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메일 - 저주받은 메일의 주문
야마다 유우스케 지음, 정창열 옮김 / 이가서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읽는 일본 공포소설이다. 페이지도 220쪽에 불과해 가볍게 읽어볼까 하고 잡았는데 정말 너무 가벼워 1g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졸작이었다. 띠지에 일본에서 가뿐히 100만부를 넘기고 영화화 중이라는 말이 있던데, 권당 10엔 씩에 팔지 않고서는 100만부를 팔 수 있을 작품이 아니었다. 설마 띠지에 거짓말을 쓰지는 않았을테지만...

 

내용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고등학교 교사와 그의 절친한 친구인 형사가 불가사의한 죽음의 비밀을 밝혀낸다는 내용이다. 도쿄에서 원인불명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전부 여성으로 불임으로 고통받거나 성관계를 하지 않는 등 실제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부 임신이 되어 있다. 그런데 죽은 피해자들은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고, 탯줄은 끊어져 있다. 여자들이 임신한 아기는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아이를 가져간 것일까? 그런데 피해자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죽기 한 달 전에 정체불명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 '베이비 메일'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베이비 메일이 주인공의 애인에게 날아들자 화들짝 놀라 메일의 비밀을 밝혀낸다는 <링>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다.

 

작가 야마다 유우스케의 문장력은 정말 형편없다. 속도감있는 문체의 소유자라고 작가 소개에는 적어 놓았지만 그보다는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 없는 아마츄어 수준의 작가다. 실제로 작품에는 어떤 근사한 비유나 섬세한 심리 묘사,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서술이 없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취미로 공포소설을 쓰는 아마츄어의 글을 보는 듯 하다. 좋은 공포소설이라면 마치 피아노를 치듯이 읽는이의 심리를 이리저리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휘둘러 마침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 궁극적으로는 소름끼치는 공포감을 유발해내야 할텐데 작가의 역량이 기대 이하라 어떤 긴장감이나 공포감도 생기지 않는다.

 

대사라는 것도 전부 이런 식이다. 실제 본문에서 발췌한다. 형사가 하는 대사다.

"부인께서 임신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부인의 뱃속에는 아이가 있었다. 제 애인은 임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4개월이 지났다. 있을 수 없는 임신이었다. 두 사람 모두 베이비메일을 받았다."

조각조각 기워진 누더기같은 대사들이다. 형편없는 번역 탓도 크지만 기본적으로 원문에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정말 웃긴 것은 220페이지라는 짧은 분량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주인공인 선생과 형사는 사건을 수사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도움을 요청하면서 베이비 메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게 한 번쯤 나오면 사건을 되짚어주는 효과가 있지만, 계속 나오니까 분량 늘리려는 욕심으로 밖에 안 보인다.

 

예컨대 주인공들이 A씨를 만났다.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베이비메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베이비 메일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어쩌구저쩌구..."

B씨를 만나도...

"혹시 아내가 베이비 메일을 받지 않았나요? 받으셨다구요? 베이비 메일이란 어쩌구저쩌구~~"

C씨한테도...

"베이비 메일은 해괴하고 위험한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구저쩌구..."

 

A씨와 B씨, C씨는 물론 베이비 메일의 정체를 모르니 들을 때 흥미롭겠지만 3번씩 듣는 독자는 괴롭다. 도대체 기본도 모르는 작가 같다. 220 페이지라는 짧은 분량에서 이 정도의 결점을 드러내는 작가라면 미래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단 한 번의 공포스런 장면도 없어, 내내 졸면서 봤다. 내가 이 책을 꿈에서 봤는지 실제 봤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졸면서 이 책의 뒷장면을 꿈꿨는데 실제 책 내용과는 달랐다. 하지만 내 꿈이 더 재미있었다.

 

엄청나게 불량스런 번역과 교정 상태로 220페이지에 오타도 엄청 많고, 잘못된 문장 부호까지 총체적으로 문제점이 많은 책이다. 애서가로써 이런 말은 하기 싫지만 어떻게든 피해야할 작품이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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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02-14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소설인데 하나도 안 공포스러우면 망했죠..^^;;

panda78 2006-02-14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낼 책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걸 골라서 냈을까요. 쩝.

jedai2000 2006-02-14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제가 원래 정말 무서움 잘 타거든요. 좋아하는 서지혜 양이 나오는 <여고괴담4>도 못보고 있습니다. 혼자 보기 무서워서요. 그런 제가 봐도 하나도 안 무섭더군요..^^;;

판다78님...사기 당했겠죠, 뭐. ^^;; 출판 에이전시에서 출판사에 자료를 보내주는데 팔아먹을라고 무슨 작품이든 다 재미있고 뛰어난 것처럼 요약해 보내 줍니다. 그 자료 보고 혹해서 계약하면 망하는거죠. 뭐 그러다 의외로 좋은 작품을 만나기도 하지만요..^^;;

한솔로 2006-02-14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결코 에이전시만 믿고 사면 개피 보기 쉽상이죠. 물론 좋은 소설을 골라주는 에이전시도 있지만... 근데 에이전시들도 쎈 타이틀 아니면 소설은 잘 안 할려고 하는 거 같아요.

jedai2000 2006-02-14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제가 출판사에 있을 때도 에이전시 자료 갖고는 한 번도 계약 안 한 거 같습니다. 하긴 소설이 잘 안 팔리니까 에이전시에서도 별로 내켜하지 않겠죠.

한솔로 2006-02-1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전 회사 있을 때 계약했던 소설 타이틀이 몇 건 있었고, 제가 매조지 못하고 그냥 나왔지만 그중에 달랑 하나 나왔는데 그건 좀 반응이 있더군요. 그 경우야말로 진짜 운 좋은 경우지만...
여기 옮긴 이후로 이것저것 슬쩍 이야기를 꺼내보는데, 오퍼 넣기까지의 과정이 꽤나 냉혹하네요. 그렇다면 제가 좀 구라라도 잘 쳐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안되고-_-;;
이 장르 소설 시장에서에 대해서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고민이 많은 요즘입니다.
그래도 알라딘에 블로그를 장만하고 눈에 보이는 동류항의 사람들을 만나니 힘은 얻습니다^^

jedai2000 2006-02-14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한솔로님께서 계신 곳처럼 큰 출판사에서 의욕적으로 장르문학을 선보여야 시장이 확 살텐데 말예요. 그래도 장기적으로 보면 희망적인 것 같아요. 여기 알라딘 님들처럼 정성과 안목을 겸비한 독자님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말입니다. ^^;;
한솔로님께서도 더욱 힘을 내셔서 좋은 작품 많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