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3월 말에 시카고에 와서 애들도 아무데도 안가고, 아는 사람도 없고 어찌나 심심하고 외
롭던지 하나 아는 남편 선배 부인을 졸라 그녀가 하고 있는 애들 놀이 모임의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소개받아서 친해지고 한 뒤에 겨우 그 놀이 모임에 들어갔습니다. 뭐 텃세가 있거나 한 건 아니고
이미 사람이 많아서 너무 번잡했거든요. 엄마 6명에 애 8명인 상황이니 앉을 데도 없고 해서 더 이
상 낄 자리가 없긴했죠. 그런데 그 모임 사람들이 하나는 박사과정 공부 시작하고, 하나는 석사 시
작하고, 하나는 한국가고, 하나는 애가 학교 들어가서 빠지고 그러더니 사람이 줄더라고요. 그 모
임은 다른 사람을 2명 더 충원했는데, 저는 이사한 이후 이 아파트에서 다른 놀이 모임을 하나 더
가졌더랬습니다. 둘째 아들과 나이가 같은 애 2명이 이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그렇게 셋이서 다른
날 놀이 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남편이 선후배이고, 엄마들도 서로 친해서 그 집
의 애들도 서로 매우 잘 노는 경우였습니다. 그런데 거기 우리 아들이 끼게 된 것이었습니다. 다른
집 아이중 여자애는 괜찮았는데 남자애는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우리 아들을 견제하더군요. 여자애
집에 놀러가서 그 애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그건 현지거라면서 우리 아들은 못 만지게 하고, 자기
집에 놀러가도 자기 장난감도 못 꺼내게 하고, 그럴때마다 그 남자애의 엄마는 그런데 자기 아들을
나무라지 않더군요. 심지어 저희집에 와서도 우리 애는 배제하고 자기 둘끼리 놀아서 우리 아들이
'엄마, 성욱이가 나는 하지 말래' 하고 말해도 못 들었는지 어쩐지 한마디 말이 없더라고요. 그때마
다 저는 모르겠거니 하면서 제 아들을 달랬습니다. 남의 애들 그 부모가 가만히 있는데 제가 나서
서 나무래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놀이터에서 밀고 가도 '몰랐나봐' 하고 우리 애를 달래기를 수차
례, 저도 지난주에는 드디어 좀 화가 나서 '너 한번만 더 그래봐라' 하고 벼르고(?) 있던 참이었습
니다. 지난주에는 그 남자애가 저희 집에서 놀이용 찰흙- 황토색 아니고 색색의 점토-을 가지고 놀
고 있는데 그 엄마가 그런 자기 아들을 보며 말하더라고요. 여기서 찰흙을 잘 가지고 놀아서 사줄
까 물었더니 자기 아들이 집이 더러워져서 싫다고 했다고요. 아니, 남의 집에 와서 찰흙 갖고 노는
자기 아들 보면서 그게 할 소리랍니까? 기가 막혔지만 가만히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 그 남자애
집에서 놀 차례가 되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처음엔 잘 노는가 싶더니 이내 그 여자애랑 둘이 방 안
침대 위에서 놀고 제 아들을 침대 위로 못 오게 했습니다. 화가 난 아들이 문을 치면서 울어서 제가
가 봤더니 그 애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더군요. 제 아들이 나쁘다고. 왜 나쁘냐고 묻는 제게 방문
을 두드려서 나쁘대요. 왜 그게 나쁘냐고 물으니 말은 안하고, 그럼 우리 애가 왜 문을 두드렸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자기들끼리 놀고 싶다고, 제 아들은 가라고 하더군요. 그럼 너희도 아줌마 집에
안오고 책도 안 빌려가고 그럴거니 하고 물으니 태연하게 '응' 이라고 하더군요. 제 아들에게 너는
그럼 다른 친구랑 놀자고 했더니 제 아들은 싫다면서 울고 - 이 동네 애 있는 한국 사람이 그리 많
지 않은데다 나이까지 따져보면 한 5~6집 밖에 안되거든요- 말입니다. 그러면서 '울면 산타 할아
버지가 선물 안주신다'는 노래까지 부르더군요. 제가 너가 그렇게 친구랑 사이좋게 안놀면 산타할
아버지가 선물을 주실까 하고 물었더니 '선물 줘' 하더군요.그 두 엄마가 와서는 상황을 파악했어
요. 여자애의 엄마는 자기 애보고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친구를 따돌리고 노는것은 나쁜 행동이라
고 말하면서 억지로라도 사과하게 했으나, 남자애의 엄마는 그냥 무심히 넘어가면서 아무 일도 없
었던 양 자기 애보고 '칼싸움하고 놀아' 하더군요. 미안하다고 사과하게 하지 않고요.
그제야 알았지요. 어쩜 여태까지 그 엄마는 자기 애의 잘못을 몰랐던게 아니라 알면서도 가만히 있
었을지도 모른다고. 큰 소리 내지 않고 항상 조근조근해서 사람은 괜찮은데 왜 자기 아들이 남한테
그러는걸 모르나? 하고 생각했던 제 의문이 바로 풀리는 순간이었죠. 그 엄마의 교육방침이 뭔지
는 모르겠지만, 소리치지 않고 우아하게 사는 것인지, 아니면 여럿 앞에서는 혼내지 않고 나중에
따로 조용히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제 생각에 그건 아닌것 같습니다. 잘못했으면 그 즉시 혼
내야 한다고 교육학자들도 말하고 있고-나중엔 애가 자기 잘못을 잊어버리니까-, 남 앞에서 혼내
는게 싫으면 방에 데리고 가서 혼내거나 할 수도 있는 것인데 말예요. 그 엄마는 자기 아들이 야무
지고 -나쁘게 말하면 약았지요- 똑똑하니 혼 내기도 싫고 혼 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나봅니다. 더
이상 말하기도 싫어 대충 있다가 시간 되어서 나오면서 생각했지요. 적당한 핑계를 대서 다음주부
터 빠져야겠다고. 주말에도 놀러도 같이 가는 두 가족이니 애들이 당연히 다른애가 끼면 서먹하겠
지요. 그러나 따돌리는 것을 제재하지도 않고 -어쩜 그 엄마는 생각하겠죠. 우리 애가 그럴만하니
까 자기 애가 안 끼워주고 안 논다고. 그래요. 우리 애가 문제인가보죠- 그냥 놔두는 엄마라면 이
제 더이상은 할 얘기가 없는것이지요. 겨우 한국나이 4살짜리들인데! 그럼 그 두 집이 잘 노는데
저는 왜 같이 놀았는지 모르겠어요. 도서관보다도 많은 책을 빌리려는 욕심이었는지 뭔지는 모르
겠지만 책은 앞으로도 빌려줄 생각입니다. 이런 일로 책까지 안 빌려주면 얼마나 욕하겠어요? 저
도 그렇게까지 치사스럽게 하고 싶지는 않고요. 다만 앞으로 별로 얼굴은 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 드네요. 이젠 별로 외롭지 않습니다. 그냥 혼자 노는게 좋겠어요. 아니면 애나 저나 영어를 열나
배워서 미국애랑 놀이 모임하고 놀던가!
정말로 꿀꿀한 하루네요.
-참, 그 엄마는 미국에서 뼈를 묻을 생각인지 자기 아들이 어른인 제게 반말해도 존대말쓰라고 가
르치지도 않더군요. 존대말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한국에서 살려면 알아야하잖아요. 저는 애들에
게 꼭 시정해주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