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진 큐레이터입니다만
장서윤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2년 4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참 많은 직업이 있다. 창직의 시대, 하루에도 몇 십 개씩 모르는 직업들이 생겨난다

예전에는 한 분야의 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일들도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아마도 앞으로도 수많은 직업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몇 가지 되지 않을 것이고

그중에 내가 갖게 될 직업은 손에 꼽을 것이다.

그리고 큐레이터는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더욱 높을 것이다.

큐레이터 :『미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재정 확보, 유물 관리, 자료 전시, 홍보 활동 따위를 하는 사람.

아, 생각해 보니 큐레이터를 본 적이 있다.

국내 전시에서 한 번, 작품에 대한 배경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만났던 그 들은 굉장히 우하하고

지적이며 예술적으로 보였었다.

다들 잘 차려입고, 곧게 서서 작품을 설명할 때며 그 앞에서 대충 아무 옷이나 껴 입고 전시장에 간

내가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을 보다 한 만화가가 화가로 전향하며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나왔었다. 장면에서 큐레이터라는 분이 나왔고 잠시나마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있던 시기여서 더욱 반가운 내용이었다.

수많은 직업 중 큐레이터라니,

저자는 큐레이터 10년 차 경력자이다. 워낙 고 인력 정인봉 탓에 버티고 힘든 직군 중 하나

예술계가 배고프다는 말을 증명하듯, 큐레이터는 그들이 평생 드린 돈(예대 졸업, 유학 등)에 비해

형평 없는 취급을 당연시한다고 한다.

얼마나 낮은 연봉으로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최저임금에서 조금 벗어난 수준이라니

국내에서 예술에 대한 가치와 그 가치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웠다.

비단 예술가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 젊음에 대한 대가로 고생과 경험을 당연시하고 있다.

경력을 쌓아줄 테니 월급을 주지 않는다는 어느 패션계의 일화가 생각났다.

사람의 노동을, 젊음의 열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착취하는 기성세대들에게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고질적으로 내려오는 나 때도 그랬으니 당연하다!라는 말을 하지 마라

정말 비겁한 변명이다!

저자는 부유한 예술계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다른 출발선, 대부분 큐레이터 지망생들이 외국 석박사 하나쯤은 가지고 있고 유명 박물과 미술관 경험을 가지고 있어

싸우기엔 불리한 위치.

그래서 열심히 했다고. 불평불만 시간조차도 아까워 노력을 하다 보니 10년이란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가끔 이런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

솔직하고 간혹 직설적이지만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뒷말을 싫어하며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나는 정말로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작가와 친구가 하고 싶을 정도로!)

반듯하고 올바른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 저자의 생각들이 모두가 버티면 힘들다고 하는 큐레이터 세계에서

살아남게 하고 이제는 꽤 괜찮은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주게 하였다.

꽤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삼십 대 초반, 하던 일을 모두 버리고 잠시 해외봉사단 교관 일을 했었다

그 일도 만만치 않았다. 아마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다른 봉사단원 때문에 힘들어할 때, 시니어 단원이었던 교장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 교관님, 올바르게 산 사람들은 언젠간 그 살아온 세월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되어있어요. 그게 언제일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래도 올바르게 살고 있다면 괜찮은 거예요. 교관님은 지금처럼 살다 보면 더욱 좋아질 거예요.

얼마나 감사한 말이었던지 십 년이 지난 지금도,

태국의 눅눅한 저녁 식당가에 앉아 다소 김이 빠진 맥주를 앞에 두고 나누던 이야기가 생생하게 생각나다.

아직은 그 삶에 대한 보상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후퇴하는 길을 걷고 있지 않으니 꽤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저자를 보며 교장 선생님이 해주신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생각이 올바르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사는 모습은 이렇게 보이겠구나.

굳이 남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닌 게 이렇게 멋지구나!라는 것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건 그가 걸친 옷가지나 액세서리가 아니라 언행과 태도이다.

책을 통해 작가를 만나게 될 때면 이 작가는 평소에 이런 말투겠구나 하고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작가의 생각이 깊이는 이 정도겠구나 하고.

아직 마흔이 아닌 젊은 작가이지만 문장에 담겨 있는 깊이는 꽤 깊다.

문장도 쉽게 쓰였지만 재미있다.

재미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에, 오랜 시간 고민한 흔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가 더욱 맘에 들었던 건 열려있는 종교관


난 천주교 신자이지만 절에서 108배를 즐겨 하고, 가끔 교회에 초대받아 즐겁게 찬송을 부른다.

내가 믿는 신은 마음이 넓어 이런 나를 충분히 이해해 줄 것이라 믿는다.

저자 또한 개신교 신자였지만 마음공부를 하다고 불교에 빠져들고, 결국 비구니?까지 결심했다고 한다.

멋지지 않은가!

불교의 가르침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이,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백하고 진실해서

읽는 데에 편안함이 느껴졌다.

명함에 꼭 큐레이터라고 적혀 있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 이란 늘 바뀐다. 어디선가 나를 필요로 하면 고마운 일이고, 나는 그 일을 하며 즐거울 수 있으면 된다. 그렇게 '걸림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앞으로도 꼭 큐레이터 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산속 조용한 사찰 영단에 내 위패에는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이제 피곤하니 쉴래' 라고 적어 달라야지.

나 만나러 온 사람은 하겐다즈 마카다이마 맛 사다줘요

아직까진 큐레이터입니다만 p237

자기의 만나러 온 사람들에게 '하겐다즈 마카다미아 맛'을 요구하는 유쾌한 모습이

그녀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굳이 큐레이터에 대해 말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84년생, 미술을 전공했고 척척석사를 졸업했으며 아직도 미혼인 동물을 사랑하는

내 친구의 이웃의 혹은 건너 건너 알고 있는 사람의 스토리이다.

익숙하지만 조금은 신선하고, 통통튀는 그런 하루들이 참 반갑다.

많은 사람들이 있고, 내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지금 살면서 만났던 사람보다

더 적을 것 같다.

책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책을 읽는 다른 이유가 아닐까?

이번에 만났던 사람은 더욱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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