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인한다 1
조르지오 팔레띠 지음, 이승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가 강렬한 <나는 살인한다>는 한 마디로 유럽식으로 맛을 낸 미국식 햄버거다. 작가 조르지오 팔레띠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50살이 넘은 늦은 나이에 데뷔작 <나는 살인한다>가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20여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어 절찬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유럽 색이 지나치게 강하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미국의 현대 스릴러를 몬테카를로의 이국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펼쳐놓은 작품이니까...

 

밤이 되도 불빛이 꺼지지 않는 환락의 도시, 모나코 왕국의 몬테카를로. 인기 라디오 프로가 생방송중인데 어딘지 모를 곳에서 전화가 온다. 자신이 '하나이자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고 밝힌 그는 곧 살인을 할 거라는 예고를 한다. 그날 밤, 유명한 카레이서와 그의 애인인 체스 선수가 잔인하게 살해된채 발견된다. 엽기적인 것은 범인이 두 남녀의 얼굴 가죽을 완전히 벗겨 갔다는 것...그러고는 그들의 피로 탁자에 써 놓은 한 마디...'나는 살인한다'

 

유명인들의 얼굴을 벗겨가는 살인마에 대항하는 존재는 전직 FBI요원 프랭크 오또브레. 한니발 렉터에게 클라리스 스탈링이, 자칼에게는 르벨 총경이 대항마인 것처럼 살인마를 잡을 사람은 프랭크 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자살로 상심해 경찰계를 떠난 상태. 계속되는 살인에 어쩔 수 없이 복귀하면서 예의 날카로운 추리력과 직관으로 순조롭게 수사를 계속하지만 희생자 중 한 명의 아버지가 미국 군부의 정점에 오른 인물임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딸을 잃은 미 육군 장성은 직접 몬테카를로에 날아와 범인을 자신이 잡겠다며 설치고 나선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사건은 과연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하나이자 아무 것도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 결코 결말을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빗나갈 테니까...

 

대단히 뛰어난 작품이다. 솔직히 커다란 판형에 2권 분량이라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특히 유럽산 스릴러라 인물이나 배경 등이 모두 프랑스 혹은 이탈리아 이름이라 묘하게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동안 미국이나 일본의 도서에만 너무 매진한 것 같아 반성중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페이지가 넘어가서 사건이 점점 복잡해지면 재미가 확 살아난다.

 

연쇄살인범과 상처를 간직한 형사라는 전형적인 현대스릴러의 대결 구도지만 뜻밖에 옛날 본격 미스터리 장치를 사용하면서 작품은 진행된다. 희생자가 죽어가면서 남긴 피로 쓴 글씨가 다잉메시지가 되고, 암호를 해석하는 등 고전 미스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클라이막스, 대결 장면의 빠른 페이스나 모든 사건이 해결됐다고 생각했을 때 또 하나의 반전이 나오는 것은 현대 스릴러의 장점을 충실히 받아들인 듯하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제프리 디버(<코핀 댄서>)를 연상케 한다. 제프리 디버의 작품처럼 이 작품도 반전이 뛰어나며, 현대 스릴러 물에 고전적인 추리물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 말이다. 범인도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인물이 아니며, 작품의 초반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인물 중에 한 명이다.

 

유럽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묘사나 비유 등의 수사법도 화려하다. 작가의 문장력도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작품이 좀 더 품위있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긴장감을 훼손하는 단점은 있다. 이 작가는 어떤 상황이 나와도 문학적으로 한 번 짚고 넘어가는 버릇이 있어, 긴박한 장면에서는 조금 답답할 때가 있다. 여러모로 수준높은 데뷔작이었으며 <양들의 침묵>과 견주어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작년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추리소설의 홍수 속에 사장된 감이 있는데 적어도 이렇게 완전히 묻혀 버릴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권이기 때문에 가격 부담이 제법 크지만 기회가 닿으면 꼭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은 작품이다.

 

작가 조르지오 팔레띠는 재미있는 이력을 가졌다. 무슨 가요제에서 비평가상을 탄 적도 있는 것처럼 음악계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TV 코미디에서 활약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에서도 노래로 범인의 흔적을 뒤쫓는 장면들도 나온다. (산타나의 노래가 특히 중요하게 쓰인다..) 위에서 제프리 디버의 작품과 <나는 살인한다>를 비교하는 말을 썼는데 실제 작가의 경력도 비슷한 것 같다. 제프리 디버도 포크송 음반을 낸 적이 있고, 늦은 나이에 데뷔한 것이 말이다.

 

실제로 작가는 후기에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훌륭한 작가는 소박하고 정감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걸 보여줬던 친구 제프리 디버에게 감사합니다."

제프리 디버 역시 화답을 한다.

"조르지오 팔레띠는 세계적인 수준의 위대한 작가다."

두 사람이 미국과 유럽의 스릴러 마스터와 마에스트로로 좋은 우정을 쌓으며 앞으로도 굉장한 작품을 발표해주길 기대한다.

 

별점: ★★★★

 



 

 

 
 
 
 
 
 
 
 
<작가 조르지오 팔레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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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6-02-14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읽었어요. ^^ 솔직히 다잉 메시지는 좀 실망스러웠는데.. ^^;;;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 좀 더 읽고 싶었답니다.

jedai2000 2006-02-14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 분만...)

다잉메시지도 그렇고, 범인 집에 비밀통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날 때도 좀 어설펐죠. 거기 빼놓고는 크게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부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프랭크 오또브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후속작이 나올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기대해보자구요..^^;;

jedai2000 2006-02-14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해랑님...땡스 투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실 마일리지가 정확히 9,900원이었어요. ^^;; 뭐 한 권 사고 10,000원 채워서 책 한 권 또 사야지 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주문이 가능하게 됐네요. 크나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만약에 읽고 재미없으실까봐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만 좋은 작품이니 꼭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거란 약속을 드립니다..^^;;

jedai2000 2006-02-1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습니다. ^^;; 사실 책 살 것이 좀 있어서 주문했어요. 적립금은 10,000원 넘겼구요. 제가 막 조른 것 같네요. ^^;; 심려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망량의 상자> 정말 재미있으니까 기대하시구요. 저도 페이퍼에 올라오는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