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6학년때까지는 정말 정신없이 놀았던것 같다.

놀았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도 잊고, 동네아이들과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기에 바빴던것 같다.

바뀌는 계절에 따라 놀이도 달라지고 했었지만 요즘처럼 컴퓨터가 있었던것도 아니고, 동네에는 과자 사먹을 조그마한 구멍가게도 없었지만,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모든산천을 우리는 놀이터를 삼아 실증내지 않고 부단히도 놀았었다.

구슬치기부터 딱지치지,연날리기, 썰매타기, 숨밖꼭질,전쟁놀이 화약터트리기,얼음지치기,수영하기,고기잡기,낙시하기,전쟁놀이하기,소꼽질하기,땅다먹기,고무줄놀이,장기하기,바둑하기,탁구치기,자치기,그네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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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쩍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기란 여간 쉽지가 않았던것 같다.

결코 시장가는 길엔 나를 데려가지 않으셨던 것이였다.

왜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어른걸음으로도 40분도 넘는 길을 걸어야 했고 거기서 또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시장길이 서너살 먹은 어린아이에게는 고생길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일것이다, 거기다가 시장을 보고 돌아오는길엔 어김없이 머리에 양손엔 시장 봇다리들이 한가득했을테니...

이제는 신작로가 반듯하게 새로 나서, 택시라도 타고 올 수 있겠지만- 물론 그땐  택시가 다닌다고 해도 택시를 타고 오는 사람은 없었을것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 -아니, 없기때문에.

그렇기에 따라가겠다고 울며불며 투정을 부리는 자식을 떼어놓고 갈수 밖에 없었을텐데 철없던 나는 어머니가 시장가실때 마다 매번 따라 가겠다고 때를 쓰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명절빔을 사서 입혀야 한다거나, 머리를 깍아야할때는 고생길이였어도 꼭 데리고 가시곤 하셨다.

 내일 장에 간다는 소리엔 혹, 어머니 손을  놓처 미아가 되진 않을까 하는걱정 아닌 걱정을 하면서도 매일 보는 산, 매일 보는 들,매일 맡는 냄새가 아닌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물건들,그것들-새로운것 들을 볼 수 있다는것만로도 기대감에 얼마나 흥분을 했었던지.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랑까지 하곤 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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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백마탄생 10일전이다.

오늘 계약을 끝냈다.





그럼? 10일뒤엔 백마탄왕자가 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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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아버님 돌아가시고 10여년을 혼자 힘들게 농사를 지으시면서도, 힘드시다는 말씀 한번 없던 어머님...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당신도 어쩔수가 없으셨는지 힘들다는 말씀을 막내아들에게 조심스레하신다.

문밖에선 가을비가 주적주적 내리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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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속 운문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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