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ji 2005-01-18
아침부터 서울에 눈이 왔다고, 전화가 불이 났었다. 거기도 오냐고, 내가 있는 곳도 오냐고, 묻는 이들. 하지만, 내가 사는 이 곳은 눈은 커녕, 아침나절에는 햇빛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을 정도로 빤짝였지.
그러다가, 오후가 되니, 날이 흐려지고, 비가 조금씩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더플코트의 모자까지 푹 뒤집어 쓰고서 집으로 왔지. 아, 오늘은 오랜만에 동네를 걸었거든. 날은 안 추웠는데, 흐린 날씨 때문인지, 겨울비때문인지, 조금 떨었던가 싶어.
리뷰도 읽고, 페이퍼도 읽고, 읽으면서 비죽 웃고, 추천도 하고, 그렇게 당신의 서재에서 시간을 보냈어. 당신이 다시 서재를 기웃거려서 나는 참 반가워. 마치 오래 집을 비워둔 이웃이 돌아와, 그동안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그런 아줌마가 된 기분. 아, 이웃하니까 생각이 난다.
요즘의 나는 무척 예민해져 있었어. 윗집의 아이들이 너무 신나게 뛰어다니느라, 하루종일 쿵쿵쿵쿵, 내 머릿속도 그 소리에 따라서 쿵쿵쿵쿵 난리였거든. 아이들이 있는 집은 그러니까(나와 진만군이 어렸을 때도 종종 그래서 아랫집 아줌마가 쪼르륵 올라와 엄마에게 훈계를 하던 모습이 생생하기도 하고), 게다 요즘 겨울방학이니, 추운데 나가지도 못하는 아이들일테니 어쩔 수 없겠거니,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윗집 아주머니가 먼저 양해를 구했던 몇 번의 기억들 때문에 참으려고 했는데, 정말 오늘은 못 참을 지경이었던 거지.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올라갔어. 현관 밖에까지 우렁차게 울리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쿵쾅쿵쾅 발소리, 벨을 몇 번이나 눌렀는데도 못 듣고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무튼, 현관문을 두드리고서야 그 주인공을 만났지 뭐야. 집에 엄마는 안 계시고, 친구 한 명과 놀고 있던 4학년 남자 아이였어. 아, 눈이 참 큰 아이였는데, 아랫집 아줌마라니까 벌써 미안한 표정이야. 아줌마가 놀라서,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려고 왔으니까, 아줌마 소원도 좀 들어줘- 그랬더니, 아이가 끄덕끄덕 살짝 웃으면서 고개짓을 해. 그랬더니, 정말, 하루종일 너무 조용한 실내가 된 것이지. 아, 진작에 그렇게 부탁을 할걸.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뭐랄까, 혹시, 아줌마의 방문,으로 아이가 기가 죽지는 않았을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는 또 그런 생각을 하루종일 했네. '이야, 그래도 너는 참 씩씩한 아이구나. 아줌마가 다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는 말을 해주었으면 더 좋았겠구나, 하는 생각 말이지. 아무튼, 아이가 진심어린 미안한 표정(어른들은 왜 그런 표정을 참 잘 읽지), 그리고 살짝 지어주는 미소(죄송하다,라는 스스로의 반성에 의한 그런 먹쩍은 웃음 말이야)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한 것 같아. 그리고, 잠시 당신 생각이 났어. 그랬다고.
아무튼, 내가 있는 곳은 눈이 안 왔지만, 언젠가는 오겠지. 원래 눈이 많은 지역이라는데, 올 해는 정말 내리는 눈을 보질 못했다. 겨울 가뭄도 걱정이고. 이러다가 덜컥 봄이라도 오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말이지.
아무튼, 오즈마, 당신의 서재에 놀러와서 나는 참 좋다. 너무 빈 집으로 만들어 놓지 말어. 도둑 들지 모르잖아. 뭐, 내가 호시탐탐 당신의 훌륭한 이웃이 되어, 당신 집을 함께 지키긴 했지만 말이지-
또 봐, 오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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