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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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을 집어본다. 마흔이 되어서도 영 서툴다.

나의 젓가락질을 본 어른들은 항상 한마디씩 했다.

- 얘, 무슨 젓가락질을 그렇게 하니?

젓가락질 잘 해야만 밥 잘 먹느냐의 유행가가 있듯이, 젓가락질 잘 못해도 밥 먹는데 문제는 없다.

다만 콩이나 작은 것들을 들기 좀 불편하고, 음식을 자주 흘리는 단점이 있지만

사는데 전혀 지장은 없었다. 지금까지

오히려 젓가락질을 타박하는 꼰대 같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종종 가지게 되었다.

젓가락질이 사는데 무슨 문제라는 말이냐, 그거 잘한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상을 주는 것도 아는데!라는 생각으로 젓가락질을 제대로 배울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청주 축제에서 젓가락 대회를 했다니, 나 같은 사람은 참가는 꿈도 못 꾸겠지)

#한국인 이야기, 젓가락을 통해 보는 한국

너 누구니는 이어령 교수의 유작으로 한국인 시리즈 중 두 번째 책이다. 암 투병 중에도 '한국인의 문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사투에 대한 결과가 이 책이다.

두 번째 '너 누구니'라는 젓가락에 관한 이야기이다.

젓가락? 방금 컵라면을 먹을 때 조금 불은 라면을 들어 올린 내 손에 있던 그 젓가락?

저자의 이야기를 듣기 전 누구든 한 번 이상 품었을 궁금증은 왜 하필 젓가락이라는 것이다.

너무나 흔해서 그것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대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젓가락을 쓰는 나라가 한국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시아 모두 젓가락을 사용해서 음식을 먹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갖기 마련.

그럼에도 저자는 젓가락을 선택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면 아주 오랜 시간부터 함께 했고, 그 모양과 쓰임이 변하지 않았으며, 현재에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철학. 그 신념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젓가락이었다.

#젓가락에 대한 A to Z

젓가락 하나로 한 권의 책이 나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 책이 지루하지 않다는 것과

모든 내용들이 하나의 진리를 품어서 가락가락 펼쳐진다는 것.

젓가락의 사전적 의미, 역사적 고찰, 현대인의 변화, 서양과 동양의 젓가락에 대한 견해 차이까지

우리에게 흔해서 이것이 과연 문화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그것이 시대를 아우를 수 있고 이어지는 문화였다는

저자의 설명은 읽을수록 재미있다.

#젓가락은 가장 확실한 문화 유전자

우리 조상이 쌀밥 먹고 국수 먹을 때부터, 우리도 모르게 전승돼 내려오면서 학습된 나의 문화이다.

책 전반에 계속 되어온 말은 젓가락이 서양과 구분되는 학습된 문화로서 우리를 만들고 채운다.

소설가 펄 벅은 동양인이 젓가락질하는 걸 보면, 나비가 나는 것처럼 아름답다고 했다. 그 아름다운 문화 유전자, 다섯 손가락이 협력해서 공동체를 만들고, 그 네트워킹을 통해서 한낱 두 개의 막대기에 불과한 젓가락을, 섬세한 신경을 가진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젓가락의 신화가 지금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엄지 고개」중에서

너 누구니

#젓가락 행진곡이 없는 나라

우리가 한국인의 역사를 말할 때 떠올리는 대표적인 것들에 젓가락은 없었던 것 같다. 의식주 중 인간의 문명을 탄생하게 하고,

진화하게 한 음식에 대한 문화 중에 젓가락은 논한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사용할 물건이어서

그것이 얼마나 오랜 시간 역사를 품고 왔는지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라는 것은 왜인지 현재와 동떨어져 있는 과거에 머물고 있는 것들이란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피아노로 경험해 봤을 젓가락 행진곡은 서양의 피아노곡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젓가락 행진곡을

작곡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란 노래가 있지 않은가?

 

#가정교육의 끝은 젓가락질에서 보인다.

가정교육, 밥상머리 교육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내 젓가락질은 정말로 형편이 없다.

가끔 중요한 자리에서 밥을 먹을 때면 부끄러운 적도 있지만, 제대로 배울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예전에는 꽤 많은 지적을 받았던 것 같은데 이젠 주변에서도 젓가락질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흔하지 않다.

아이들일 젓가락을 잘 사용하지 않은 것 또한 흉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자는 가정교육은 밥상머리에서 시작하며 밥상머리 교육은 결국은 젓가락질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딸이 시댁에서 흉이 잡힐까 결혼 전 호되게 젓가락질을

다시 가르쳤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참 어르신이 보수적이구나 생각했는데,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친구 아버지의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젓가락은 임이다.

결혼식 축의에 대한 답례품으로 수저세트를 받았다. 처음에는 먹지도 못하는 것을 왜 주는지

의아했다. 책을 읽고 다시 꺼내보니 유기로 만들어진 수저세트가 묵직했다.

날카로운 곳 없이 잘 만들어진 수저가 집에서 쓰는 저렴한 것과 비교되었다.

좋은 수저에 식사를 하면 괜히 대접받는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했다.

#젓가락 이야기이지만 젓가락이 아니다.

꼭 젓가락일 필요는 없다. 저자는 젓가락을 통해 우리의 우수한 문화와 한국인의 밈, 문화유산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젓가락은 가장 흔한 것을 대표하는 상징물일 뿐이다.

우리의 유산은 국보 1호, 보물 1호가 아닌 꼬부랑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늘 곁에서 맴돌고 있어

중요하다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국난극복이 취미이자 특기인 한국인

재미있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한국인의 종의 특징은 '국난극복'이라는 것이다.

동학 농민혁명 때도, IMF 금 모으기,

기름유출 사건 등 나라의 국난이 찾아올 때마다 한국인은 제일 먼저 달라나간다고 한다.

뿌듯하고 뭉클해진다.

한국인에게 정이 사라졌다고 한탄하는 어른들이 있다. 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변한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관계가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서로에게 베풀던 관심의 거리가 달라진 것뿐이다.

요즘은 아이들은 가치를 중요시하고, 환경을 생각하여 소비한다. 돈줄 내기를 좋아하고 불의를 보면

인터넷으로 싸운다. 아이들에게 정이란 가치의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책을 읽고 우리의 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젓가락을 통해 고대부터 이어져온 한국인의 문화가 현재 어떻게 우리를 움직이고 살아가게 하는 지도

너 누구니?

난 한국인이다. 젓가락질은 서툴지만, 밥상에 둘러앉아 누군가와 밥을 먹는 것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인 내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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