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아홉 고양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3
엘러리 퀸 지음, 문영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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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씁니다.  전 머 일년내내 추리 소설에 빠져 살지만, 확실히 일반 독자들에게는 여름밤은 추리 소설 읽는 밤이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있나 봅니다. 추리 소설  출간 붐이 일었더군요... 저 개인적으로는 동서 리스트의  후반부 작품들이나 어서 나왔으면 합니다. 진짜는 이제부턴데, 150권 에서 멈춰버리다니..-_-; 제가 최근에 읽은 책은 <도버4/절단>,<빨강 집의 수수께끼>,<금요일 아침 랍비는 늦잠을 잤다>입니다. 세권 다 만족스러웠는데, 특히 랍비가 제일 좋았고, 도버4는 엄청 웃었습니다. 빨강 집은 주인공들의 탐정 '놀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더군요...

오늘 오전 집에 아버지 손님들이 왕창 오셔서 <꼬리 아홉 고양이>를 들고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한 4시간쯤 걸려서 다 읽고 들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엘러리 퀸의 작품입니다.  시그마를 다 읽은 후 퀸의 작품을 맛볼 기회가 없어서 섭섭했는데 간만에 갈증을 풀었습니다...

이 작품은 기존의 퀸의 작품이 한정된 공간에서 한 두명의 인물이 살해당하고 범인을 밝혀내는 구성이었던 데 반해,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의 시간, 공간의 스케일을 엄청 키웠더군요... 사람도 아홉 명이나 죽고, 범인 검거에도 6개월이나 걸리고, 온 뉴욕 시가 배경이구 말입니다. 작가의 새로운 시도라고 보여집니다.

<꼬리 아홉 고양이>는 전작 <열흘 간의 불가사의(걸작입니다!)>의 뒤를 이어 전작에서 좌절한 엘러리 퀸이, 전 도시를 벌벌 떨게 하는 교살 살인마 '고양이'와 대결한다는 내용입니다.  추리 소설은 본질적으로 영웅 소설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손도 못대는 난해한 문제들을, 보통 사람 이상의 논리와 이성으로 떡 해결해 나가는 영웅들을 다루는 거죠... 그래서 추리 소설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역시 사건에 관계된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탐정이 그 중에서 범인을 밝혀내는 '추리쇼'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의 진상에 경악하는 보통 사람들(과 독자들), 그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짓는 탐정...이게 바로 추리 소설의 진정한 로망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탐정과 범인이 독대해서 진상을 공개한다덩가, 범인이 편지를 보내서 자백한다덩가 하는 조용한 결말을 싫어합니다. 몇 개월 동안 사람들을 궁금증에 미치게 한 다음 홀연히 나타나는 조셉 룰르타비유! 기가 막히는 사건의 진상을 공개한 후 영광을 한 몸에 안는다!(노란 방의 비밀)
이런 게 절  미치게 하는 장면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확실히 절 만족시킵니다. 온 뉴욕 시민의 지지와 기대를 등에 안고 '고양이'와 정면 대결한 퀸은 영웅이 되거든요...

퀸의 다른 작품과는 다른 새로운 작풍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사건의 물적 증거나, 트릭, 알리바이 등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다루고 있는 사건이 너무 크거든요... 아홉 개의 살인 사건을 일일히 신중히 다루고 조사하려면 페이지가 1000장은 되야 할 테니까요... 그렇기에 이 작품은 아홉 개의 살인 사건을 관통하는 한 인물의 심리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논리나 물리보다는 심리에 우선 순위를 넘긴다는 거죠... 가열차게 놀라운 트릭만을 준비하던 퀸이 작품 세계의 후반기에 확실히 변모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까요....(전 전반기의 퀸을 좋아합니다...^^;)

여하튼 전 도시를 벌벌 떨게 하는 연쇄 살인마와의 대결이다 보니 읽는 내내 서스펜스는 확실하고, 마지막에는 한 차례 반전도 있습니다. 400페이지짜리 책인데, 300쪽에서 범인이 검거되다라구요...설마설마했는데 역시나 반전이...

책에서 특히 눈여겨 보셔야 할 부분은 어둠 속에서 암약하는 교살마 때문에 전 도시가 패닉 상태에 빠지고, 폭동이 일어나는 등 군중 심리로 인해 도시가 붕괴되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현실감이 있고, 진짜로 그런 사건이 있다면 그렇게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그리고 저열한 황색 신문들이 사건을 확대시키고 도시민의 공포를 이용해 한 몫 챙기는 모습들도 보여집니다. 이거는 멀리 갈 것도 없이 테러 등으로 인한 요즘의 혼란한 사회 정국을 이용해 돈을 챙기는 한국의 옐로우 저널리즘을 보면 딱 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추리 소설계에서 내노라하는 거장의 후반기 작으로 그간의 작풍을 벗어난 새로운 기법과 커다란 스케일, 군중 심리와 황색신문들에 대한 고찰 등 즐길만한 구석이 많은 책입니다...근데 확실히 일본어 중역인 듯... (예/쿠레인-크레인)  거장의 아찔한 걸작은 아니지만 홍보 문구대로 에너지 넘치는 가작에는 틀림없는 듯 합니다...

p.s/ 작품에 프로이드,융의 뒤를 잇는 대 심리학자로 배라 셀리그먼 박사가 나오는데, 실존 인물같기도 하고 창작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네요...많이 들어본 사람인데... 만약 실존 인물이라면 작품에 크나큰 영향을 주는 자기 자신의 등장을 굉장히 잼있어 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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