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1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모처럼 정말 좋은 책을 읽어 기분이 흐뭇하다.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의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가 국내 출간된지 벌써 3년이나 지났건만 이제야 읽은 것이 무지 후회된다. 아~! 정말 생기 넘치고 신선한, 깊은 감동이 있는 작품이었다. 어찌 보면 잔잔한 내용이 좀 심심하다고 느낄 분들도 있겠지만, 요즘 본인 상태가 갖은 압박(취업 및 애인 급구)에 시달려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에 오히려 맞춤형 줄기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가장 독특한 점은 단 한 마디, 아프리카다. 아프리카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밀림과 사막, 사자, 악어, 토인, 주술 등의 원시적인 것들만 무심코 떠올리는데, 사실 현대 아프리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여기 아프리카 남부에 보츠와나라는 나라가 있다. 다이아몬드가 많이 나서 국가 경제도 탄탄한 편이고, 1960년대 초까지 그들을 지배하던 영국군이 철수하자 아프리카에서 거의 유일하게 민주화를 이룬 나라기도 하다. 따라서 국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 명예로운 보츠와나 국민 중에 한 삼십 대 여자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탐정사무소를 개업했으니 여기가 바로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다. 넘버원 여탐정의 이름은 음마(아프리카에서 여성들에게 쓰는 경칭) 라모츠웨...음마 라모츠웨는 한 번의 결혼 및 이혼 경력이 있는데 난봉꾼 같은 남편의 폭력에 신음하기도 했고, 단 5일간 엄마가 될 수 있어서 행복하기도 했다.(자세한 이유는 나오지 않는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곧 죽은 것 같다.) 비록 라모츠웨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지만 늘 새로운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프리카의 대지를 딛고 사는 여인답게, 열심히 씩씩하게 살아 나간다.

 

음마 라모츠웨가 탐정 생활을 하면서 의뢰인들이 가져오는 소소한 사건들, 이를테면 남편이 정말 바람이 났는지 알아봐 달라든지, 부자집 딸아이가 만나는 남자 친구는 누구인지 알아내라는 등의 사소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중요한 사건들을 대신 수사해 주는 것이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뛰어난 추리력이나 기발한 트릭 등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미스터리 팬들이라면 대부분 비밀을 짐작할만 한 내용의 단순한 사건들이다. 하지만 음마 라모츠웨가 수사 과정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직감과 유머 감각, 무엇보다 따뜻한 마음이 읽는 내내 독자의 가슴에 훈훈한 온기를 전해 주는 것이다.

 

아직은 사회적 모순이 많이 남은 아프리카에서, 아직은 힘없는 약자인 여성으로써 또한 탐정으로써 유쾌하게 살아나가는 라모츠웨의 모습이 아름답다. 라모츠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대자연을 가슴 깊이 사랑한다. 그녀는 은퇴하고 나서는 대자연과 깊이 교감하며 평화롭게 살아갈 것임을 꿈꾸는데, 기계같이 바쁘게 돌아가 여유가 없는 현대 도시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어떤 것이 진짜 삶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무조건 아프리카를 찬양하는 것만은 아니다. 아프리카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 등을 고발하는 준엄한 시선도 잃지 않고 있다. 작품 중에도 이런 문장이 나온다.

"아프리카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많아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냥 지나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절대 그럴 순 없다."

 

흔히 보는 추리소설, 탐정소설과는 조금 다른 작품인 것 같다. 각양각색의 사건들을 해결해내는 과정에서 음마 라모츠웨라는 여성이 보여주는 온화함과 지성은 폭력적이고 무능력한 아프리카 남성들과 대비된다.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진짜 여성주의에 입각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아직도 주술이나 인신매매, 도둑질 등이 만연한 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한 고발도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음마 라모츠웨의 아프리카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다. 라모츠웨의 과거는 비록 힘들었지만, 따뜻한 차와 베란다에 앉아 즐기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 그리고 좋은 친구들, 다시 시작될 것 같은 사랑 예감...이런 것들이 있기에 오늘의 그녀 역시 찬란한 태양처럼 빛나는 것이 아닐까...

 

작가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는 이 작품으로 크게 유명해 졌는데, 스코틀랜드 사람이다. 현재 라모츠웨 시리즈를  7편 정도 썼고, 다른 시리즈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의 거의 유일한 아쉬움이 실제 아프리카 여성이 쓰지 않았다는 건데, 이 남성 작가도 아프리카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니 조금은 벌충이 된다.

 

미스터리의 범주로 좁게 보면 점수를 높게 줄 수는 없겠지만, 한 편의 재미있고, 문학성 뛰어난 소설을 찾는 분이라면 강하게 추천드릴 수 있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라모츠웨의 대사는 정말 여름날 소나기 같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다소 충격적인 외모의 작가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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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2009-06-27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재밌어요.

jedai2000 2009-07-01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게 얼마 전에 쓴 리뷰인가...잼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