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리스마스 이브의 날이 밝았다. 종교가 없는 나는 도저히 이 시끌벅적한 열기가 이해가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파트너, 홍은아는 아침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하루종일 웃음을 그칠 줄 몰랐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대단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고, 호형호제하는 강남서의 정용주 반장 집에서 자그마한 파티가 있을 예정이라 그곳에 가기로 했다.

 

2. 일곱시경 나와 홍은아는 정반장의 집에 도착했다. 정용주 반장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산타 복장을 하고 나와 우리들을 맞았다. 정반장은 벌써 술이 한 잔 얼큰하게 들어갔는지 큰 소리로 외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내가 답하기도 전 홍은아가 웃으며 답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욕!"

홍은아의 무식함은 여전하다. 여느 때처럼 나는 또 지적을 해 주었다.

"해피 뉴욕이 아니라, 해피 뉴 이어!"

"아무렴, 어때! 재미만 있구만."

정반장이 말했다.

 

3. 우리는 거실로 안내되어 커다란 테이블에 앉았다. 상석에는 정반장의 아버지이자 전 총경, 정운산 어르신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정운산 어르신에게 인사를 드렸다. 테이블에는 진귀한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정운산의 처조카 김우제 부부가 들어왔다. 김우제는 팔리지 않는 싸구려 작가로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운산이 말했다.

"오, 우제 왔는가. 그래 요즘도 책을 쓰는가?"

"아, 예. 물론이죠. 요즘 쓰는 건 <800만 가지 죽이는 방법>이예요."

그는 겸연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워낙 책이 안 팔리니, 이번엔 요즘 잘 팔리는 실용서를 써 봤어요. 방중술에 관한 책인데, 카마수트라와 소녀경을 참고했죠."

"그렇군. 허허. 내 나이에는 필요없겠지만 그래도 꼭 읽어보지." 

"꼭 읽어 보세요. 혹시라도 눈물이 글썽였다면 성공한 독자가 되신 겁니다."

 

4. 우리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김우제 부부는 걸신들린 듯 정신없이 먹어댔다. 조우제가 대학 동기인 정용주 반장에게 말했다.

"내가 하는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자네, 앞에 있는 랍스터 내가 먹으면 안되겠니?"

"아이! 뭐야."

"화내지 말고 들어.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어."

정운산이 정리했다.

"이보게들. 우리가 기왕 모였으니, 좀 품위있게 놀아보세. 내가 하이쿠를 읊어보겠네"

하이쿠란 일본 전통의 단시를 말한다.

"오! 하이쿠란 말씀입니까?"

"별 것 없지만 그래도 들어주게...'뒷통수에 흩날리는 충격, 눈 부릎뜨니 숲이었스'."

일동은 놀랐다.

"오, 진서로 잘 쓰셨습니다."

"퍽치기를 당한 남자가 눈을 뜨니 숲이었다는 강렬한 내용을 담고 있지. 허허."

김우제가 나섰다.

"저도 작가 나부랭이이니 한 번 해보겠습니다...'밀린 임금 3개월, 이 죽일 놈의 사장'."

홍은아도 물색없이 나선다.

"에이, 이런 건 재미없어요. 파티에는 노래가 있어야죠. 제가 한 번 해볼게요."

홍은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모으고 노래를 시작했다.

"게리롱, 푸리롱~~"

정운산은 껄껄 웃었다.

"젊은 처자가 노래도 잘하는구만."

 

5.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거실 벽난로 근처 소파에 모두 앉았다. 커피를 마시며 벽난로 불빛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졸음이 몰려왔다. 홍은아가 입을 열었다.

"정운산 아저씨, 심심한데 재미있는 이야기 해주세요."

"재미있는 이야기?"

"네."

"무슨 이야기 말인가?"

"아저씨가 옛날에 해결했던 사건 이야기 해 주세요."

"음..그럴까.."

정운산은 오랜 기억을 되살리듯 미간을 찌푸렸고 이윽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下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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