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골의 꿈 - 전2권 세트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추젠지 아키히코와 친구들이 돌아왔다. 전작 <망량의 상자>에 이어 꼬박 1년은 흐른 것 같은데, 이렇게 <광골의 꿈>을 쥐고보니 그 오래된 기다림은 다시금 만족으로 바뀌었다. 작가 교고쿠 나츠히코의 '교고쿠도' 이야기는 이제 신작이 나올 때마다 한일 양국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인기 시리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고쿠 나츠히코는 원래 디자이너였는데, 묘하게도 요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사람이 요괴를 좋아한다니 철없다고 꾸짖지 마시기 바란다. 기독교나 천주교, 불교 등의 거대 종교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일본 사회에서는 아직도 생활 곳곳에서 요괴의 존재를 발견하고, 인정하고, 전통 문화의 한 분야로 연구한다고 한다. 전통 요괴라야 기껏 도깨비 정도만 생각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일본만의 고유한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고쿠 나츠히코는 1994년 아이를 낳다 죽은 어미의 한이 요괴로 변한다는 '우부메'라는 전통 요괴를 소재로 한 <우부메의 여름>이라는 작품을 직접 출판사로 들고갔고, 이내 작품의 진가를 알아본 출판사 측에서 출간하여 숱한 화제를 뿌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고서점 '교고쿠도'의 주인이자, 인간에게 들러붙은 요괴를 떼어내는 퇴마사인 추젠지 아키히코와 그의 독특한 친구들이 활약하는 이야기는 현재 9편의 시리즈로 이어져 작가 '교고쿠 현상'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가 현재진행중이다. 또한 교고쿠 나츠히코는 제2작 <망량의 상자>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속, 항간에 들리는 기이한 이야기>로 나오키상을 탈 정도로 평단의 절찬, 동료작가의 인정, 그리고 작가로서 가장 행복한 독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작가다.

 

