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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5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낼 모레면 정모네요... 제가 요즘 보기 드문 완전 아날로그형 인간이라 컴퓨터도 거의 컴맹 수준이고 인터넷도 잘 안하는 편인데, 이렇게 가상의 공간인 인터넷에서 만나게 된 분들과 가상을 넘어 현실에서 만나게 되서 넘 흥분됩니다. 떨리기도 하구요... 동서 추리 문고에서 몇 권의 책이 더 나왔더라구요. 확 땡기는 책은 <딱정벌레 살인사건>! 반 다인이라면 그냥 무조건 기대되지요... <우부메의 여름>을 비롯해 사고 싶은 책도 많고, <관 시리즈>,<커튼 뒤의 비밀>,<캐드펠 시리즈>등 읽어야 할 책이 10여권 쌓여 있는데 돈과 시간이 없네여... 어디 절이라도 들어가야 하나...
잡담이 좀 길었네요. 제가 최근에 읽은 책은 마츠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입니다. 엄청 두꺼워서 좀 겁냈는데, <제로의 초점>이라는 작품이 같이 있네요... 마츠모토 세이초는 일본 전후에 피폐한 사회적 현실을 추리소설이라는 재미있는 플롯 속에 녹여 낸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제가 알기로 팔리기도 많이 팔리고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거 같습니다. 정확한 건 기억이 안나는데 얼마전 일본에서 뽑은 현대 일본 문인 순위에서 대중 소설 작가로는 아주 높은 순위였던 게 어렴풋이 생각나네여...(한 3위쯤이였던 거 같네여..) 저 개인적으로는 일전에 <필사의 게임>이라는 세이초의 작품을 유일하게 읽어봤는데 속도감이 굉장한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점과 선>은 크로프츠의 알리바이 깨는 추리 소설의 형식을 차용한 듯 보입니다. 이런 류의 시간표 들여다 봐야하는 작품들은 머리도 아프고 끊임없이 시간표와 열차 노선도 등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한번 페이스를 놓치면 끝까지 읽기가 정말 힘들지요. 그러나 <점과 선>은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고 또 아무래도 울 나라와 가까운 일본이라는 배경이기에 크로프츠의 영국보다는 더 현실감이 느껴집니다. 이런 류의 소설은 초반에 거의 범인이 노출되기에 범인과 탐정간의 지력 대결이 읽는 맛을 주지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완벽합니다. 간교한 범인도 범인이지만 끈기와 지칠 줄 모르는 투지로 범인을 잡아내는 두 형사의 활약은 정말 멋집니다.
제가 본격물 매니아로써 이런 류의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작품만큼은 인정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트릭은 그야말로 현실감이 넘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류의 트릭입니다. 제가 인정하는 트릭이란 실제에도 통할만한 현실감이 있어야 합니다.
(스포일러 경고)
음독자살한 두 남녀의 시체가 같이 누워 있으면 울 나라의 경찰이나 세계 어느 나라의 경찰이든 치정에 의한 동반자살쯤으로 생각할 겁니다. 두 개의 점이 같은 선상에 있으면 실제로 관계가 없어도 그렇지 않게 보이게 되는 점을 이용한 심리적인 멋진 트릭입니다.
투철한 노력에 기반한 치밀한 알리바이 깨기의 즐거움과 멋진 트릭을 즐길 수 있는 놀라운 수작입니다. 감히 일독을 권합니다... 여기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전 귀차니즘이 심한 편이라 인천 사는데 거의 서울을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얼마전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인천에서 남부터미널 역과 안국 역두 군데를 가야 했습니다. 그냥 가려다 보니 넘 심심해 그 때 그 때 시간이 4시였는데 여러가지 교통수단을 이용해 7시까지 도착하는 <점과 선>놀이를 했습니다. 혼자서...-_-; 난 대학 졸업생이야! 이런 자괴감이 잠시 나를 습격했지만 곧 <점과 선>놀이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한 재미있는 <점과 선>놀이...끊임없이 시계를 쳐다보며 긴장하다 보니 시간이 잘 가더라구요.. 다 좋은데 제가 넘 감정 이입을 했나봅니다. 경찰을 보니까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게 죽는 줄 알았습니당. 죄 진 것도 없는데...^^;
<제로의 초점>은 사회파라 불리우는 세이초의 작풍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추리 소설이다 보니 범죄가 당근 발생하겠져...그러나 그 범죄가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살아야만 하는 사회적 원인에 기반한 것이 사회파의 특징이 아닐런지...이 작품에서 세이초는 패전으로 인한 일본의 경제적, 정신적 혼란기의 와중에 발생한 도덕적 해이가 먼 훗날 어떻게 작용하는지 리얼하게 고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이든지 울 나라든지 어디든 미군이 진주하고 있던 나라에는 있었던 양공주가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확실히 일본이나 울 나라나 지난 100년간 구체적인 역사적 모습들은 달라도 전쟁이나 내전 등으로 인한 혼란의 시기를 겪은 건 비슷하지요. 경제적 피폐와 독재 등의 사회적 혼란도 비슷하구요. 이렇게 사회가 혼란하다 보니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의 문화가 융성하기 힘들죠. 울 나라의 대표적인 추리 소설가의 김성종씨의 <최후의 증인>같은 작품에도 6.25가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두 나라 모두 사회파가 융성할 수 밖에 없는 사회라는거죠..(제가 전문가는 아니고 그냥 문외한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한국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 sf나 미스터리, 판타지 등이 유독 약하죠... 우리가 발을 대고 살아야만 하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 발언하는 모습은 훌륭하지만, 가끔씩은 순수한 엔터테인먼트가 그립기도 합니다. 사회파가 중요하고 물론 존중받아야 하지만 순수 엔터테인먼트 작품들도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와 발언이 없다는 이유로 폄하받지는 않았으면 하는 게 제 바램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죠...순수한 엔터테인먼트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사회라고 믿습니다.
문외한의 잡설이 좀 길었죠. 어쨌든 <제로의 초점> 역시 뛰어난 작품입니다. 술술 읽히죠.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중매로 결혼한 아내가 신혼 직후에 남편이 실종되죠. 남편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라 서스펜스가 발생합니다. 이 남자의 과거는 어땠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기에 발견의 재미가 큽니다. 그리고 발견되는 남편이 찍은 두 장의 사진...도입부가 죽여주죠? 아이리쉬의 고급 스릴러를 연상케 합니다. <점과 선>보다 길지만 더 빨리 읽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비극적 결말로 인해 읽고 나서의 여운도 굉장한 작품입니다. 굉장히 만족스런 작품입니다.
<스포일러 경고>
사회파로써 사회 고발에 대해서는 일급의 작품이지만 추리 소설로서는 약간 불만족스러운 구석도 있었습니다. 역자의 말에도 있었지만 남편의 형인 소따로와 사건의 조사자인 혼다를 죽이는 범인의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범인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단 한 사람만 죽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이었거든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