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기억
다카하시 가츠히코 지음, 오근형 옮김 / 이야기(자음과모음)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붉은 기억>은 기억을 소재로 한 단편집입니다. 총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모두 길지 않은 분량이고 내용도 재미있어 금방 읽히는 작품집입니다. 작가 다카하시 가츠히코는 일본 추리소설계에서 꽤 유명한 사람으로 83년에 쓴 데뷔작 <샤라쿠 살인사건>은 일본 걸작 추리소설 리스트에서 항상 상위권에 위치한 작품으로 꼭 읽어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작가 다카하시 가즈히코는 이 작품으로 에도가와 람포상을, <호쿠사이 살인사건>이라는 작품으로 일본추리작가협회 장편상을, 본서 <붉은 기억>으로 무려 나오키 상까지 탄 대단한 작가입니다.  

 

<붉은 기억>은 위에도 언급했듯이 작가가 인간의 기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테마로 7편의 단편을 실었습니다. 제목도 표제작인 <붉은 기억>,<뒤틀린 기억>, <말할 수 없는 기억>, <머나먼 기억>,<살갗의 기억>, <안개의 기억>, <어두운 기억>으로 전부 기억이라는 이름이 들어갑니다. 전체적으로 환상소설의 분위기에 공포소설, 추리소설의 분위기와 장점들이 녹아들어가 무언가 신비스럽고 긴장감 넘치는 독서를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라는 한 가지 소재로만 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단편들이 전부 나름 특징이 있고 재미있어 만족도가 높은 단편집입니다. 구체적으로 내용을 소개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몇몇 작품의 분위기만 보자면...

 

<뒤틀린 기억>에서는 어렸을 때, 홀어머니가 자신을 남겨두고 자살한 여관을 성장해서 다시 찾아가는 작가가 나옵니다. 여관에서 그 옛날 어머니를 꼭 닮은 여인을 만나 작가는 억압됐던 기억이 점점 돌아오는 것을 느낍니다. 점점 밝혀지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충격적인 진상이란?

 

<말할 수 없는 기억>은 성공한 디자이너가 어린 시절의 술래잡기를 기억하며 시작됩니다. 별다를 게 없던 아이들의 놀이였지만 웬지 그날의 기억만큼은 강렬하죠. 디자이너는 그당시 같이 놀았던 친구들과 다시 모여 그날에 있었던 일을 재구성합니다. 소름끼치는 마무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들입니다. 판도라의 상자와 같이 애써 봉인해 놓았던 기억들이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열리고, 주인공은 악몽같은 과거의 진실과 마주친다는 내용이죠. 모두 환상소설+공포소설 분위기지만 유독 추리소설의 면모를 제대로 갖춘 <안개의 기억>이 저는 제일 좋았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26년전에 일어난 일본 여인의 실종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단편들이 모두 동북지방의 이와테현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알고보니 작가의 고향이라더군요. 본문 중에 냉면으로 유명한 음식집은 조용필도 와서 감동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조용필도 감동했다니 먹어보고 싶네요.

 

간결하면서도 품위있는 문장과 억지스럽지 않은 반전, 소름끼치는 긴장감과 공포감, 기억이라는 소재가 주는 여운을 잘 살린 멋진 단편집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역자의 말에 재미있는 구절이 있더군요. 원문 그대로 써 보겠습니다.

 

"단지 이야기의 전개를 답답하게 하는, 너무 빈번하게 나오는 낯선 지명들과 지루하게 나열된 한두 문장은 역자의 재량으로 문맥의 흐름을 가늠하며 줄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역자분이시더군요. 아예 다카하시 가즈히코와 공저를 하지 말입니다. 작가 분이 피땀흘려 쓴 창작물을 본인이 읽기에 지루하다는 이유로 재량으로 줄이다니 어떤 생각으로 그러셨는지 궁금하네요.

 

 

별점: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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