작품에서 즐겨 요괴를 소재로 하기에, 아직도 요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일본에서 그의 작품들이 인기가 많은 건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우부메니 '망량'이니 '광골'이나 하는 일본 요괴를 전혀 모르는 한국에서도 팬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알아두어야 할 것은 교고쿠 작품의 제재가 요괴라고는 하지만 실제 요괴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작품에서는 요괴를 모티브로 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탐정격인 추젠지 아키히코가 그 기이한 일들을 '논리적으로' 말이 되게끔 풀어내기에 독자에게 짜릿함을 안기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다루는 기이한 일들은 그야말로 이 세상의 일이라고는 생각이 안 되는 환상적인 사건이다. 예컨대 <우부메의 여름>에서는 20개월째 해산을 못한 여자의 방(밀실)에 같이 있던 남편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남편은 아내의 뱃속으로 들어가버린 것일까? 두번째 작품 <망량의 상자>는 더욱 대단하다. 기차 사고로 온몸의 뼈가 남김없이 조각난 소녀가, 병원에서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날아간 것인지, 땅으로 꺼진 것인지 실종되어 버린다. 물리적, 과학적으로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추젠지 아키히코는 이 모든 일들에 대하여 자신만의 해답을 준비해놓고, 득의양양하게 웃고 만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두고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고, 마침내 해답을 찾으면 뛸듯이 기뻐하는 것은 호기심 많은 인간의 본성이다. 더군다나 이 수수께끼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더욱 빠져드는 것이 인간의 두뇌이다. 작가 교고쿠 나츠히코는 아주 영악한 사람이라,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이 1,0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이야기를 여러 갈래로 꼬고, 매듭을 묶고, 이리저리 비틀어 한계까지 복잡하게 만든다. 이미 독자의 두뇌는 포화상태이다. 수많은 정보와 복선과 함정들(그러나 한계를 넘을 정도로 복잡하게 꾸미지는 않는다. 독자가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으면 책을 집어던질 테니까. 이 선을 잘 알고 있는 것이 교고쿠 나츠히코의 영리함이다)...그러나 복마전같이 얽혀있는 스토리를 헤치고 나가다보면, 결말에서는 추젠지 아키히코가 특유의 명쾌함으로 해답을 제시한다. 시달릴 대로 시달린 우리의 뇌는 모든 것이 정리가 되면서 느껴지는 순수한 만족감에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책에서는 이런 원초적인 두뇌 만족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교고쿠 나츠히코의 그 두껍고, 복잡한 이야기들을 계속 찾는 것이다. 마지막의 상쾌함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광골의 꿈>이 전하는 복잡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첩첩산중 시골에서 자란 여자가 있다.그러나 그녀는 어린 시절 바다에서의 기억들로 고통받고 있다. 분명히 어렸을 때, 바다에는 간 적이 없는데 말이다. 다른 누군가의 기억이 침투한 것일까. 한편 그녀에게는 8년 전, 목이 잘려나가 살해당한 전남편이 있었다. 그런데 바다에서의 기억이 찾아온 순간부터 전남편이 다시 나타난다. 요괴일까, 사령일까. 그녀는 공포에 질려 전남편을 다시 목 졸라 죽인 다음 목을 잘라 바다에 던져버린다. 그러나 전남편은 무려 네 번이나 다시 나타나고 그때마다 아내에 의해 목이 잘린다. 참으로 불쾌한 사건이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내가 목을 던져버린 그 바다에서 금색해골이 목격된 것이다. 며칠이 지나고 이번에는 바다에서 머리카락과 살이 붙은 머리가 발견된다. 전남편의 해골에 다시 살이 붙어 온전한 머리가 되고, 다시 부활한 것일까? 기묘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환상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에 관여하게 된 추젠지 아키히코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광골의 꿈>은 교고쿠 나츠히코 만의 여전한 특성이 잘 살아 있다. 무엇보다 다루고 있는 사건과 요괴와의 절묘한 배합이다. 아이를 낳다 죽은 요괴, 우부메와 20개월째 아이를 낳지 못한 여자가 한 쌍을 이루는 <우부메의 여름>처럼 <광골의 꿈>에 등장하는 '광골'은 뼈만 남은 해골 상태로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요괴다. 네 번이나 죽은 전남편이 마치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참으로 절묘한 배합이다. 또한 교고쿠도 시리즈의 고정 출연진들의 등장도 반갑다. 수다쟁이 추젠지부터 소심한 소설가 세키구치, 다른 이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인 탐정 에노키즈, 행동파 기바 형사까지 익숙한 멤버들이 여전히 출연한다. 그외에도 새로 가세한, 세상일에 달관한 듯한 낚시터 주인 아사마, 프로이트에 경도된 전직 정신과 의사 후루하타까지 '교고쿠 월드'는 점점 확대되어 간다. 독특한 등장인물에 기묘한 사건, 요괴에 대한 담론과 추젠지 아키히코의 장기인 종교, 사회, 과학 등의 장광설까지 이전 작품들의 모든 맛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달라진 구석도 있다. 작가 교고쿠 나츠히코는 교고쿠도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인 <광골의 꿈>부터 본격적으로 탄탄한 시리즈를 이끌어갈 것을 구상한 듯 보인다. 제1작 <우부메의 여름>과 <망량의 상자>가 요괴 마니아의 개인적인 역작이었다면, 제3편 <광골의 꿈>부터는 그간 입증된 자신의 상업적인 역량을 극대화화려는 계획이 보인다. 무엇보다 시점이 소설가 세키구치가 친구 추젠지 아키히코를 관찰하는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변했다. 기존 작품들에서는 세키구치가 기묘한 사건에 맞닥뜨리고, 해결에 고심하다 추젠지를 찾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세키구치가 가져올 수 있는 사건과 추젠지 아키히코의 개입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이전 작품들에서는 추젠지 아키히코의 장광설은 그걸 직접 듣는 세키구치와의 대화에서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시점이 자유자재가 된 이번 작품에서는 도처에 장광설이 깔린다. 신처럼 전지전능해진 작가가 무차별적으로 개입해 사건의 배경 지식, 등장인물 상호간의 대화(꼭 추젠지와 세키구치의 대화가 아니라) 등에서 온갖 지식을 쏟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추젠지 아키히코와 세키구치가 등장하지 않아도 사건은 확대되며, 이야기는 더욱 넓게 벌어질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제4작, 제5작으로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게 된 것이며, 도처에 장광설이 삽입되다 보니 자연히 페이지도 늘어난다. 원고지 매수가 늘어나면 작가 고료가 늘어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니 이것도 교고쿠 나츠히코의 귀여운 계략이라 할 수 있겠다.

 

<광골의 꿈>은 추젠지 아키히코 이야기를 장기적으로 이끌어가려는 작가의 계획에 따라 조금 성격이 달라졌다. 예전 분위기나 시점을 마음에 들어했던 독자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 핵심은 변지지 않았다. 여전히 분위기는 음침하고, 사건은 기괴하고, 등장인물들은 매력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복잡한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아냈을 때 느껴지는 그 원초적인 두뇌의 쾌감을 기억한다면, 이후의 이야기들에도 손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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