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11시에 컴퓨터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동안의 혹사에 불만을 품은 컴퓨터는 치밀하게 사보타쥬를 준비하고는, 제가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순간에 결국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구사대를 보내 반란을 초동 진압하려 했으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는 뜨거운 맹세를 한 컴퓨터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반란의 결과로 현재 컴퓨터는 수리점에서 그토록 원하던 2일간의 휴식을 얻어낼 수 있었고, 저는 겜방으로 긴급 피신해야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컴퓨터 관리 잘 하세요...
아무튼 게임방에서 노닥거리다 예전에 쓴 파일이 보이길래 옮겨 놓습니다. 패션 잡지 <보그걸>에서 마니아 추천 비스무리하게 일본 미스터리 5편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작성한 글입니다. 짧은 내용이라 쓰기 힘들었는데 그냥 재미삼아 한 번 보세요.
1.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2003)
- 우타노 쇼고 / 김성기 역 / 한스미디어 출판사
추리소설은 간단히 말해 온갖 트릭을 이용해 독자를 속이려는 작가와 안 속으려고 버티는 독자 사이의 두뇌싸움이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사상 최강의 반전으로 방심하고 있던 독자의 뒷통수를 강하게 후려치는 이 작품은 일본 추리소설 트릭의 놀라운 수준을 가늠하게 해주는 역작이다.
2. 검은 집 (1997)
- 기시 유스케 / 이선희 역 / 창해 출판사
평범한 보험회사 직원 신지는 보험금을 타내려고 아들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부부를 조사한다. 부부가 사는 검은 집을 방문한 순간, 신지는 심장이 얼어붙는 공포와 맞닥뜨리게 된다. 제4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받을만큼 압도적인 공포와 음산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고 혼자 엘리베이터도 못 탔다.
3. 망량의 상자 上,下 (1995)
- 교고쿠 나츠히코 / 김소연/ 손안의 책 출판사
임신한 여자가 20개월째 해산을 못한다거나, 온 몸의 뼈가 부서져 병원에 누워있던 소녀가 여러 사람이 바라보는 가운데 연기처럼 사라지는 등 기묘한 사건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음양사 탐정 교고쿠도의 활약을 그리는 ‘교고쿠도 시리즈’ 제2작. 일본의 전통 요괴를 모티브로 삼은 이 시리즈는 일본에서 신드롬적인 인기를 구가했고,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다.
4. 인생을 훔친 여자 (1992)
- 미야베 미유키 / 박영난 역/ 시아 출판사
일본 추리소설의 전통은 크게 수수께끼의 해결에 집중하는 본격 추리소설과 범죄 이야기로 사회 비리를 고발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양대 갈래로 나눠진다. 이 작품은 그런 사회파의 정수를 담고 있는데, 카드빚으로 고통 받는 여자의 애절한 인생 비극을 그린다. 무분별한 카드 사용으로 많은 신용 불량자가 양산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도 꼭 맞는 작품.
5. 레몬 (1993)
- 히가시노 게이고 / 권일영 역 / 노블하우스 출판사
작년에 나오키 상을 탄 일본 최고의 대중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일본 추리소설 초심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가인데, 60편이라는 많은 작품이 매번 다른 소재와 변치 않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레몬>은 황우석 교수 사태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간 복제의 윤리 문제를 다루는 메디컬 추리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