소비하는 문화, 그 알려지지 않은 이면 이해하기
백설희.홍수민 지음 / 들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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즘은 책을 읽기 전 제목과 책에 대한 간략 소개를 보고 아, 이 책을 얼마나 걸리겠구나 하고 계획을 세워본다.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자기 계발서인지 혹은 인문서적인지 분야 중에 가장 오랜 시간을 예상한 것은 역시

사회 정치 분야이다.

배경지식이 부족하고 사회 정치 문제는 각자의 의견과 주장에 대한 입장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아 한 쪽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 책을 받아보고 첫 장을 열기 전까지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웬걸, 첫 장부터 너무나 쉽게 읽혀서 어어어 이게 아닌데? 하면서 술술술 읽어 나갔다.



디즈니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게임, 마법 소녀 애니메이션, 문학, 아이돌이라는

다섯 가지 대주제를 가지고 총 15가지 화두를 제시한다

각 주제별로 우리가 당연하게 누렸던 문화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저자가 던지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데,

이것이 참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른다.

일요일 아침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TV 앞에 앉았다. 디즈니 만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만화가 흔하지 않던 시대에 태어나서 즐길 수 있는 만화는 디즈니 시리즈와

머털도사, 배추도사와 무도사가 전부였던 것 같다.

조금 자라 고학년이 되고 중학교 올라갈 때쯤 세일러문이, 천사소녀 네티가, 웨딩피치가 한꺼번에

방영되었고 하교 후 한 편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런 의심 없이 보았던 만화영화들.

동화되어, 함께 꿈을 꾸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만나게 되니 새롭기도 하고

만화 속에 숨어 있는 이면을 알게 되어 씁쓸하기도 했다.

남자들에 만들어진 소녀 문화,

역사 속에서 여자들의 소외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경제에서 정치에서 역사에서 여자는 언제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대학시절 여성학을 교양으로 선택해 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배웠던 내용은

"제도와 관습 잘못된 관행에서 차별받고 소외 당한 여성에 대한 싸움"에 대한 것들이었다.

지금처럼 남자 vs 여자 싸움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남자로 바뀐 것이. 마치 누군가 이간질하듯이 교모하게 말이다.

놀이와 게임, 문학에서 소외 당한 여자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넓게 보면 이건 어린아이에 대한 문제라고 말한다.

저자는 어른들의 소비 대상으로 전략한 아이들의 문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철저하게 배제된 어린이들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약한 존재로서 소외 당한 그중에서 더욱 소수로 존재하는 소녀라는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놀라기도 했고 먹먹해지기도 했다.

왜, 세일러문이 변신을 할 때 알몸 실루엣으로 변하는지 다른 여자 주인공들의 옷들이 그렇게 짧은지

여자 주인공들은 마법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구하지 못하는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시장 페미니즘이란 간단히 말해 시장이 제공하는, 대중에게 ‘잘 팔리는’ 여성주의적 메시지입니다. 가부장제를 직접 공격하기보다는 자본주의를 포함한 현 체제에 도전하지 않는 개인적인 성공, 권력, 자율성에 중점을 두지요. 쉽고 단순하고 친절하고 부드러운 페미니즘. 이것이 바로 대중 친화적인 시장 페미니즘의 특징입니다.

시장 페미니즘은 여성주의적 메시지를 누구나 소비할 수 있고, 소비해야만 하는 하나의 브랜드로 재구축합니다. 물론 여성주의적 메시지는 널리 퍼질수록 좋지요. 그러나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소비되려면 여성주의의 예쁘지 않고, 매력이 떨어지며, 친근하지 못한 메시지들은 소거되어야 합니다. 인기가 많으려면 모나서는 안 되거든요.

_「세일러 문은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에서

지구를 구하고 더 나아가 우주를 구하는 남자 주인공 만화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의 소녀들은 동네 강아지를 구하거나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남성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여성 주인공의 존재는 물론 언제나 유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물들이 갖고 있는 위험성 또한 경계해야 합니다. 이 여성 인물들이 지닌 초현실성이 현실에 존재하는 성차별의 가림막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무수한 여성 영웅이 실존해왔음에도 성차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됩니다. _「소녀 영웅 뒤에 가려진 성차별의 그늘」에서

 


#잘못 그려지는 아동, 청소년 문화에 대한 생각

동화를 공부할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그 나이 때 내가 무엇을 고민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다.

현재 동화와 청소년 문학 또한 철저하게 어른들의 시선으로 쓰이고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 문화에 아이들이 없다니.

잉꼬 없는 붕어빵이고 고무줄 없는 팬티라니.

모든 것들의 결정권을 어른들이 갖고 흔들고 있다는 것이 생각해 본다.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무거운 내용을 끄집어 낸다.

휙 하고 단지 미끼를 문 물고기가 아주 묵직하여 잡기가 쉽지가 않다.

책을 읽고 나서도 여러 번 고민을 했다.

과연 내 아이에게 어떤 만화를 보여주고 어떤 색깔을 옷을 입혀야 하는지

혹은 자연스럽게 발레를 시켜야지 하는 내 생각조차도 사회가 만든 관념에 따라 결정한 것인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나보다 화장을 잘하는 초등학생들이 눈에 띈다.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만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화장품을 사고 화장을 하며 노는 것 또한 놀이처럼 만들어진

어린이들이 문화에서, 어른들이 만들어낸 애니메이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소름 끼치는 밤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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