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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평점 :
수년전 서경식씨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 를 읽고 참 좋았던 기억은 있으나 서경식씨의 다음 작품으로 손길이 가기까지는 이렇게 오래 걸렸다. 그런데 읽고 난 느낌은 정말 너무도 가슴이 아리고 그러면서도 너무나 아름다운 글이구나, 삶이구나,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어쩜 이 형제들은 이렇게도 나를 매료시키는 것일까? 서준식씨의 옥중수고를 읽고 이렇게 고결하고 강직한 인품의 소유자가 있다니 하고 감동했는데 -나같은 속물이 어찌 그 발치라도 따라갈까- 서경식씨의 이 책은 또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일본의 재일조선인 차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책의 글귀에서 보면 재일조선인은 명문대를 나와도 국립대학교에는 자리를 얻을 수 없는 등 많은 제약이 있는 것 같다. 더구나 두 형을 감옥에 사상범으로 보낸 서경식씨가 일본에서 자리 잡기란 매우 힘들었던가 보다. -지금은 그가 대학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요즘은 규제가 덜한지, 사립학교라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차별속에서 조국에 대해 알고자 한국으로 유학을 택한 서승과 서준식 형제는 조국에 의해 간첩으로 몰리고, 환대는 커녕 오히려 일본에서보다 더 큰 차별과 핍박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더구나 서준식씨는 7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보안관찰법으로 인해 17년을 복역한다. 이 말도 안되는 조국의 횡포라니!!!
작은형과 막내형과의 성장기의 추억들 -서준식씨의 옥중수고에는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가 매우 많고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서경식씨의 이 책에는 여동생에 대한 언급은 없다- 과 글을 모르는 어머니에 대한 회고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그냥 보통의 어머니, 특별한 게 아닌 그저 보통의 일본인 어머니였으면 하고 어렸을 적 바랬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는 어찌나 뭉클하던지!!! 어렸을 적에는 누구나 그런 바램이 있었을 것이다. 너만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에 겁이 나면서도 한편 그게 사실이어서 더 멋진 어떤 존재가 나를 데리러 오길 바라는 그런 바램...
어렸을 때부터 무척이나 많은 책을 읽은 서경식씨는 그 머릿속에 든 생각만큼이나 글이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그 글에 배여있는 뭐랄까 우울은 아닌 그런 처연한 감정은 정말이지 그 글에 너무도 잔잔히 잘 드러나 있다. 그가 인용한 에리히 케스트너의 말을 나도 인용하고 싶다.
"어째서 어른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의 일을 그렇게도 새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아이들도 때로는 지극히 애처로운, 가엾고 불행한 존재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변해버리는 것일까요? (...) 아이들의 눈물은 결코 어른들의 눈물보다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그보다 무거울 수도 있다는 말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서경식씨는 말한다. 어른의 눈물을 아는 자가 아이의 눈물은 안다고, 아이의 눈물을 이해하는 자가 어른의 눈물까지 이해하는 것이라고. 나는 드러나지 않는 서경식씨의 눈물을 이 책속에서 본 것 같다. 그리고 나 역시 눈물을 흘린다.
재중동포를 왜 조선족이라고 부르냐는 누군가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우리는 과연 그토록-서승과 서준식 형제를 포함한- 조국을 갈망하고 -그것이 현재 존재하는 곳에서의 차별에 기인할지라도- 사랑하는가? 조국에 대해 알고싶어 조국행을 감행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행한 행동은 무엇인가? 우리는 재일동포를, 재중동포를 차별없이 대하고 받아들일 수 있나? 나 역시 그럴 자신이 없기에 서경식씨의 글은 더욱 슬프다. 처연한 아름다움... 그리고 나에 대한 실망감... 그들은 왜 그곳에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더 슬프게도 이곳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가?
별 다섯개로는 도저히 이 책이 주는 느낌을 표현할 수 없다. 별로는 모자라다. 우주로도 모자라다. 나는 이들 형제를 정말이지 깊이 사랑한다. 이들은 내게 있어 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