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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은희경을 알게 된 것은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중고교때부터도 원래 시험기간에도 머리를 식힌다는 핑계로 소설에 빠져있던 내가 취업준비때라고 달라질 수는 없었다. 매일 보는 지겨운 수험서대신 나는 머리를 식힌다는 핑계로 그 때도 역시 소설책을 보곤 했는데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내 손에 걸린 책이 "새의 선물"이었다. 이미 출판된지 좀 지난 책이었는데 얼마나 재밌었던지 정말 그 지겨운 수험서가 내 손에 다시 걸릴 수가 없었다. 단숨에 읽어나간 그 책은 내게 은희경이라는 새로운 우상을 선사했고, 그 후 이 책의 신문광고를 보고 나는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은희경이라는 작가에 대한 신뢰도 물론이거니와 당시 신문 광고에 실린 이 책의 인용구들이 너무도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신문광고에 실린 인용구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이 인용구였던 것 같다.
"결혼을 두 번이나 할 생각은 없어. 내겐 결혼 생활이 안 맞아"
"나하고는 안 해봤잖아"
"다른 여자하고 애. 그런 다음 나하고 몰래 만나면 되잖아. 우린 괜찮은 내연 관계가 될거야"
"농담 아냐"
"부탁이야. 내겐 농담만 해 줘"
"사랑해"
"그래, 정말 좋은 농담이야"
나는 왜 그리 이 책에 끌렸을까. 사랑에 연연해하고 사람에 끌려다니며 혼자 아파하고 상처받는 내가 싫어서였을까? 이렇게 쿨한, 냉소적인 태도를 나도 지니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애정결핍으로 인해 자아존중감이 약해서 이렇게 강한 태도를 지닌 사람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던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진희가 좋다. 그리고 그녀의 삶이 아프다. 현석과의 사랑을, 결혼을 거절하고 학교에서도 내쫒긴 그녀의 그 후가 어떻게 될 지가 너무도 염려된다.
' 건조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다혈질인지도 모른다.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아무리 집착해도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 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책의 서두에 있는 이 문단이 너무도 와닿는다. 그리고 소제목들이 어쩜 그리도 상황에 딱 맞게 지어졌는지, 이혼녀 진희가 임신을 확인한 단락의 소제목은 "진입 금지와 갓길없음" 이다. 그 아이에게는 두 가지 선택뿐이라며.
진희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 내내 나를 아프게, 공감하게 했던 책. 어느 인터넷 싸이트의 서평에 엄청난 혹평이 있는걸 보고 그 사람은 고통없이 살았나보구나, 이런 진희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생각하게 했던 책. 은희경씨의 모든 책을 좋아하진 않지만 "새의 선물"과 함께 나를 은희경씨의 흠모자로 만든 책. 승승장구하는 인생들은 어쩜 이해하지 못할 책인지도 모르지만 적절한 묘사와 뛰어난 비유가 진희의 쓸쓸한 인생을 그나마 맛깔스레 덮어주는 책. 이 책에 영원한 애정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