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보고 나서 완전 사랑에 빠져 버린 드라마가 있다. 월화, 밤 10시에 방영하는 <연애시대>가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한때 열렬히 빠져 있던 손예진이 오랜만에 TV에 나오는 작품이라 주목은 하고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1회를 놓치고 2회부터 보게 되었다. 2회를 보고 난 소감은 간만에 물건 하나 나왔네, 였다. 흥미로운 상황 설정에서 감칠 맛 나는 대사, 배꼽을 살살 간지르는 유머까지 흠잡을 데가 없는 수작이었다.

 

  옆 사진의 손예진과 감우성이 주연을 맡았다. 청순계 지존이라 불리우는 손예진과 <왕의 남자>로 1,200만 배우가 되버린 감우성이라는 스타 캐스팅이다. 두 사람은 이혼한 부부다. 이혼하면 다신 안 보는 웬수가 되는게 예전의 모습이라면, 이 드라마에서는 세태를 반영하듯 이혼후에도 서로를 챙기고 걱정하며 관심을 갖는 따뜻한 이혼부부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어쩌다 보니 서로의 연애 상대까지 골라주게 된다. 예전의 미운 기억들에도 불구하고, 웬지 두 사람은 자기들이 아닌 다른 남녀에게 점점 끌리는 상대의 모습을 보며 씁쓸해진다. 아직도 미련이 남은 것일까. 당사자도 알 수 없는 두 이혼부부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절묘하다.

 

 이 드라마의 잔잔한 분위기가 기존의 한국 드라마와 다르다는 걸 느끼고 알아봤더니, 원작이 일본 소설이란다. 요즘 다운로드로 일본 드라마를 보는 게 유행이라 원작자를 알 것이다. 노자와 히사시라는 일본의 드라마 작가인데 소설도 쓰고, 각본도 쓰는 등 다양한 활약을 펼치다 작년에 자살했다고 한다. 데뷔작으로 그해 가장 뛰어난 미스터리 작품을 쓴 신인 작가에 수여하는 에도가와 란포상을 탄 미스터리 작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을 볼 기회는 없었지만 <잠자는 숲>이나 <얼음의 세계>같은 작품들은 미스터리 색채가 짙게 드리워져 있단다. 그러면서도 부부의 문제에 굉장히 천착한다고 하는데, <연애시대>를 보니 과연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미스터리와는 전혀 무관하지만 원작자의 취향에 맞춰 미스터리 기법을 일정 부분 차용하고 있다. 작품 초반에 감우성의 절친한 친구로 나오는 공형진의 캐릭터가 개인적으로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이면서 분만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고, 특히 아이를 받지 못하는 특이한 의사다. 무엇보다 그는 생업을 팽개칠 정도로 감우성, 손예진 부부의 재결합에 열중인데 이것도 좀 이상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는 감우성, 손예진 부부의 아기를 받아내다 실수로 죽인 것 같다. 그래서 아기를 받지 못하는 공포증에 걸린 것이고, 자신의 실수로 부부 관계가 파탄이 났다는 생각에 두 사람의 재결합에 열심인 것이다. 중요한 비밀을 초반에 밝히지 않고, 복선만 깔아주다 나중에 그 비밀이 풀릴 때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짜릿한 재미를 주는 것이다. 영락없는 미스터리 기법이다.

 

이 작품에는 이런 기법를 제외하더라도 기존의 한국 드라마와 좀 다른 면이 많다. 시종일관 잔잔한 분위기와 뭔가 있어 보이는 내레이션, 대폭소가 아닌 자잘자잘한 유머 등이 영락없는 일본 드라마 풍이다. 그런 이유로 이 작품이 완성도에 비해 시청률이 낮은 것 같다. 톱스타들이 출연함에도 14%라는 낮은 시청률에 머무는 것은 작품이 그만큼 우리 시청자들에게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잔잔한 분위기가 가장 큰 약점인 것 같다. 나와 드라마를 같이 보는 엄마는 이 작품이 시작됨과 동시에 주무시고 만다...-_-;;

 

 우리 드라마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연애시대>답게 신선한 배우도 등장한다. 좋은 드라마는 늘 좋은 배우를 배출하는 법. 이 드라마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건 주연 손예진, 감우성이 아닌 이하나라는 신인 배우다. 손예진의 동생으로 나와 기상천외한 세계관과 엉뚱한 행동들로 웃음을 유발하고 있는데, 그녀와 공형진의 러브 모드가 어떻게 진행될가 하는 것이 팬들의 최대 관심사이다. 이하나에게서 데뷔 초기 손예진이나 김하늘 같은 풋풋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신인임에도 자연스러운 연기와 화려하진 않지만 은근한 아름다움에서 TOP이 될 만한 배우라는 걸 직감할 수 있다.

 

 영화감독 한지승 씨와 영화음악가 노영심 씨의 참여 등으로 인해 드라마 때깔도 참 좋다. 여러모로 웰메이드를 자랑하는 드라마로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몇 단계 올려놓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작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새로운 기운을 일본 작가가 아닌 우리 작가가 불어 넣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 4회가 끝났을 뿐이니 처음에 놓치신 분들도 부담없이 보기 바란다. 내용의 곡절보다는 주인공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관건인 작품이니 그 점에 유의해서 보시면 즐거운 드라마로 남을 것임을 장담할 수 있다.

 

 참고로 원작도 출간되어 있으니 읽어보고 싶은 분들은 비교해봐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읽어보고 싶은데 아직 2권이 안 나와서 한꺼번에 보려고 기다리고 있다. 노자와 히사시 씨의 미스터리 작품이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나왔으면 좋겠고, 그의 아까운 죽음에도 명복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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