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970년의 일이었다. 정운산은 고향인 거문도를 나와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형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온 국민이 떠들석한데도 불구하고 경찰서에서 숙직을 하며 지내고 있으려니 마음이 답답했다. 그때, 울린 한 통의 전화. 살인 사건 신고 전화였다. 미라쥬 호텔 11A호실, 속칭 패닉룸에서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정운산이 가보니, 남자는 배를 칼에 찔려 죽어 있었다. 피가 바다를 이루었다. 조사 해보니, 남자는 삼진물산의 사장이었고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부자의 당연한 권리마냥 애인도 한 명 두고 있었는데, 그녀는 술집의 호스티스였다.

 

7. 남자는 애인과 밀회를 즐기려고 호텔에 방을 잡아두고 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혐의는 아내와 애인 모두에게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알리바이가 없었다. 남자의 10살난 아들은 크리스마스 철야 예배를 갔고, 아내는 종교가 없어 집을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누구도 아내의 말을 증명해줄 수 없었다. 다행히 애인은 알리바이가 있었는데, 남자와 만나러 호텔에 가기 전 너무 배가 고파 중국집에 전화를 해 볶음밥을 시켰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애인 집에 볶음밥을 배달한 중국집 배달원을 만날 수 있었다.

"맞습니다, 맞고요. 볶음밥 시키신 게 맞아요."

"자세히 이야기해봐."

"네. 제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계십니까?'했죠. 그런데 욕실 쪽에서 소리가 나는 거예요."

"뭐라고?"

"'돈 바닥에 놔뒀으니 두고 가세요.'라고요. 저는 볶음밥을 내려놓고 돈을 집어든 다음 나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도저히 못 가겠더라구요. 그러면 안 되는 줄은 알았지만 너무 흥분이 되서요."

배달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욕실 앞으로 갔어요. 마침 작은 창문이 있더라구요. 그런 다음 몰래 훔쳐 봤어요. 약 10분쯤 봤나, 여자가 목욕을 마치려 하길래 부랴부랴 나갔죠."

배달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자가 목욕을 마치고 옷 입고, 미라쥬 호텔까지 가서 남자를 죽이기에는 도저히 시간이 맞지 않았다. 여기에 배달원이 결정적인 증언을 덧붙였다.

"저는 분명히 여자가 목욕하는 걸 봤어요. 제가 또 기억나는 게, 그 여자 엉덩이에 점이 있더라구요. 제 애인 경숙이도 똑같은 자리에 점이 있어 확실히 기억해요."

정운산은 여순경 이순애를 불렀다. 그녀는 죽은 남편 대신 경찰에 투신해 일을 하고 있었다. 이순애는 애인의 몸을 조사해 본 다음 엉덩이에 점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애인의 혐의는 풀렸다. 이제 아내에게로 혐의가 집중됐다.

 

8. "그렇게 된 거지..."

정운산은 말을 마쳤다. 흥미롭게 듣던 모두는 맥이 빠졌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됐어요?"

호들갑스럽게 홍은아가 묻는다. 정운산은 웃기만 할 뿐 쉬 입을 열지 않는다. 나는 뻔한 문제를 아무도 맞추지 못하는 게 답답해 입을 열었다.

"범인은 애인과 배달원이야. 둘이 짜고 일을 저지른 거지."

"네?"

"배달원은 욕실 작은 창으로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 봤다고 했어.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무지 춥지. 물론 목욕은 뜨거운 물로 했을거야. 그러면 당연히 수증기가 발생해 창에는 김이 서리지. 그런데 어떻게 훔쳐볼 수 있었겠어. 만약 어렴풋하게 보인다 해도, 엉덩이의 작은 점까지 볼 수는 없을거야. 배달원의 증언은 모순투성이라는 거지. 내가 추측해 보건데, 배달원은 볶음밥을 가지고 그녀의 빈집에 갔어 애인은 미리 차를 타고 미라쥬 호텔로 가 남자를 죽인거고. 두 사람이 말을 맞춘거야."

"정답이네. 과연 대단하군. 두 사람은 내연 관계였고, 남자가 집착을 하자 그를 죽인거지."

"아! 그렇게 된 거구나. 아저씨도 우리 탐정님과 같은 이유로 애인을 의심한 거예요?"

홍은아가 물었다.

"음..그렇진 않아. 난 처음부터 아내가 범인일 리가 없다고 믿었지."

"아니, 왜요?"

"아내의 눈동자는 맑고 순수해서 범죄가 거기에 깃들 수 없는 그런 눈이었다네. 나는 아내는 처음부터 배제하고 수사를 한 거야."

"역시, 아저씨는 그 여자를 사랑한 거네요?"

"홍은아, 실례야!"

나는 급히 말했다. 하지만 정운산은 슬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맞네. 나는 그녀를 사랑했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홍은아는 다시 물었다.

"물론, 그녀와 결혼했지. 하하하."

 

9. 아까부터 파랗게 질려있던 정용주 반장의 얼굴이 납빛이 됐다.

"아버지..그럼..."

"그래, 넌 사실 내 피가 섞이지는 않았다..."

정운산은 나직이 말했다.

"이게 무슨 sbs드라마도 아니고, 저에게도 출생의 비밀이..."

정용주 반장의 얼굴은 숫제 먹빛이 됐다.

"그래. 넌 내 친아들은 아니야. 하지만 누구보다 널 사랑했다. 난 네 엄마와 결혼하고 나서, 내 아이를 갖자는 네 엄마의 말을 두 번 다시 꺼내지도 못하게 했지."

"아버지.."

"그래, 나에게 아들은 너밖에 없다. 사랑한다..."

부자는 따뜻하고 아름답게 포옹했다.

 

10. 낳아준 정만이 다가 아니다. 역시 기르고 입히며 보살펴 준, 정이야말로 참 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와 홍은아, 김우제 부부는 모두 훈훈한 기분을 느끼며 정반장의 집을 나왔다.

그러고는 생각을 했다.

"과연 크리스마스 특집극다운 내용이로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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