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은희경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였)다" 로 시작되는 김중혁의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 내게도 그러했다.

"은희경은 하나의 장르다. 그녀의 소설은 충분히 지적이었지만 거기에는 소위 지식인소설의 엄숙과 푼계가 없었다. 한국소설이 으레 운명처럼 끌고 다닌 눅눅한 감상이 탈수된 자리에 그녀가 복권한 것은 통쾌한 산문정신이었다" 라는 신형철씨의 해설에는 더욱 더 공감한다.  대부분의 은희경의 팬들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을 콕 집어 말해준 것 같다.

'냉소' 와 '위악'으로 가득찬 소녀 진희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감히 내가 스물을 넘어선 나이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삶의 진실을 어린 소녀 진희는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새의 선물" 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통해 그녀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단편집들도 충분히 좋았다. 하지만 "마이너리그"를 보고는 영 아니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녀의 책에 손길이 가지 않았었다.

흠모해마지 않는 분이 선물해 주신 이번 새 소설집에서 그녀는 훨씬 더 여유로와지고 편안해진 듯 보였다. 여전히 그녀의 도시적 감수성과 재치는 빛나고 있었고, 인물을 파악하는 눈썰미도, 적재적소에 배치해놓은 음악도 멋있었다.

6편의 수록작품 중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의심을 찬양함' 이다.  어디까지가 삶의 우연이고 계획일까? 우리의 편견을 우습게도 비웃어버리는 그녀의 재기는 너무도 발랄하다. 그래, 우리는 사실을 보는게 아니고 우리가 보고싶어하는 사실만을 본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너무 쉽게 믿어버린다. 하지만 한번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어쩜 그것은 거짓으로 가득찬, 우리가 그냥 속아버리고 싶은 사실일 것이다. 우연? 운명? 그녀의 냉소는 비록 강도는 달라졌을지 몰라도 여전하다. 그리고 나는 내게 없는 그녀의 냉소가 너무도 부럽고 멋있다.

"지도 중독"의 P선배는 말한다. "인간이든 곰이든 마찬가지야. 친구가 되려고 하면 안돼. 타인으로 대하는게 서로 살아남는 길이야"  

그래. 타인으로 대하는 것이 서로 살아남는 길일 것이다. 가족이 가까운 남인 것처럼 모두가 모두에게 타인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그래. 그리고 나는 조용히 타인에게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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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2 09: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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