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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5 (양장) - 셜록 홈즈의 모험 ㅣ 셜록 홈즈 시리즈 5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4월
평점 :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실상 판매 부수를 따져보면 오히려 여름이나 겨울보다 적다고 하네요. 그도 그럴 것이 파랗고 높다란 가을 하늘을 보면 소풍이나 등산에 나서고 싶지 집에서 가만히 책만 읽기는 힘들지 않겠어요? 괜히 싱숭생숭해지기도 하고요. 그런 이유로 일년에 200권 가까운 책을 읽는 저도 가을에는 활자가 눈에 잘 안 들어옵니다. 게다가 취미도 독서요, 직업적으로도 책만 읽어야 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어느 순간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책에 치여 사니 어쩔 수 없이 물리는 거지요. 이럴 때 제가 늘 꺼내드는 책은 단 하나 셜록 홈즈입니다. 책이라면 지긋지긋한 순간에 셜록 홈즈를 펼쳐들고 단편 하나씩 곶감 빼어먹듯 맛을 보다보면 어느새 잊고 있던 독서의 재미를 다시 느끼게 됩니다.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에게 독서의 참재미를 알려준 셜록 홈즈는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아마 이런 사람도 꽤 될걸요. 어렸을 때 셜록 홈즈를 읽고 나서 책이 얼마나 재미있나 하는 걸 깨달았다는 사람들이요. 우선 제가 그랬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저는 한 권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친한 친구가 단편 전부를 소장하고 있었어요. 저는 거의 매일같이 그 집에 놀러가 한 편 한 편 야금야금 읽어내려갔지요. 처음에는 친구 어머님이 차비 하라며 얼마간 돈도 주셨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매일이 되자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내비쳤지요. 그래도 굴하지 않고 방과 후면 친구를 졸라 졸래졸래 따라가곤 했었습니다. 저에게 어린 시절 셜록 홈즈 이상 가는 친구는 없었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셜록 홈즈를 창조한 건 영국의 아서 코난 도일 경입니다. 원래 의사였는데, 손님이 너무 없자 생활고 해결과 아내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셜록 홈즈 시리즈 제1탄 <주홍색 연구>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셜록 홈즈가 확고히 독자들의 마음에 자리를 굳힌 건 다음 편인 <4인의 서명> 때부터라고 합니다. 그 뒤로 신사를 위한 잡지 '스트랜드 매거진'에 홈즈가 활약하는 단편들을 매호 연재했고, 그 순간부터 셜록 홈즈의 전설은 시작됩니다. 작가는 자신보다 훨씬 유명한 셜록 홈즈로 인해 폭발적인 인기와 남부럽지 않은 명예를 얻었지요. 그러다가 다른 작품을 써보고 싶은 열망에 홈즈를 숙적 모리아티 교수와 동반자살 시키기도 합니다만,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다시 부활시키기도 했지요. 요즘 인터넷 등으로 주인공의 운명을 바꿔달라, 누구와 누구를 맺어달라고 성화를 부리는 극성맞은 일부 드라마 팬들의 원조가 여기 있는 셈입니다.
셜록 홈즈는 에드거 앨런 포 이후 명맥이 거의 끊기다시피 한 탐정소설 장르를 확실히 부활시켰고, 향후 100년 동안 탐정소설, 추리소설이 융성하게 만든 기초를 충실히 다졌습니다. 도대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즈에게는 대관절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런 영광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셜록 홈즈는 기묘할 정도로 다양한 얼굴을 가진 사람입니다. 분석력과 논리력, 추리력 등 탐정이 가져야 할 기초적인 능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화학 실험과 지질학 등 근대에 태동한 과학에 대한 지식도 풍부합니다. 그러나 그외에도 셜록 홈즈가 인기 있는 요인은 영국 전통의 기사다운 품위가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여성과 약자에 대한 배려, 육체적인 완력 등이 그것이지요. 그는 곤경에 처해 있는 약자를 그냥 보아넘기지 않으며,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모두 투자해 도움을 베풉니다. 단편집 <셜록 홈즈의 모험>에 수록된 '너도밤나무집' 사건에서 홈즈는 위험해보이는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 의뢰인의 소식이 궁금해 전전긍긍합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초조해하는 것입니다. 홈즈는 알고보면 이렇게 다정다감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홈즈는 사건을 해결한 뒤 범인을 무작정 경찰에 넘기지 않고, 그 나름의 합리적인 방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예컨대 범인도 충분히 고통 받았다 싶으면 '그 사람도 나름 고통을 받았으니까 이쯤에서 잊어주지'하는 식입니다. 남성적 매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얼룩 띠의 비밀'이라는 작품에서는 홈즈의 개입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거한이 쇠부지깽이를 두 손으로 굽히는 경고를 하고 사라집니다. 홈즈는 그가 사라지자 조용히 굽혀진 부지깽이를 도로 펴놓지요. 멋지지 않습니까? 이런 다채로운 모습들은 홈즈의 인기를 나누고자 탄생한 무수한 논리기계들과 홈즈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에 위치시켜 둔 홈즈만의 매력이랍니다. 참고로 홈즈는 가장 많이 영화화된 인물입니다. 아마 200번이 넘을 겁니다. 단순히 추리하고 논리하는 기계라면 이런 인기를 얻기란 불가능할겁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는 장편이 4권, 단편집이 5권입니다. 개인적으로 꼽는 장편은 <공포의 계곡>, 단편은 '얼룩 띠의 비밀'입니다. 보통 평자들이 우수하다고 꼽는 단편집은 <셜록 홈즈의 모험>인 것 같더군요. 이 단편집에는 셜록 홈즈 모험담의 백미인 '얼룩 띠의 비밀' '입술 삐뚤어진 사나이' '빨간 머리 연맹'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고딕적인 으스스함, 탁월한 논리성, 사건의 기묘함, 홈즈의 매력 등이 잘 배합되어 잊을 수 없는 고전의 깊고 풍부한 맛을 제공합니다. 독서의 가장 원초적인 매력, 즉 재미가 있는 소설이라는 거지요.
모쪼록 어렸을 때 읽고 치워뒀던 셜록 홈즈 이야기를 다시 펼쳐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빠져보세요. 시간이 아무리 지났어도 여전히 그는 마술 같은 능력으로 당신을 한 번 쓱 훑어보기만 해도 어디서 왔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성격인지를 맞출 것입니다. 그거야말로 셜록 홈즈의 진짜 장기죠. 비록 지금 기준으로 사건과 트릭이 다소 단순한 면이 있을테고,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부분도 많겠지만 그 점이 100년 넘게 지속된 셜록 홈즈의 인기를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당신이 책장을 펼치는 곳이 파랗고 높다란 가을 하늘 아래 벤치이든, 불가의 뜻뜻한 벽난로가든, 이불을 뒤집어쓴 침대이든 어디든 좋습니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당신은 짙은 안개가 낀 베이커 가 221B로 안내될 것입니다. 가스등과 이륜마차, 증기기관차, 프록코트, 드레스는 소품으로 제공됩니다. 오늘 당신은 그곳에서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탐정 셜록 홈즈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